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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중국에선 ‘산신령’이라 불리죠”

중앙선데이 2017.07.09 00:02 539호 24면 지면보기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이인영 선생(사진 왼쪽)이 제자인 쑹이 중국음악학원 교수의 노래에 맞춰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이인영 선생(사진 왼쪽)이 제자인 쑹이 중국음악학원 교수의 노래에 맞춰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1960년부터 94년까지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를 지낸 바리톤 이인영(88) 선생은 제자가 많다. 대중들에게는 ‘향수’로 유명한 테너 박인수(79)부터 JTBC 예능프로그램 ‘팬텀싱어’에서 심사위원으로 얼굴을 알린 베이스 손혜수(41)까지 수백 명에 이른다. 베이징 중국음악학원에서 노래를 가르치고 있는 바리톤 쑹이(宋一·61) 교수는 그중에서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제자다.  

1995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쑹이 교수와 함께 한 이인영 교수.

1995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쑹이 교수와 함께 한 이인영 교수.

 

이인영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와 쑹이 중국음악학원 교수의 특별한 인연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이 교수의 자택. 이 교수의 여든 여덟 번째 생일을 앞두고 대한민국예술원 후원으로 7월 1일 오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이인영 교수 미수(米壽) 기념 렉처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쑹이 교수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스승을 찾았다. 오랜만에 피아노에 앉은 이 교수가 “악보 좀 가져오라”하자 쑹 교수가 무심코 책장에서 꺼내 펼친 부분이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한 대목. “이야, 이것은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 불렀던 노래인데…”라며 놀란 쑹 교수가 이윽고 우렁찬 소리로 노래를 한다. 방이 쩌렁쩌렁 울린다. 이 교수가 잠시 피아노를 멈추고 쑹 교수를 쳐다본다. “아니, 목소리가 더 좋아졌어. 어떻게 된 일이야?”  
 
# 중국 최고라는 베이징 중앙음악학원을 87년 수석으로 졸업한 하얼빈 출신의 조선족 청년은 88년 서울올림픽 직후 한국을 처음 찾았다. 민족가무단 솔리스트로 KBS홀 무대에서 오르기 위해서다. 같이 온 성악가들은 관광에 나섰지만 그는 가이드에게 엉뚱한 요청을 했다. “서울대로 데려다 달라. 유명한 노래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시골에서 합창단 지휘자로 있던 가이드의 아버지는 성악가 이인영의 팬이었고, 그들의 만남에 그렇게 다리가 놓여졌다.  
 
“노래를 잘 하는군.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서울에 남아서 노래를 배우고 싶습니다.”  
 
“좋다. 내가 개인적으로 도와주겠다. 내 교실에서 배워라.”
 
# 축음기 음반 소리에 빠져 해방 전후의 혼란기를 살아가던 부산 영도의 병약했던 스무살 청년은 급기야 작은 통통배에 몸을 싣고 국교도 단절된 일본으로 향했다. 동경예술대학 성악과에 입학한 그는 독일 할머니인 네트케 뢰베 교수와 야다베 게이기치 교수의 따뜻한 지원 덕분에 온갖 어려움에도 기죽지 않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때 가슴으로 터득한 돈독한 사제 관계와 물심양면 제자 사랑은 조선족 청년 쑹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국내외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숙소를 마련했고 생활비를 지원했다. 비자 문제로 석달마다 외국에 나갔다 와야하는 항공료도 이 교수의 몫이었다. 동경예술대학 유학을 주선하고 급기야 이탈리아로 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당시 강영훈 국무총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일본인 사업가와 로마에서 공부하던 제자들의 도움도 얻었다. 유학 4년만인 93년 쑹이가 로마 중앙성악연구원을 졸업하고 중국인 성악가 최초의 이탈리아 유학생이 되어 귀국하게 된 사연이다. 이교수는 “그는 일주일에 닷새를 아침마다 와서 구석에 앉아 보고 배웠다. 동족의 젊은이가 이 정도로 열심히 하는데 어떻게든 도와야 하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당시 이 교수에게 뭘 배웠나.  
“소리를 내는 방법이다. 전통 연극인 경극(京劇)의 영향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나는 서구식 발성법을 배우고 싶었다.”
 
중국에서는 배울 수 없었나.  
“1970년대까지 중국에서는 외국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80년대 들어서니 소련 노래만 부를 수 있었다. 85년부터 서구의 오페라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서양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언제 시작했나.  
“내가 운이 좋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72년 옌볜예술학교가 세워졌는데 1기로 들어갔다. 서울올림픽 전에는 조선족 대표로 김일성 주석 생일잔치에 노래하러 가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베이징에 왔을 때 환영식 무대 사회도 보았다.”
 
북한에서 공부할 수도 있었을텐데.  
“북한에서는 ‘주체발성’이라 해서 하이C 같은 높은 소리를 못내게 한다. 김일성 주석이 너무 시끄럽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솔 위에 음이 없다. 대신 무쇠같은 소리를 내라고 한다. 소리내는 방법이 다르다. 거기는 다른 세상이다.”  
 
# 이 교수는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후지와라(藤原) 오페라단에 스물 일곱의 나이로 입단하면서 김경식(金慶植)이라는 예명을 일본 오페라계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60년 귀국해 다양한 오페라를 연출하고 주역으로 활동하는 한편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으며 한국 성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귀국 후 중국음악학원 교수가 된 쑹이는 이 교수를 베이징으로 모셔 지도를 청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클라스에서 가장 노래를 못하던 학생에게 이 교수가 “넌 지금부터 콩쿠르 준비를 해라”고 했던 것.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학생이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더니 이듬해 외국 콩쿠르에 나가 수상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심지어 외국 음악 재단의 지원도 받게됐다. “제일 장래성이 보였어. 그런데 그렇게 빨리 상을 받을 줄은 몰랐지.” “그 뒤로 베이징에서는 교수님을 ‘산신령’이라고 불러요. 제일 못하던 애의 진짜 실력을 한눈에 알아봤다고.”  
 
# 이 교수는 딸만 셋이다. 큰딸 정민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이론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했다. 둘째 혜민씨는 서울대 미대를 나와 NYU에서 설치미술을 공부했다. 막내 수민씨는 성심여대에서 비올라를 배웠다. 그가 딸들에게 늘 하는 소리는 “(기댈 생각 말고) 알아서들 살라. 그런데 내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였다.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혜민씨는 “셋다 어릴적부터 악기를 배워 ‘민 트리오’도 추진됐으나 저 때문에 실패했다”며 “첼로를 연습하고 있으면 어느새 아버지가 달려와 ‘거기 틀렸다. 다시 해라’ 하시는 바람에 ‘아빠가 모르는 걸 해야겠다’며 미술로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국립의료원에서 호흡기 내과 의사로 오래 일하며 평생을 내조했던 부인 김재원(82) 여사도 한마디 보탰다. “언젠가 병원에서 골치아픈 일이 생겨서 하소연 좀 하려고 ‘여보, 오늘 있잖아’했더니 ‘잠깐, 오늘 수업하는데 OOO가 고음이 쫙 터졌지 뭐야. 우하하하’하더라고요. 더 말도 못하고 아, 이런 사람이구나 싶었죠.”  
 
# “도쿄에서 공부할 때 가장 답답했던 것은 수업은 따라 가겠는데, 쉬는 시간에 일본 아이들 얘기를 못 알아듣는 것이었어요. 가만히 들어보면 현대 음악이나 미술, 문학 이야기를 하고 있어. 우리는 혼란기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으니 못 알아들을 수 밖에. 모르는 말이 나올 때마다 적어뒀다가 도서관 가서 찾아 읽어보고 했어요. 덕분에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하고도 친해졌지. 학교에 있을 때는 1학년생들에게 꼭 얘기해줬어요. ‘앙드레 지드를 아느냐?’ ‘톨스토이를 읽어봤냐?’ ‘이번 방학 땐 책 5권씩 읽어오라’ ‘음악이 다가 아니다. 폭 넓게 공부하라’고 말이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요.”  
 
1일 오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이인영 교수 미수(米壽) 기념 렉처 콘서트’에서 이 교수가 출연진을 격려하고 있다.

1일 오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이인영 교수 미수(米壽) 기념 렉처 콘서트’에서 이 교수가 출연진을 격려하고 있다.

# 1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홀. 94년 정년퇴임 기념 문하생 음악회에 이어 23년만에 열리는 헌정 무대다. 남성합창단 ‘이 마에스트리(I Maestri)’가 ‘상록수’로 포문을 열었다. 노래의 도입부를 미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한 영화 ‘1492 콜럼버스’의 테마곡인 ‘컨퀘스트 오브 파라다이스’의 일부를 접목해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다. 지휘자인 양재무 이 마에스트리 대표는 “대망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떠나는 선생님의 심경을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콜럼버스의 마음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선구자’ 역시 외국 오페라단에서 직업 가수로 활약한 스승의 모습을 담았다고 했다.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이윤정은 오페라 ‘마농 레스코’의 ‘이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서’ 등을 통해 놀라운 가창력을 선보였다.  
 
2부 첫 순서는 이 교수의 렉처로 시작했다. ‘해방 전후 한국 성악의 발자취 및 영향’을 주제로 사회를 맡은 큰딸 이정민씨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모든 분이 걱정하고 계세요. 이 렉처가 길어질까봐”라는 사회자의 말에 객석에는 큰 웃음이 번졌다.  
 
출연진 전원이 무대를 가득 메우며 부른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본 무대가 끝나고 앙코르가 세 곡 이어졌다. 휠체어에 탄 채 무대로 나온 이 교수는 객석을 향해 두 손을 맞잡고 계속 감사를 표했다. 객석과 함께 부른 ‘오 솔레미오’,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 이어 찬송가 ‘일어나 걸어라’가 울려퍼졌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때 나를 밀어주시네 /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
 
 
글·사진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이인영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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