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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용해필름(ODF) 전문기업 씨엘팜 장석훈 사장] 알약 못 삼키는 모든 이들이 고객

중앙일보 2017.07.02 00:02
다양한 필름형 약품 13개 제약사에 공급 … 세계 유일의 캐스팅 공법 호평, 해외 제약사와 합자회사 추진
장석훈 씨엘팜 사장이 6월 21일 서울 성동구 씨엘팜 본사에서 구강용해 필름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사진:최정동

장석훈 씨엘팜 사장이 6월 21일 서울 성동구 씨엘팜 본사에서 구강용해 필름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사진:최정동

유아나 어린이용 약은 액체나 가루 형태일 때가 많다. 알약은 삼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복용하기 어려워 알약을 기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세계보건학회는 알약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사람이 10년 안에 세계 인구의 2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혀에 살짝 대면 슬슬 녹는 필름 형태의 약은 어떨까. 필름형으로 만든 약은 물 없이 침만으로도 입 안에서 쉽게 녹기 때문에 복용하기 편할 뿐 아니라 약효도 빠르게 나타난다. 특히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노약자나 소아에게 도움이 된다. 약을 먹이기 어려운 동물에게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세계 인구 10명 중 2명은 알약 못 삼켜
6월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씨엘팜 본사에서 만난 장석훈(64) 사장은 “현재 세계 필름형 약품 시장의 규모는 5조원 정도로 전체 제약시장 규모(1000조원)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거의 모든 약을 필름형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필름형 약품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구강용해필름(ODF) 제조 전문인 씨엘팜은 현재 발기부전·치매·인후염 치료제 등 18종류의 제품을 종근당·유한양행·대웅제약을 비롯한 13개 제약사에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하청 형태가 아니라 씨엘팜에서 원재료를 직접 들여와 제품을 만든다. 구강용해필름 제조사는 씨엘팜을 포함해 국내에 4개, 해외에 15개 정도 있다. 씨엘팜을 제외한 국내 3사는 구강용해필름형뿐만 아니라 정제·캡슐형 제품도 만든다. ‘구강용해필름형 제품 세계 1위’가 목표인 씨엘팜은 회사가 출범한 2006년부터 한우물만 파고 있다. 전체 직원 53명 가운데 연구·검사 인력이 21명에 이른다.
 
씨엘팜의 강점은 경쟁사와 전혀 다른 제조 공법에 있다. 국 내외 다른 회사는 모두 약물을 바른 후 필름을 자르는 롤 방식을 쓰고 있다. 이와 달리 씨엘팜은 10년 넘는 연구개발에 끝에 한 장씩 자른 필름에 약물을 하나씩 분사하는 캐스팅 방식을 개발했다. 장석훈 사장은 “기존 롤 방식에서 50~60%에 그쳤던 수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일주일 이상 걸리던 생산 시간을 5분으로 단축시켜 생산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관련 특허도 계속 출원하고 있다. 2009년 ‘식용필름발명특허’를 시작으로 필름형 의약품 제조설비에 대한 특허 13개를 국내외에 등록했다. 국내 11개, 해외(미국·일본) 2개다. 장 사장은 “해외 진출 때 협상용 카드로 관련 기술력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씨엘팜은 현재 몽골·카자흐스탄·멕시코의 제약사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베트남·필리핀·대만·중국의 제약사와도 공급 계약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 특정 약품의 생산·판매 허가를 받았더라도 그걸 수출하려면 해당국의 제약사가 자국에서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지 공장 건설 때도 마찬가지다. 현지 회사와 합자회사 형태라야 허가를 좀 더 빨리, 원활하게 받을 수 있다. 씨엘팜은 현재 중국·일본·브라질·말레이시아·미국의 제약사와 합자회사를 세워 현지에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협상 과정에서 씨엘팜의 비장의 무기는 기술력이다. 대개 합자회사를 세울 때 서로 일정 비율로 자본금을 내지만 씨엘팜은 돈 대신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특허 받은 기계는 돈을 받고 파는 조건도 붙인다. 그만큼 구강용해필름 제조 공정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씨엘팜 제품의 품질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장 사장은 “필름형 약품뿐만 아니라 기계까지 팔 수 있기 때문에 이르면 내년부터 매출의 80% 이상을 수출로 올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올해 매출 목표를 150억원 정도로 잡은 장 사장이 내년 300억원, 5년 안에 5000억원을 벌겠다고 큰 소리치는 데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국내 필름형 약품 시장 규모는 300억~500억원에 불과하지만 세계 시장은 5조원 규모이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이 더 커질 여지도 충분하다고 본다. 국내에서도 매출을 늘릴 카드가 여럿 있다. 장 사장은 “올 가을 홈쇼핑에 필름형 홍삼 제품을, 편의점에 필름형 숙취 해소제를 내놓으며 제품 다각화를 시도한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동물용 의약품 시장에도 진출한다. 공장을 따로 지어야 하는데 하반기에 착공한다.
 
다양한 필름형 제품에 도전하고 있는 장 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의류 무역업에 뛰어든 그는 1년에 54개국을 누빌 정도로 사업을 키웠다. 그러다 한국 사업을 정리하고 198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도 의류 무역업을 이어가던 그는 2000년에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다. 1년에 3개월은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상에 심신이 지쳐서다. “몇 달 푹 쉬었어요. 그런데 좀이 쑤시더군요.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에 후배 소개로 화장품 회사를 인수했어요. 회사 이름은 스페인어로 ‘나를 보라’는 뜻의 ‘미라(Mira)’를 넣어 미라라이프로 정하고 주름 개선 화장품인 미라보텍스를 내놨는데 1년에 1000만 달러 넘게 벌었죠.”
 
의류 무역업에 이어 화장품 사업에도 성공하나 싶었는데 사달이 났다. 신문 광고 문구로 ‘바르는 보톡스 미라보텍스’라고 썼는데 보톡스로 유명한 앨러간에서 소송을 냈다. 그런 과정에서 고용한 유태인 변호사가 필름형 구강청결제를 먹는 모습을 봤다. 장 사장은 소송 통에 정신이 없을 때였는데도 ‘아, 저거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곧바로 앨러간의 오너를 찾아가 합의했다.
 
1년에 1000만 달러 벌던 화장품 사업 과감히 정리
화장품 사업을 정리한 장 사장은 2003년 미국에 크리에이티브 라이프(Creative Life)라는 회사를 만들고 필름형 의약품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6년까지 미국에서 17명의 연구진과 필름 원천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기술을 축적한 장 사장은 2006년 귀국해 씨엘팜을 창업했다. 미국에서 만든 회사인 ‘Creative Life’의 첫 글자를 따서 약학·약국(pharmacy)이란 단어에 붙여 사명을 지었다.
 
“미국에서 창업했으면 지금쯤 거액을 손에 쥐었을 것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규제는 많고 자본은 조달하기 어려운 한국에 왜 왔느냐는 것이죠. 실제로 그렇긴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묘한 애국심 같은 게 생깁니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희망이 보입니다. 내년에 상장하고 수출과 해외 진출도 더욱 늘릴 계획입니다.”
 
남승률 기자 nam.se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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