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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명 중 넷은 주 3일 이상 야근 … ‘슈·톡·칼법’ 지켜질까

중앙일보 2017.07.01 01:00 종합 12면 지면보기
‘저녁이 있는 삶’ 가져다줄 법안 잇따라 발의
금요일 오후 6시 회사 사무실.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
민주당, 이달 임시국회서 처리 계획
“여야가 머리 맞대고 법 개정해야”

실행 어려운 직장 풍토
남자들 실적 중시해 육아휴직 안 해
“일 많아 정시에 칼퇴근할 수 없어”

기업 문화 조사해보니
직장인 주5일 기준 평균 2.3일 야근
86%가 퇴근 후 카톡으로 업무 경험

현장서 효과 발휘하려면
잦은 회의·보고, 과다한 결재라인 등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 고쳐야

▶부장=“자~금요일이니까 퇴근할 수 있는 사람은 퇴근해요!”(직원들 ‘야호’ ‘앗싸’ 환호)
 
▶직원=“(양복 윗도리를 입으면서)부장님은 금요일인데 뭐하실 거예요?”
 
▶부장=“난 야근해야지 뭐….”
 
짧은 정적이 흐른 뒤 직원들은 밀물처럼 책상으로 돌아와 힘차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건강기능식품 한 포를 입에 물고서. ‘불금 야근’이 공감 백배의 광고 소재로 쓰이는 피로사회, 지친 직장인들의 눈은 여의도 정가로 향하고 있다. 왜?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유력 후보들은 앞다퉈 직장인 삶의 질을 개선하는 법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슈퍼우먼 방지법, 카톡 금지법, 칼퇴근법 등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슈·톡·칼’법이 ‘저녁이 있는 삶’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법안의 대전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 일례로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대표 발의한 ‘슈퍼우먼 방지법’은 남편도 출산휴가 30일을 가고, 육아휴직을 현행 12개월에서 16개월로 늘리되 16개월 중 부모 한쪽이 반드시 3개월 이상을 신청해 육아를 분담하도록 한다.
 
‘칼퇴근법’은 대선 때 5개 정당이 공통으로 공약했다. 이 법안에 가장 앞장섰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기업이 근로시간을 기록해 공개하고 퇴근 후엔 최소한 11시간 휴식을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지난 3월 발의했다.
 
이 법에는 상사가 퇴근 후 카카오톡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업무지시를 할 경우 지시를 받은 직원에게 회사가 할증임금을 지급하는 ‘카톡 금지법’ 항목도 포함됐다. 카톡 금지는 문 대통령도 공약한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법안들을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김태년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민이 장시간 근로에 지쳐 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국민의 바람에 대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2300.4시간으로 2015년 기준 세계 1위 국가인 멕시코(2246시간)보다 54시간 정도 많다.
 
하지만 법안 통과보다 높은 벽은 따로 있다. 실제 직장에서 실행될 수 있느냐다.
 
‘스마트워크’의 모범사례로 언론에 소개됐던 국내 대형은행. 여기에 다니는 A과장은 “남자가 육아휴직한 사례는 없다”고 단언했다. “은행은 영업실적이 절대적이다. 휴직하면 실적이 제로인데 누가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회사에선 수요일과 금요일은 칼퇴하라고 하는데 일이 많아 도저히 정시에 퇴근할 수 없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야근을 당연시하는 인식도 걸림돌이다. 국내 굴지의 생명보험사에 근무하는 B차장은 이렇게 토로한다.
 
“부장들이 술자리에서 ‘누가 밑의 애들(직원)을 더 많이 쪼아서 얼마나 힘들어하느냐’를 놓고 경쟁하듯 무용담을 늘어놔요. 그래야 임원이 될 수 있다며. 부장이 술 먹다가 다시 들어올 것 같은 날은 다들 (집에 가지 않은 것처럼) 아예 윗도리를 두고 퇴근해요.”
 
실제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 컨설팅회사가 공동으로 국내 기업 100개사, 임직원 4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 기업의 조직 건강도와 기업 문화’를 조사한 결과 ‘습관화된 야근’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직장인들은 주 5일 기준으로 평균 2.3일을 야근하고, ‘3일 이상 야근자’ 비율도 43%에 달했다. 그러나 생산성은 야근을 하는 직원이 오히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야근의 역설’이다.
 
또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어느새 ‘국민 업무지시 창’이 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근로자 24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무려 86%가 퇴근 후 스마트폰 업무를 경험했다. 중견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D팀장은 “견디다 못해 상사에게 토요일 카톡 업무는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나는 일 생각하느라 밤에 잠도 못 자는데 너는 회사에 로열티가 너무 없다’며 화를 내 황당했다”고 말했다.
 
공무원 사회는 문재인 정부의 근로 단축 기조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분위기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토요일은 업무 관련 전화나 카톡 금지를 원칙으로 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부처별 체감온도는 다르다. 기재부의 E국장은 “부총리가 (카톡)안 한다고 하니 토요일엔 확실히 안 한다”며 “주중에도 자료 요청 같은 것은 필요한 사람만 찍어서 하지 단체방에다는 절대 안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산업부 F서기관은 “그런 훈풍이 여기까지는 오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하는 수요일’이란 게 있는데 그날 초과근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좋은 법이 시행돼도 솔직히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기업과의 공감대 없이 슈톡칼법을 밀어붙일 경우 오히려 근로자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 상당수 기업은 직원을 고용할 때 월급에 야근·주말수당 등을 미리 예측해 반영하는 ‘포괄임금 계약제’를 채택하고 있다. 만약 법에 따라 육아휴직 보장, 야근 금지, 초과 근무 수당 지급 등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기업이 외려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정규직 채용 및 전환을 꺼릴 것이란 전망이다.
 
한 중견 사무기기 제조업체 과장은 “영업직 특성상 초과 근무가 일상화돼 있고, 저녁 술자리나 카톡 보고 등 어디까지를 일로 볼지도 불분명하다”며 “법적 처벌이나 감시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면 법이 악용될 여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리더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롯데그룹은 지난 5월 신동빈 회장이 ▶남성 직원 1개월 이상 의무 육아휴직 제도 ▶육아휴직 2년 보장 등을 약속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최근 아빠가 된 롯데계열사 G과장은 “아이가 돌을 지나면 1개월 휴가를 쓰고, 내년 말께엔 1년 육아휴직도 계획하고 있다”며 “간부들은 내켜하지 않지만 (신동빈) 회장님이 무조건 가라니까 눈치 안 보고 가는 분위기”라고 했다.
 
대한상의 기업문화팀 황미정 과장은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기업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일이 줄어서’ 야근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며 “일하는 방식에서 낭비적인 요소를 없애고 고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불분명한 업무지시 ▶잦은 회의로 인한 무력감 ▶과다한 결재라인 ▶사소한 것까지 보고 요구 등이다.
 
대한상의는 오는 9~10월 업무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발표할 계획이다.
 
 
[S BOX] 폴크스바겐, 업무 종료 30분 뒤부터 회사 e메일 자동중단
선진국에선 장시간 과잉 근로를 막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기업 폴크스바겐은 업무 종료 30분 뒤부터 임직원 스마트폰의 회사 e메일 기능을 자동으로 중단시켰다. e메일 서버는 다음 날 근무 시작 30분 전에 다시 살아난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기술적으로 실현한 셈이다. 프랑스는 이 권리를 아예 법으로 보장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근로계약법에 근로자(직원 50명 이상인 기업)가 업무시간 외 업무 관련 전화나 e메일, 메시지 등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했다.
 
유연근무제는 이미 대세다. 일본의 도요타는 지난해 8월부터 일주일에 두 시간만 회사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제를 도입했고, 구글은 직원이 업무 효율성이 높은 시간을 선택해 근무하는 자율시간제를 시행 중이다.
 
한국에선 독일업계의 유연근무제 형태인 ‘근로시간 계좌제’를 연구·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야근이나 휴일근무 등 초과노동을 했을 경우 ‘근로시간 계좌’에 저축해 뒀다가 필요할 때 휴가처럼 꺼내 쓰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선 초과노동을 수당 대신 휴일로 보상해, 비용지출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과잉근무로 사망자가 속출해 사회 문제가 됐던 일본은 ‘근로 간 인터벌 제도’를 장려하고 있다. 퇴근 후 다시 일할 때까지 최소한의 간격을 보장해 ‘휴식이 있는 삶’을 구현하는 게 목적이다. 일례로 일본 생활용품 기업 유니팜의 근로 인터벌은 8시간이다. 야근으로 오후 11시에 퇴근했을 경우 다음 날 오전 7시 전에 출근해선 안 된다. 유럽연합(EU)은 1993년부터 매일 근무와 근무 사이에 최소 11시간의 휴식 보장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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