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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의 ‘바이 트럼프’ 전략 … 공화당 지역 콕 집어 투자 선물

중앙일보 2017.07.01 01:32 종합 5면 지면보기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워싱턴 내셔널 몰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워싱턴 내셔널 몰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미에 ‘숨은 코드’가 있다.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에서 진화한 ‘바이 트럼프(Buy Trump)’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밀집한 지역에 대한 집중투자 전략을 말한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현대차 앨라배마, LG전자 테네시
SK는 오클라호마·텍사스에 투자
트럼프 재선 위해 일자리 필요한 곳
“정의용 방미 후 재계 수행단 변화”
52개 기업이 5년간 15조 집중 투입

문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는 52개 국내 기업이 수행단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향후 5년간(2017~2021년) 미국에 128억 달러(14조6000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시기적으로는 연임이 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일정과도 겹친다.
 
순방단에 합류한 한 인사는 30일 본지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사전 방미 이후 재계 수행단의 성격에 변화가 있었다”며 “이른바 ‘레드 스테이트(Red State)’라 불리는 트럼프 지지 성향의 주(州)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맞춰졌다”고 말했다. 투자의 초점은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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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3억8000만 달러 규모의 가전 공장을 설립한다. 삼성전자의 사상 첫 미국 가전 공장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백인 노동자’ 중심의 공화당 지지 지역으로 꼽힌다.
 
29일 문 대통령과 상원의원 간담회에 참석한 이 지역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삼성의 투자 결정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5억 달러가 추가 투자될 삼성의 반도체 공장은 공화당의 본산인 텍사스주 수도 오스틴에 있다. 텍사스의 상원의원인 존 코닝은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다.
 
익명을 원한 수행단 인사는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를 넘기고 4년 뒤 재선을 하려면 지지층의 총결집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과 직결되는 일자리를 확실하게 제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방미 기간 테네시주에 2억5000만 달러짜리 가전 공장을 세운다고 발표했다. LS그룹이 3억2000만 달러를 투자해 자동차부품 공장을 만들겠다고 밝힌 곳 역시 미국 남부 지역이다. 모두 대표적인 레드 스테이트다.
 
현대자동차는 31억 달러를 투자해 앨라배마 공장의 미래 자동차 개발 역량을 높이기로 했다. 이곳은 트럼프 정부의 실세인 제프 세션스(71) 법무장관의 지역구다. 그는 인종차별성 발언으로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고도 트럼프 정부의 첫 법무장관이 됐다.
 
경제계에선 “문 대통령이 구상한 ‘트럼프 맞춤형’ 미국 투자 계획의 핵심은 셰일가스 개발”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는 SK그룹이 나섰다. SK는 5년간 미국 에너지산업에 44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SK가 진행하고 있는 셰일가스 광구와 셰일을 액화해 만든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시설은 공화당 강세 지역인 오클라호마와 텍사스에 있다. 셰일 채굴 지역인 미국 남부 지역과 별도로 북부의 백인 노동자 밀집 지역에 LNG 공장이 추가로 들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1호 법안’으로 제시한 ‘트럼프케어(미국건강보험법)’의 상원 표결을 앞두고 여당 내부의 반대파에 막혀 표결을 미룬 상태”라며 “이들을 설득할 긴급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상원은 공화당이 52석, 민주당이 48석을 차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반대파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트럼프 정부는 위기를 맞게 돼 있다. 트럼프로서는 한국식 ‘지역 예산 폭탄’이라도 투하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해 온 한 인사는 “기업가이자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문 대통령 역시 이번에 협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딜 메이커(Deal Maker)’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고 전했다.
 
워싱턴=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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