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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점 없앨 때 정부 승인 받으라는 정치권

중앙일보 2017.07.05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서울센터 개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겠다.”
 

씨티은행 지점 101개 폐쇄 논란
노조 참가한 여권 주최 토론회서
“금융위가 직접 나서 규제를” 요구
여 의원 “은행법 개정안 발의 검토”
정부 “점포 통폐합 법 위반 아니다”

4일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과 브렌단 카니 한국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장은 서울 종로구 씨티은행 서울센터 개점식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2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를 위한 상담실 25개(9개는 10억원 이상 자산가용)를 중심으로 꾸려진 이곳에는 일반 고객을 위한 기존 은행 창구가 아예 없다. 대신 1층엔 일반 고객이 셀프서비스 방식으로 직접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씨티은행은 126개 개인 고객 영업점 중 101곳을 이달 7일부터 10월 말까지 폐지하고 자산관리서비스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지난 3월 밝혔다. 서울센터 개점은 바로 이 구상의 시작점이다. 같은 날 송병준 씨티은행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간부 수십 명은 여의도 국회에 모였다. 씨티은행 같은 영업점 통폐합을 금융당국이 나서서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을 논의하는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금융노조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이 토론회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참석해 축사했다. 점포 통폐합을 둘러싼 씨티은행 노사 간 갈등이 은행의 테두리를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씨티은행의 점포 통폐합을 금융위원회가 직접 나서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노조와 정치권이 나서서 은행의 자율 경영 대신 ‘관치(官治)’를 주문하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발제를 맡은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씨티은행의 점포 폐쇄는 다른 은행으로도 확대될 거고, 그러면 고객이 은행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고객을 선택하게 돼서 은행의 공익성은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일단 씨티은행의 지점 폐쇄를 중단시키고, 금융위가 지점 통폐합이 은행 이용자의 권익을 침해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해달라”고 주장했다. 금융위의 사전 검증을 거친 뒤에야 점포 폐쇄를 진행토록 해서 일단 시간을 좀더 벌어달라는 주문이다. 이와 함께 김 대표와 송병준 씨티은행 노조위원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점 폐쇄는 금융위 승인을 받아야 가능토록 은행업을 개정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은행 지점 신설·이전·폐쇄는 과거에 금융당국의 인가 사항이었지만 1998년 은행법 개정 이후 이 규정이 사라지면서 은행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이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자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전국 규모 은행에 대해서는 필수 지점 운영 조건이나 전국 점포망 유지 의무를 부여하자고도 말했다. 예컨대 16개 광역시·도에 최소 하나씩 점포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의무조항을 두는 방식이다. 씨티은행의 경우 현재 계획한 대로 점포를 통폐합하면 경남·울산·제주·충남·충북에는 점포가 한 곳도 없게 된다. 이 지역 고객은 은행 지점을 찾아 시·도 경계를 넘어야만 한다.
 
토론을 맡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도 금융위의 적극적인 규제를 강조했다. 전 교수는 “미국 금융당국도 흑인·히스패닉 지역에 대출을 차별적으로 하지 않는 금융회사는 제재한다”며 “씨티은행의 지점 80% 폐쇄는 지방의 가난한 고령층 고객에 대한 의도된 차별이고 이는 인가 취소까지 가능한 은행법 위반 사항”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따라서 금융위가 나서서 ‘80% 지점 폐쇄는 건전하고 타당한 사업계획이 아니어서 은행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국 소비자의 금융 수요를 충족할 사업계획을 가져오라’는 식으로 압박에 나서라는 의견이다.
 
박용진 의원은 “일정 규모 이상 점포를 폐점하면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게 하는 은행법 개정안 발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개입을 주문 받은 금융당국은 난색을 표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진홍 금융위 은행과장은 “법리적으로 검토했지만 대규모 점포 통폐합을 현행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제주도 고객이 은행 지점을 이용 못하는 건 불합리하지만 당국이 나서서 점포정리를 막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점포 이전·폐쇄를 금융당국이 승인하도록 법에 규정한 경우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주요 국가에선 찾아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영국이나 독일의 경우엔 금융당국이 아닌 은행권의 자율 협약 형태로 점포 이전·통폐합을 규제한다. 김 과장은 “정부가 책임있는 자세를 가지고 가장 부작용이 적은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도록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위는 지난 4월부터 전 은행권 임원들과 점포 축소에 대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토론회에 참석한 금융노조 관계자들은 “이런 중대한 문제는 금융위가 중재에 나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성낙조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만약 씨티은행 폐점 사태가 그대로 진행된다면 금융노조는 총파업과 함께 반 정부 투쟁에 나서겠다”며 “금융위는 적어도 지점 폐쇄 진행을 당장 멈추라는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씨티은행이 점포폐쇄 계획이 가로막혔을 때 아예 인터넷 전문은행으로 전환할 가능성에 대한 검토도 나왔다. 만약 씨티은행이 인터넷은행으로 전환을 신청하면 금융당국이 인가를 거부하기란 어렵다는 게 전성인 교수의 분석이다. 자칫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으로 통상마찰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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