본문 바로가기

[김현기의 시시각각] 북한이 한국을 흡수통일한다고?

중앙일보 2017.07.11 02:19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미국 보수 싱크탱크인 닉슨센터(국가이익센터)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장은 “북한의 국가 전략을 알고 싶으면 굳이 옥스퍼드나 예일대 박사가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몇 시간 짬을 내 영화 ‘대부’ 3부작만 보면 된다는 게다.
 

‘ICBM 이후’ 판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미국 지지 있을 때 ‘거절 못할 제안’ 시급

‘오직 패밀리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 ‘자신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되면 상대방 조직은 물론 처남, 옛 혈맹까지 제거한다’. 김정은은 대부 알 파치노의 길을 택한 것 같다. 이모부 장성택,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하고 혈맹 중국까지 무시하는 행태가 똑같다.
 
핵은 수단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랜드연구소의 군사전문가 브루스 베넷은 북한의 목표를 ‘흡수통일’로 봤다. 한국의 북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북한의 한국 흡수통일이다. 수백 개의 핵무기, ICBM을 손에 쥐고 미국을 협박해 남한을 사실상 북한에 넘기도록 하겠다는 목표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흡수통일 안 할 테니 믿고 한번 협상에 나와 봐!”라고 달래고 있는 판에 ‘역 흡수통일’이라고? 말도 안 되는, 가당치 않은 비상식적 이야기다. 하지만 비상식과 비현실은 다르다.
 
문재인 정권 출범 두 달. 일련의 외교 격랑 속에 굳어진 ‘3(한·미·일) 대 3(북·중·러)’ 구도도 우리에게 썩 좋은 상황이 아니다.
 
중국, 러시아는 설령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해도 현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번 G20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ICBM을 쏜 북한에 “우리의 혈맹”이라고까지 말한 속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번만큼은 입장이 바뀌겠지…”란 ‘몬테카를로의 오류’에 우린 빠져 있었다.
 
그렇다면 남는 과제는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 위에 우리가 주도해 뭔가 꽉 막힌 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느냐다.
 
일단 한·미 정상회담은 무난히 막긴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나 현재 트럼프에겐 딱히 이렇다 할 대북 해결책이 없어서 가능했다. 그런 트럼프에게 “내가 북한과 대화 한번 해보겠다”고 나선 문 대통령이 크게 싫을 리 없다. “그래, 한번 해봐!”란 게 솔직한 심산일 것이다. 사드를 놓고 미국에는 이렇게, 중국에는 저렇게 다른 말을 하는 한국의 이중플레이를 뻔히 지켜보면서도 꾹 참고 있는 이유가 있는 게다.
 
하지만 그 유예기간은 길지 않다. 길어야 100일. 그게 트럼프 인내의 한계다. 중국에도 그랬다. 지난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100일의 유예기간을 달라”고 했다 한다. 그 시한은 오는 16일. 마감일이 가까워지자 트럼프는 그동안 유예했던 대중 무역보복 카드를 흔들기 시작했다.
 
단기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트럼프의 원초적 본능은 되살아날 것이다. 한국의 사드 배치 연기 대응에 노발대발하며 “트위터에 띄우겠다”는 걸 참모들이 간신히 뜯어말린 전후 사정을 우리 정부는 알 것이다. “한국이 싫으면 우선 주일 미군에 사드를 배치하자”는 논의가 트럼프 주변에서 들썩이는 것도 알 것이다.
 
ICBM 발사 직후임에도 문 대통령이 파격적 대화 제안을 담은 ‘베를린 선언’을 내놓은 것은 그런 시간적 절박함 때문일 게다.
 
한·미 정상회담은 ‘문정인 배드 캅(악역), 문재인 굿 캅(소방수)’으로 파국을 면했다. 하지만 ‘미국 배드 캅, 한국 굿 캅’의 조합은 아슬아슬하다. 아군 간 신뢰 부족, 적(북한)과 창구 부재다. 100일 후 사드, 한·미 FTA, 방위비 분담금 어음은 분명 돌아온다.
 
“그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라.” 영화 ‘대부’를 관통하는 명대사다. 치열하게 찾아보면 묘안이 있을 게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