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사진관]동네 당구가 세계 당구를 제패하다!

중앙일보 2017.07.11 00:05
 세계3쿠션월드컵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승한 김행직(왼쪽 둘째)과 준우승을 차지한 베트남의 응우엔 꾸억 응우엔(왼쪽) .공동 3위 허정한(왼쪽 셋째).[사진 대한당구연맹]

 세계3쿠션월드컵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승한 김행직(왼쪽 둘째)과 준우승을 차지한 베트남의 응우엔 꾸억 응우엔(왼쪽) .공동 3위 허정한(왼쪽 셋째).[사진 대한당구연맹]

 
  10일 새벽 포르투갈 북부의 작은 도시 포르투로부터 낭보가 날아들었다. 김행직(25.세계랭킹 9위)이 2017 포르투 스리쿠션 월드컵 결승에서 베트남의 응우옌 구억 응우옌(세계랭킹 14위)을 꺾고 생애 처음 당구 세계 정상에 등극했다. 이번 우승으로 김행직의 세계랭킹은 9위에서 6위로 3계단 수직으로 상승했다. 이로써 한국은 故 김경률(2010년 터키 안탈리아), 최성원(39.2012년 2월 터키 안탈리아), 강동궁(37.2013년 한국 구리), 조재호(37.2014년 터키 이스탄불), 허정한(40.2016년 이집트 후루가다)에 이어 6번째 월드컵 우승자를 보유하게 됐다.
 
  세계 당구계는 오랜 기간 유럽 출신 선수들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최근까지 딕 야스퍼스(52.세계랭킹 1위. 네덜란드), 프레데릭 쿠드롱(49.세계랭킹 2위. 벨기에), 토 비욘 부름달(56.세계랭킹 3위. 스웨덴), 다니엘 산체스(44.세계랭킹 4위. 스페인) 등 이른바 당구 4대 천왕 들이 돌아가며 월드컵이나 세계 선수권대회의 우승컵을 가져갔다.
 
  전통적으로 당구 강세지역인 유럽을 제외하고 무려 6명의 월드컵 우승자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2015년 사망한 고 김경률 선수를 제외하고 현재 5명의 월드컵 우승자가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현재 4대 천왕의 연령이 40대~50대 후반임에 반해 이들 한국 선수들의 연령은 20대~30대 후반에 불과해 향후 세계 당구계의 주축이 유럽에서 아시아, 특히 한국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높다. 당구는 보통 30대~50대 초반에 최고의 기량이 발휘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세계 당구의 변방이었던 한국이 단기간에 당구 중심국가로 부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4대 천왕을 비롯한 한국을 방문한 세계 톱랭커 당구인들은 무엇보다 전국 어디를 가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당구장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한국엔 무려 2만4,000여 곳의 당구장이 영업중이다. 클럽 중심으로 운영되는 유럽에서 당구장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충복 당구교실에서 당구를 잘치고 싶은 일반인에게 주는 팁.

이충복 당구교실에서 당구를 잘치고 싶은 일반인에게 주는 팁.

 
  유럽의 당구장이 소수 회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폐쇄형이라면 한국의 당구장은 클럽이 아닌 업장 중심으로, 굳이 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당구를 즐길 수 있는 개방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용이한 접근성이 당구 저변 인구의 확장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고, 이들 중 재능이 뛰어난 인재들이 체계적인 훈련과 국내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세계에서도 통하는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올해 71세인 장영철씨가 서울 잠원동 서울당구아카데미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당구 동호인인 장씨는 작년까지 대한당구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올해 71세인 장영철씨가 서울 잠원동 서울당구아카데미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당구 동호인인 장씨는 작년까지 대한당구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최근 몇 년 간 이어지는 당구계의 경사는 무엇보다 당구를 즐기는 동호인 층의 확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의 경기 장면이 TV로 중계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서울당구연맹 유진희 수석부회장은  “2013년 빌리어드 채널 개국 이후 당구를 멀리하던 많은 동호인이 당구장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야구나 축구 등 인기 종목에 편중되던 스포츠 채널에서도 심심찮게 당구 경기를 볼 수 있는 현실은 청년기에 당구를 접했던 경험이 있는 중장년 세대와 재능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분명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당구장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들과 청소년이 같은 장소에서 어울려 당구는 즐기는 모습은 이제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몇몇 고등학교에서는 당구 특기생을 모집해 집중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대회 입상 성적을 가지고 관련 대학에 진학한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인 김시원군.프로 당구선수를 지망하는 김군은 평일엔 3~4시간, 주말엔 7시간 연습을 한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인 김시원군.프로 당구선수를 지망하는 김군은 평일엔 3~4시간, 주말엔 7시간 연습을 한다.

  돈내기의 열기와 술 냄새, 담배연기가 가득했던 기존 당구장들은 사실 스포츠 시설보다는 오락실에 가까웠다. 비흡연자에게 담배 연기 가득찬 당구장은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싫은 혐오시설이다. 현재 일부 당구장은 실내 금연을 실시해 비흡연자와 부녀자, 청소년까지 고객층을 확장하고 있다.(금년 12월부터는 모든 당구장에서 전면적으로 금연이 실시될 예정이다.)
 
당구 경력 3년차인 이유라씨(30).이씨는 2년 전 당구 심판 자격증을 획득한 동호인이다.

당구 경력 3년차인 이유라씨(30).이씨는 2년 전 당구 심판 자격증을 획득한 동호인이다.

김진성씨(47.오른쪽)가 서울당구연맹 소속 프로인 홍정표 강사(39)로 부터 당구 레슨을 받고 있다. 김씨는 4구 50점 정도의 당구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2달여 만에 4구 150점으로 실력이 불었다.

김진성씨(47.오른쪽)가 서울당구연맹 소속 프로인 홍정표 강사(39)로 부터 당구 레슨을 받고 있다. 김씨는 4구 50점 정도의 당구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2달여 만에 4구 150점으로 실력이 불었다.

 
  당구계에서는 당구장 금연이 실시되는 금년 12월 이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실내 금연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면 가족단위의 내장객과 여성들의 출입이 지금보다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스포츠에 걸맞는 실내 환경과 동호인 중심의 저변 확대, 그리고 인생의 절정기를 앞둔 엘리트 선수들의 활약이 조화를 이룰 때 조만간 유럽중심의 세계 당구는 한국을 주축으로하는 새로운 체제로 재편될 것이 분명하다. 신세대 당구 스타 김행직의 월드컵 우승은 그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글·사진=김춘식 기자kim.choonsik@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