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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기획]수월성 교육 수요, '비평준화 일반고'로 풍선 효과

중앙일보 2017.07.05 17:16
자사고·외고 폐지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일반고로 자율형공립고에 속하는 오산 세마고. 인근 학부모 사이에서 명문대 입학 실적이 높고, 면학분위기가 좋기로 소문나 있다. 학생 수준에 맞춰 20명 소수정예로 심화학습도 한다. [중앙포토]

자사고·외고 폐지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일반고로 자율형공립고에 속하는 오산 세마고. 인근 학부모 사이에서 명문대 입학 실적이 높고, 면학분위기가 좋기로 소문나 있다. 학생 수준에 맞춰 20명 소수정예로 심화학습도 한다. [중앙포토]

회사원 정영석(50·경기도 의정부 신곡동)씨는 중3 딸의 고교 진학을 놓고 고민이 많다. 당초 딸은 인근 동두천외고에 진학하기로 마음먹고 수년째 준비해왔다. 어학에 관심이 많아 고교 졸업 후엔 해외 대학에 가는 것도 고려 중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출범하고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 내 외고·자사고 단계적 폐지를 선언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에 수월성 교육 대안 떠올라
중학교 성적으로 우수 학생 뽑고 명문대 많이 보내
수능 우수 100개 고교 중 비평준화 일반고 21곳
외고·자사고 “교육과정·선발제 비슷, 우리만 역차별”
"수월성 교육 수요는 인간 본성…어떻게든 풍선효과"

 
최근엔 동두천외고 대신 남양주시 와부읍의 와부고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이 학교는 일반고(자율형 공립고)이지만 경기도에서 ‘명문고’로 통한다.  중학교 내신 성적으로 신입생을 뽑는다. 학생 눈높이에 맞는 수준별 수업을 하고 기숙사 생활도 한다. 우수한 학생이 모여 경쟁하며 실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외고·자사고와 비슷하다. 정씨네 가족이 이 학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정씨는 “비평준화 지역의 일반고 중에선 외고·자사고처럼 우수한 학생들과 경쟁하며 좋은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꽤 된다. 존폐 기로에 놓여있는 외고보다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에 보내는 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이 일면서 '비평준화 일반고'에 관심을 돌리는 이들이 최근 늘고 있다.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으로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가 비평준화 일반고 쪽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비평준화 일반고는 외고·자사고처럼 학생선발권을 가져 우수한 학생이 많이 모인다. 학교가 이런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졸업생들이 이른바 '명문대'도 많이 간다. 하지만 새 정부의 ‘특권학교 폐지’ 대상엔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국에서 비평준화 일반고는 모두 640곳. 재학생 숫자는 37만2517명으로 전체 고교생의 20.8%를 차지한다(2015·한국교육개발원). 대부분 지방 중소도시, 농산어촌에 있다.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대전·울산·수원 등 평준화 지역은 일반고가 추첨으로 학생을 뽑는다. 하지만 이외의 비평준화 지역은 학교장이 선발 방식을 정한다. 대체로 이들 학교가 속한 광역시도에 사는 학생이면 지원할 수 있다. 충남 공주의 한일고, 경남 거창의 거창고 같은 학교는 거주지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한다. 부산 기장군, 대구 달성군처럼 광역시에 속하지만 비평준화인 지역도 있다.  
 
비평준화 일반고 중에서도 학부모의 관심이 몰리는 곳은 재학생들 명문대에 많이 보내는 학교들이다. 입시전문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2015학년도 기준으로 전국 고교 중에서 수능 국·영·수 2등급 이내 비율이 많은 상위 100곳을 가려 보니 21곳이 비평준화 일반고였다. 한일고·공주사대부고(충남 공주)·거창고·세마고(경기 오산)·풍산고(경북 안동)·청원고(충북 청주)·양서고(경기 양평) 등이 대표적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이들 학교는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토론·수준별 수업 등을 늘리고,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응해 동아리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고교는 재단·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기숙사도 운영한다. 
하지만 일반고보다 3배가량의 학비를 받는 자사고와 달리 비평준화 일반고는 학비가 평준화 지역 일반고와 비슷하다.
 
비평준화 일반고들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문의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고 황순홍 교감은 “외고·자사고 폐지 얘기가 나오면서 우리 학교에 교육과정과 입학 방법을 묻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외고·자사고 폐지가 진전되면 관심이 더욱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비평준화 일반고에는 '혹시 자사고 혹은 외고는 아니냐'는 확인도 잇따른다. 공주 한일고의 최용희 법인국장(전 교감)도 “지난달 학교 설명회에 온 부모 중에 우리 학교를 자사고로 오해해 ‘폐지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 분도 있었다. '일반고라 영향 없다’고 설명했더니 ‘안심하고 지원할 수 있겠다’고 좋아하더라”고 전했다.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 중 하나인 양서고(경기 양평)의 자율학습실. 외고· 자사고만큼 입학경쟁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 중 하나인 양서고(경기 양평)의 자율학습실. 외고· 자사고만큼 입학경쟁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

비평준화 일반고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고려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양모(46)씨 가족은 경기도 비평준화 지역에 살다 지난 2월 서울 하계동에 이사왔는데, 다시 경기도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 중이다. 중3 딸을 서울 지역 외고에 보낼까 하는 생각에 이사왔던 것이다. 양씨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괜히 이사를 왔다. 앞으로 외고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외고를 보내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사교육업계에선 새 정부에서 외고·자사고 폐지 논의가 본격화되면 비평준화 일반고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비평준화 일반고들은 명문대 진학 실적이 높고, 교육 환경은 여느 외고·자사고 못지않아 입학 경쟁이 치열한데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으로 경쟁이 한층 더 치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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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가 비평준화 일반고 쪽으로 이동하자, 자사고·외고 측에선 '폐지 논란에서 자유로운 비평준화 일반고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전국자사고연합회 오세목 회장(서울 중동고 교장)은 “진보 교육감들이 외고·자사고는 적대시하면서, 사실상 비슷한 교육과정과 선발 제도를 운영하는 비평준화 일반고는 규제 대신에 오히려 정책·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 A외고 교장도 “비평준화 일반고 중에선 ‘서울대 많이 보내는 학교’라며 홍보하는 곳도 많다. 외고·자사고만 ‘입시 경쟁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 비평준화 지역인 경기도 화성의 한 일반고 교사는 “비평준화 일반고는 대도시와의 교육 격차를 줄이고 지역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측면이 있다. 비평준화 일반고를 자사고·외고에 같은 반열에 놓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정책본부장은 “남과 차별화된 수월성 교육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근본적 욕구다. 외고·자사고가 폐지되면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뿐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든 풍선효과 나타날 수밖에 없다. 외고·자사고 폐지에 앞서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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