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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건 너무 위험해" 소셜테이너와 아티스트 사이 이효리

중앙일보 2017.07.05 10:56
4일 서울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가수 이효리. [사진 일간스포츠]

4일 서울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가수 이효리. [사진 일간스포츠]

이효리(38)는 한국 대중문화사에 있어서 조금 특별한 이름이다. 1998년 핑클로 데뷔 이래 20년간 활동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대중의 관심에서 한 번도 멀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2013년 9월 롤러코스터 출신 기타리스트 이상순과 결혼 이후 제주도로 내려가 칩거하는 ‘소길댁’의 삶을 택했음에도 그녀가 이사를 했다거나 유기견을 입양했다거나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곧 뉴스였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뿐만 아니라 아니 어쩌면 음악보다 더 그의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2013년 제주 생활 시작한지 4년 만의 컴백
'무한도전' '효리네 민박' 예능서 승승장구
새 앨범 '블랙'에도 일상서 보여준 철학 담아
"삶과 결합 큰 울림" "여전히 미숙" 평가 맞서

#‘효리네 민박’과 ‘뉴스룸’ 사이  
'무한도전'에 출연해 멤버들과 함께 춤 수업을 받고 있는 이효리. [사진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멤버들과 함께 춤 수업을 받고 있는 이효리. [사진 MBC]

4년 만의 컴백을 발표했을 때도 가요계보다 그녀를 더 반긴 것은 방송계였다. MBC ‘무한도전’은 6집 앨범 ‘블랙(BLACK)’에 참여한 안무가 김설진과 함께 제주도로 촬영을 떠났고, JTBC ‘효리네 민박’은 아예 소길리 집에 민박집을 차려놓고 손님들을 초대했다. “조용하고 싶은데 잊혀지고 싶진 않다”는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실제 화면에 담긴 모습은 그동안 소비돼 온 ‘섹시퀸’ 이효리의 이미지와는 달랐지만 동물 보호와 채식주의자 등 그가 말해온 ‘소셜테이너’ 이효리의 언행과는 일치했다. 너른 마당에 유기견들이 뛰노는 가운데 한가로이 햇볕을 만끽하는 모습이나 부부끼리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대화는 판타지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효리네 민박'에서 제주도 라이프를 공개한 이상순-이효리 부부. 아이유가 알바생으로 합류했다. [사진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제주도 라이프를 공개한 이상순-이효리 부부. 아이유가 알바생으로 합류했다. [사진 JTBC]

요가와 현대무용의 접목 역시 그녀가 표방해온 삶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도구였다. “카메라가 있는 곳이 아닌 자기가 보는 쪽이 정면”이라거나 “춤을 바꾼다기보단 넓히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이효리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유효한 조언이었다. 김설진 안무가는 “이미 갖고 있는 데 발견하지 못한 것을 끌어내는 데 최대한 집중했다”며 “선 공개된 ‘서울’ 외에도 ‘블랙’과 ‘화이트 스네이크’에서 각기 다른 느낌의 무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효리 효과’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무한도전’은 지난 1월 이후 5개월 만에 12.5%대 시청률을 달성했고, ‘효리네 민박’은 방송 2회 만에 6%를 넘어섰다. 이효리-이상순 부부는 화제성 조사에서도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마건영 PD는 “제작진은 한 번도 힐링이나 욜로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목표로 하지 않았는데 실제 부부의 편안하고 무료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면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만족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효리 역시 “‘그렇게 바쁘게 살지 마세요’ ‘유기견을 입양하세요’ 라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전달되는 느낌”이라며 “내가 뭘 하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조금씩 변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을 스스로 내려놓고 있는 중인 셈이다. 
'뉴스룸' 문화 초대석에 출연해 손석희 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효리. [사진 JTBC]

'뉴스룸' 문화 초대석에 출연해 손석희 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효리. [사진 JTBC]

더욱 놀라운 것은 예능과 교양을 오가며 그녀가 보여준 모습이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사장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되려 모순적 바람을 지적하는 손 사장에 “가능한 것만 꿈꾸는 건 아니지 않냐”며 역공을 가하기도 했다. 걸그룹 출신 아이돌이 뉴스에 나와 위안부 문제를 논하며 “못할 말은 아니니까” “마음이 가서 참여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분명 전에는 보지 못한 그림이다.  
 
#변하지 않는 건 너무 위험해  
이효리는 새 앨범 '블랙'의 수록곡 10곡에 담긴 의미를 한 곡씩 나누어 설명했다. [연합뉴스]

이효리는 새 앨범 '블랙'의 수록곡 10곡에 담긴 의미를 한 곡씩 나누어 설명했다. [연합뉴스]

4일 공개된 앨범에도 변화한 그녀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겼다. 총 10곡 중 9곡을 작사하고, 8곡에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린 것만 봐도 지난 5집 ‘모노크롬(MONOCHROME)’과는 또다른 시도다. 그때는 ‘미스코리아’ 한 곡에만 크레딧을 올렸었다. 키위미디어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형석 프로듀서는 “원래는 더 패셔너블하게 기획할 생각도 있었지만 이미 철학적으로 담고자 했던 자기 생각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제작자로서 서포트해주는 역할만 담당했다”고 말했다.
 
이효리는 타이틀곡을 ‘블랙’으로 정한 것에 대해 “저를 수식하던 컬러를 다 걷어내고 겉에서 보여지는 밝은 면이 아닌 내면의 어두운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밝고 대중적인 ‘러브 미(Love Me)’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유 고 걸’처럼 상큼하고 예쁘긴 해도 그 다음은 없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8년의 세월이 흘렀으면 그만큼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또다른 수록곡 ‘변하지 않는 건’으로도 이어져 주름 하나 없이 보정된 잡지 속 자신의 모습을 일주일이 지나도 썩지 않는 식빵에 비유하기도 한다.
 
미국 LA 사막에서 촬영한 '블랙' 뮤직비디오. [사진 키위미디어그룹]

미국 LA 사막에서 촬영한 '블랙' 뮤직비디오. [사진 키위미디어그룹]

그는 “예전엔 정말 앨범 타이틀도 ‘효리시’ ‘에이치 로직’일 정도로 저밖에 몰랐다”며 “활동하지 않는 동안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인 걸 깨닫게 되면서 나 말고 다른 것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변한 게 제주의 영향인지 요가ㆍ남편ㆍ세월의 영향인지 하나를 콕 찝어서 말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뮤직비디오와 안무에는 이같은 변화상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미국 LA 사막 한복판에서 찍은 ‘블랙’ 속 그녀는 금보다 귀한 물을 갈구한다. 그 부족한 물을 다른 생명체와 나누고 가뭄을 극복함으로써 공존을 이야기하고, 과하게 섹시하던 춤을 걷어내고 자신에 집중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신곡 '서울'에는 30년 이상 살던 고향같은 서울에 대한 감정을 담았다. [사진 키위미디어그룹]

신곡 '서울'에는 30년 이상 살던 고향같은 서울에 대한 감정을 담았다. [사진 키위미디어그룹]

2003년 솔로 데뷔곡 ‘텐미닛’으로 인연을 맺어 이번 앨범을 함께 만든 김도현 프로듀서는 “유튜브 리액션 동영상을 보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그 노래가 가진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반응이 많았다”며 “걸그룹의 롤모델이자 아티스트로서도 개척해야 할 길이었지만 그만큼 진정성이 통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나이가 들면서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지금까지 여성연예인에 대한 소비방식은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효리의 변화는 그간의 삶과 결합돼 더 큰 울림을 준다”고 평가했다. 반면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음악적 시도는 높게 살만 하지만 그에 대한 가산점은 이미 지난 앨범에서 사용한 카드”라며 “대안적 삶을 선도하는 엔터테이너 이효리와 별개로 여전히 노래에 붙지 않는 보컬의 뮤지션 이효리는 아쉽다”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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