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G Picture] ‘정치적 부활’이라는 순리

중앙일보 2017.07.01 02:00 종합 25면 지면보기
김환영 논설위원

김환영 논설위원

좌파·우파·중도파 등 정치 스펙트럼상의 위치를 떠나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적어도 현 정치 상황에서는 거의 ‘좀비’가 되었기에 상심하는 국민·유권자도 있으리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때가 차면 아직 수명(life span)이 끝나지 않은 정당·정치인·정치세력이 언젠가는 부활한다는 것을 역사가 보장한다. 또 증언한다.
 

역사 보면 정치의 세계에서도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금언
교훈 배워야 정치적으로 부활
몰락 정당도 과소평가는 금물

대체적으로 ‘부활’은 종교적인 용어다. 종교 중에서도 그리스도교와 밀접하다. 예수의 부활과 가장 밀접한 단어다. 신국(神國)의 도래를 온몸을 다해 외치던 예수가 죽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라고 외치던 민중이 빌라도 앞에서는 그를 ‘죽여라!’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믿음에 따르면 예수는 부활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죽지 않고 부활할 수 없다. 죽음이라는 바닥, 고통 없이는 부활이라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생겨날 수 없다. 정치적 부활도 마찬가지다. 부활은 정치의 세계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많은 국내외 지도자들이 정치적 죽음과 부활을 체험했다. 서구의 경우에는 누가 있을까. 『20세기의 정치적 부활: 정치 지도자의 추락과 부상(Political Resurrection in the Twentieth Century: The Fall and Rise of Political Leaders)』(2012)을 쓴 레슬리 더플러는 세 명을 꼽는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캐나다의 피에르 트뤼도다. 그들은 모두 정치 권력의 정점을 누리다가, 권력을 상실해 적어도 잠시 ‘권력의 황야’에서 방황하다가, 다시 권력의 심장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들은 정치의 세계에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허튼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예시한다.
 
그들은 어떻게 복귀했을까. 더플러에 따르면 그들은 성격이나 처한 정치적 상황이 모두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권력의 지옥’ 혹은 ‘연옥’으로 떨어졌을 때 와신상담하며 자신의 실권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반추했다. 또한 그들은 모두 자신이 책임졌던 민족국가를, 자신이 권력의 세계에 다시 진입한다면 어떻게 다스릴지에 대해 고민했다.(물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한 권력 후계들의 뼈아픈 실수도 한몫했다.)
 
모든 정치적 부활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멕시코의 안토니오 로페스 산타안나(1794~1876) 장군이 그런 경우다. 그는 스페인을 격파하여 독립(1821년)을 쟁취한 공으로 멕시코 대통령 자리를 11번이나 차지했다. 권력이 요구하는 데 따라 그는 보수주의자이기도, 진보주의자이기도, 민주주의자이기도, 독재자이기도 했다. 그는 멕시코 헌정사에서 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깊은 상흔을 남겼다.
 
정치인 개인이나 정당뿐만 아니라 정치 이념 또한 흥망성쇠를 겪는다. 개인의 경우에는 대부분 한 차례의 흥망, 부상과 몰락(rise and fall)으로 끝난다. 예컨대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가 그렇다. 그는 27세에 집권해 41년 동안 나라를 이끌다가 몰락했다.
 
이념은 보다 장구하다. 흥망성쇠의 한 사이클이 끝나면 또 다른 흥망성쇠의 사이클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다. 처음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제1, 2차 세계대전 전후와 냉전 시기에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에 비해 효율성·효과성이 떨어진다고 공격받았다.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부활로 이끈 것은 미국이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도 일정한 기여를 했다.
 
세계는 지금 좌편향이건 우편향이건 민주주의 전체가 위기다. 그래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를, 프랑스는 중도파 에마뉘엘 마크롱을 선택했다. 한국은 적폐 청산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유권자는 중도좌파를 이번에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정당 정치는 그 속성상 영원한 생명도, 영원한 죽음도 없다. 정치는 끊임없이 죽고, 끊임없이 부활하기를 요구한다. 예컨대 2005년 영국 보수당은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수당은 2015년 부활했다. 노동당의 몰락은 어쩌면 토니 블레어 총리의 경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당의 극성기에 이렇게 말했다. “절대 보수당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신(神)의 선택·은총을 받게 되는 이유는 신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의 선택을 받은 자는 전적으로 신에 의존해야 한다. ‘정치의 신’의 선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의 선택을 받으려면 아마도 기도가 도움이 될 것이다. 기도에 해당하는 정치적 행위는 뭘까. 정책 개발을 통한 지지 확보가 아닐까. 불과 1년 전 한국을 관찰하는 외국 전문가들은 지금의 집권당, 당시 야당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도전과 혁신의 공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실력으로 얻은 권력은 오래간다. 운으로 얻은 권력이라도 성과가 있으면 오래간다. 실권하더라도 헌정사에서 지울 수 없는 업적이 있으면 언제든지 정치적 부활이 가능하다.
 
일반인도 정치인도 누구나 관뚜껑 닫기 전까지 모른다. 기회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온다. 그저 순리(順利)보다는 순리(順理)를 추구하다 보면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게 아닐까.
 
김환영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