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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명품과 거리패션, 그 짜릿한 만남

중앙일보 2017.07.11 01:21 종합 17면 지면보기
7월 7일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슈프림 팝업 매장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 [유지연 기자]

7월 7일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슈프림 팝업 매장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 [유지연 기자]

“120번까지 줄 서주세요!”
 

세계 최대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
젊은층이 열광하는 브랜드 슈프림
역대급 콜라보로 패션피플 총출동
물건 사려 매장 앞 사흘간 밤샘도

7월 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루이비통 매장 앞은 인파로 북적였다. 유동 인구가 적은 청담동 명품 거리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오전 11시 매장 오픈 시간이 가까워 오자 진행 요원들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다.
 
소란의 이유는 이날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과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 컬렉션 팝업 스토어가 오픈한 날이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은 지난 6월 30일 같은 청담동 매장에서 동일한 제품을 1차 판매한 바 있다. 당시 사흘이 안 돼 모두 ‘완판’됐다. 2차 판매를 앞두고는 오픈 3일 전부터 매장 앞에서 밤을 새우는 캠퍼(camper)까지 등장했다.
 
무려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매장 앞에 진을 치자 루이비통은 안전을 우려해 선착순에서 추첨제로 바꿔 총 900명에게 번호표를 부여했다. 7월 7일부터 사흘 동안 하루에 300명씩 매장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900명 안에 들었다 해도 안심은 이르다. 입장 하루 전날 밤 추첨해 입장 순서를 정하기 때문이다. 앞번호에 속해야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득템’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
 
루이비통×슈프림 팝업 매장 앞에는 ‘한정판’ 운동화를 신은 멋쟁이 들로 가득했다. 쇼핑백을 든 남성은 발렌시아가 삭스 슈즈를, 오른쪽 남성은 아디다스 이지부스트를 신었다. [유지연 기자]

루이비통×슈프림 팝업 매장 앞에는 ‘한정판’ 운동화를 신은 멋쟁이 들로 가득했다. 쇼핑백을 든 남성은 발렌시아가 삭스 슈즈를, 오른쪽 남성은 아디다스 이지부스트를 신었다. [유지연 기자]

“추첨제로 바뀌어서 망했어요.”
 
164번 번호표를 손목에 맨 20대 청년이 볼멘소리를 낸다. 익명을 요구한 이 청년은 사흘 전부터 줄을 섰는데 첫날 입장 가능한 300번 안에 들었다. 그런데도 원하는 걸 못 살까봐 노심초사다. 그는 1차 판매 때 손에 넣은 136만원짜리 루이비통X슈프림 붉은색 베이스볼 저지를 입고 있었다. 이번에는 데님 재킷이 목표라고 한다.
 
인기 브랜드와 인기 브랜드의 만남. 사실 패션 브랜드의 협업은 이미 해묵은 전략이다. 브랜드로서는 브랜드의 헤리티지(heritage·유산)는 지키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 있다. 고객도 환호한다. ‘희소성’ 덕분에 지갑을 쉽게 연다.
 
그동안 이런 협업 전략을 잘 구사해온 브랜드는 H&M이다. H&M은 스웨덴의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로 발망·겐조·이자벨마랑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특히 2015년 11월 발망과의 협업 당시엔 서울 명동 H&M 매장 앞에 1000여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희소가치와 함께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을 저렴하게 소유할 수 있다는 매력이 대중적인 인기 요소였다.
 
2017년 1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루이비통 2017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슈프림과의 협업 컬렉션. [사진 루이비통]

2017년 1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루이비통 2017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슈프림과의 협업 컬렉션. [사진 루이비통]

이번 루이비통X슈프림은 양상이 조금 다르다. 일단 가격 메리트가 없다. 기존 루이비통 가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싼 수준이다. 박스 로고 티셔츠가 67만원, 지갑이 70만~80만원, 가죽 재킷이 600만원대다. 그러다 보니 일반 대중보다는 마니아가 움직였다. 실제로 당일 청담동 현장에는 각종 ‘한정판’ 운동화를 신은 멋쟁이들로 가득했다. 이른바 ‘패션잘알(패션을 잘 아는)’들의 잔치였다. 구하기 어렵다는 아디다스 이지부스트부터 발렌시아가의 삭스 운동화가 흔하게 보였다.
 
“루이비통보다는 슈프림 때문이죠.”
 
스케이트 보더를 위한 의상 등을 판매하던 슈프림은 뉴욕 스트리트 문화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슈프림 인스타그램]

스케이트 보더를 위한 의상 등을 판매하던 슈프림은 뉴욕 스트리트 문화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슈프림 인스타그램]

패션 매거진 레옹의 이영표 패션 디렉터는 이번 밤샘 현상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슈프림은 1994년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한 패션 브랜드다. 스케이트 보더들을 위한 의류와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며 반항적인 젊음과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는 스트리트 브랜드로 성장해왔다. 이 디렉터는 “슈프림은 항상 소량의 제품으로 마니아를 애타게 만드는 브랜드 전략을 구사해왔다”며 “나이키·꼼데가르송·라코스테·챔피언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희소가치를 만들고, 소량 출시하는 데다 재발매도 하지 않아 일단 구입하면 손해 보는 일은 없다는 믿음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신제품이 발매되는 매주 목요일이면 뉴욕 맨해튼 슈프림 매장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행렬이 만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리셀러(re-seller·재판매자)도 많다. 워낙 핫한 브랜드로, 소위 돈이 되기 때문이다. 루이비통X슈프림 제품은 6월 30일 1차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중고거래 사이트 등 온라인몰에서 두 배 혹은 세 배까지 부풀려져 재판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루이비통X슈프림이 유난히 주목받는 이유로 두 브랜드 지향점이 정반대라는 데 주목한다. 주류 문화로 통하는 세계 최대 럭셔리 브랜드와 유스컬처(youth culture·청년문화, 하위문화)계의 종교와도 같은 브랜드가 만난 데 따른 파급력이다. 각자 영역에서 ‘정상’을 달리는 두 브랜드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역대급 콜라보’라는 평이 나온다.
 
이 ‘의외의 만남’은 역시나 대성공이다. 루이비통은 자칫 정체될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에 젊은 감성을 수혈해 여전히 ‘핫’한 브랜드로 세를 과시했음은 물론, 가시적인 매출 성과도 올렸다.
 
정재우 동덕여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이번 협업 성공의 요인으로 분석한다. “예전 같으면 절대 접점이 없을, 루이비통 소비자와 유스컬처 소비자 교집합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고가의 명품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다.
 
또 더 이상 명품 브랜드가 역사와 전통만으로 소비자 지갑을 여는 게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 협업을 두고 루이비통이 슈프림 덕을 봤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니 말이다. 잠재 고객인 2030의 젊은 층을 공략할 무기, 답은 거리에 있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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