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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트럼프 지지 역풍 … 극우 매체 두 달 새 광고 90% 줄어

중앙일보 2017.07.01 01:00 종합 15면 지면보기
거세지는 소비자 ‘엄지 파워’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의 창업주 트래비스 캘러닉 최고경영자(CEO)가 사퇴하자 트위터에선 “우버 지우기(#deleteUber) 캠페인의 승리”라는 자축이 쏟아졌다. 우버 애플리케이션(앱)을 지우고 우버 이용을 중단하자는 의미로 해시태그(#)에 ‘우버 지우기’를 덧붙인 이 캠페인은 지난 1월 말 본격화됐다.
 

광고 퇴출 압력
폭스뉴스의 앵커 오라일리 성추문
시청자 눈 맞추려 60개사 광고 중단

조직적인 시민운동
반트럼프 단체 ‘지갑을 움켜쥐어라’
이방카 브랜드 등 70여 곳 불매운동

CEO 명줄까지 좌우
우버 앱 지우기 캠페인 다섯 달 만에
창업주 캘러닉, 윤리 논란 겹쳐 사퇴

기업에 치명적 타격
소비자들 SNS 뒷담화에 더 영향
“나쁜 평판으로 주가 하락 가장 걱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택시 기사들이 파업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 우버가 뉴욕공항에서 평소보다 싼 요금으로 영업했다는 게 알려지면서다. 캘러닉 CEO가 트럼프 경제자문단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반(反)트럼프 층의 거부감을 불렀다. 일주일도 채 안 돼 20만여 명이 우버 앱을 지우고 경쟁업체인 리프트(Lyft)로 옮겨갔다. 캘러닉은 떠밀리듯 트럼프 자문단에서 사퇴했다. 여기에 기업 내 성추행과 윤리 의식 논란까지 불거지자 마침내 우버는 창업주를 내쫓는 극약 처방을 택했다.
 
우버 지우기 캠페인은 소비자 불매운동(보이콧)이 인터넷 소셜미디어와 만나 극강 파괴력을 발휘한 대표 사례다. 모바일폰을 통해 소비자 개인이 취향과 가치를 시시각각 표출하는 이른바 ‘엄지 파워’가 기업 CEO의 명줄까지 좌우하게 된 격이다. 우버의 경우엔 문제 된 기업을 소비자가 직접 혼내줬지만 개개인의 불매로 효과를 얻기 힘든 곳엔 간접 방식의 보이콧도 동원된다. TV 광고 퇴출 압력이 대표적이다.
 
지난 6월 중순 JP모건체이스는 NBC의 간판프로그램 ‘메긴 켈리쇼’에 붙이던 광고를 일시적으로 뺐다. 2012년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날조된 것이라 주장하는 극우 음모론자 앨릭스 존스의 인터뷰 방송을 앞두고서다. 트위터에선 해시태그 운동 ‘창피하다 NBC(#shameonNBC)’가 확산되고 있었다. JP모건 측은 “이런 방송의 홍보에 본사 이름이 등장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광고를 뺀 이유를 설명했다. 최고마케팅경영자(CMO) 크리스틴 렘카우도 개인 트위터에 “광고주로서 (이런 방송에) 화가 난다”고 적기도 했다.
 
앞서 지난 4월엔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빌 오라일리가 성추문에 휩싸이자 벤츠와 BMW·현대자동차 등 60여 개 광고주가 일제히 폭스뉴스 광고를 중단했다. 오라일리 퇴출을 요구한 시청자(소비자)와 눈 맞추기를 한 것이다. 온라인매체 쪽도 마찬가지다. 극우 성향 온라인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에 광고하는 브랜드는 지난 3월 242개에서 5월 26개로 두 달 만에 90% 가까이 줄었다. 브레이트바트가 트럼프 대통령의 논란이 되는 정책을 공개 지지해온 데다 소속 저널리스트들의 잇단 ‘막말 스캔들’이 불거지면서다.
 
이들 기업이 논란이 되는 프로그램이나 매체에서 광고를 빼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을 후원하는 것으로 소비자에게 비칠 경우 브랜드 가치가 치명타를 입기 때문이다. 디지털마케팅 업체 미디어어소시에츠의 벤 쿤즈 수석부회장은 “최근 들어 광고 자체보다 광고가 노출되는 맥락이 문제 될 때가 많아졌다”며 “정치가 양극화하면서 소비자들도 이런 이슈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분노하는 편”이라고 진단했다(비즈니스인사이더 1월 17일 보도).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구입할 때 정치·사회 이슈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각종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글로벌 홍보컨설팅기업 에델만이 4개국 소비자 1만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57%가 브랜드의 정치·사회 입장 때문에 물건을 사거나 보이콧한 적 있다(파이낸셜타임스 6월 5일 보도). 이들 중 30%는 3년 전보다 이 같은 경향이 강화됐다고 답했다. 응답자 넷 중 하나는 “가치를 나누고 싶은 브랜드를 더 산다”고 답했고, 절반(51%)은 정부보다 브랜드가 사회 고질병 치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소비자의 ‘지갑’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에 상을 주거나 벌을 줄 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소셜미디어와 만나 조직적인 시민운동으로 발현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갑을 움켜쥐어라(Grab Your Wallet·GYW)’라는 이름의 반트럼프 단체다. GYW는 지난해 10월 여성의 생식기를 ‘움켜쥔다’는 언급이 담긴 트럼프의 음담패설 영상이 공개된 직후 이를 패러디한 이름으로 출범했다. 이들은 트럼프의 골프장과 호텔 등은 물론이고 트럼프 일가 브랜드 제품을 파는 유통업체, 나아가 트럼프에 지지선언을 하거나 기부한 업체까지 모두 ‘블랙리스트’로 공유하면서 불매 운동을 독려한다.
 
특히 트럼프의 딸 이방카 트럼프의 브랜드를 취급하는 대형 유통업체 노드스트롬이 집중 표적이 됐다. 지난 2월 노드스트롬은 “판매 부진”을 이유로 이방카 의류 브랜드를 퇴출시켰지만 실제론 불매 운동의 압력이 결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GYW를 이끄는 섀넌 쿨터 대표는 노드스트롬의 판매 중단 결정 이후 “23만 건의 트윗과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불매 손실 끝에 그들이 마침내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며 환영했다. 30여 업체로 시작했던 GYW의 블랙리스트는 6월 말 현재 70여 곳으로 늘었다.
 
이들 불매 운동은 지난 세기와 확연히 다른 ‘정치적 선명성’이 특징이다. 1990년대 나이키의 불법 아동 노동이 논란이 됐을 때 소비자들이 요구한 건 나이키 퇴출이라기보다 근로환경 개선이었다. 나이키는 전 세계 600여개 공장에 대해 전면 감사를 벌였고 아동 노동 근절 등 산업 전반의 변화가 뒤따랐다. 반면 GYW라든가 이와 비슷한 트럼프 저항운동(The Donald J. Trump Resistance·DJTR) 같은 캠페인은 제품의 품질이나 공정 과정을 따지는 게 아니다. DJTR 웹사이트는 “우리의 돈이 지지하는 가치를 위해 쓰이게 하자. 그렇지 않으면 억압과 차별에 돈을 대주는 게 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트럼프 제품을 팔거나 이들과 연관된 사업을 하는 것은 인종·성차별에 동조하는 것이고 이런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이 때문에 이런 불매운동에서 기업이 궁극적으로 타격받는 것은 세간의 평판이다. 소비자 운동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브라이든 킹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당장의 실적악화라기보다 나쁜 평판으로 인해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TV 등 주류매체가 주름 잡던 시절엔 기업이 광고를 통해 이미지를 윤색하는 게 가능했다. 요즘 소비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친구’가 들려주는 브랜드 뒷담화에 더 영향 받는다. 이런 소셜미디어의 피드(콘텐트의 실시간 전달)를 일일이 통제하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게 기업들의 고민이다.
 
오히려 이런 트렌드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사회 이슈에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하면서 이를 브랜드 가치로 재확산시키는 것이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 목소리를 냈던 구글은 400만 달러(약 47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이민자와 난민구호단체에 기부했고, 스타벅스 CEO는 난민 1만 명을 고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홍보 컨설팅업체 멀버리앤드애스터의 창업주 크리스 알리에리의 처방은 다음과 같다. “브랜드의 성공은 기업이 추구하는 대의에 충실할 때 가능하다. CEO가 그럴듯한 성명을 내고 그치는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활동이나 공헌을 할 때 신뢰감을 준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싶다면 기업이 투자해야 할 곳은 ‘이미지 포장’이 아니라 ‘가치의 실천’이란 얘기다.
 
[S BOX] 불매운동, 애꿎은 가맹점 영세업주들에게 불똥
지난 6월 국내 인터넷에선 치킨 프랜차이즈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이하 ‘호식이’) 불매운동이 뜨거웠다. 최호식 ‘호식이’ 전 회장이 20대 여비서를 성추행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이 “불매운동을 통해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주요 카드사의 ‘호식이’ 가맹점 결제액 분석 결과 사건이 처음 보도된 지난달 5일 이후 하루 매출이 20~40%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 자료).
 
문제는 이 손실이 애꿎은 가맹점 영세업주들에게 돌아갔단 사실이다. 앞서 미스터피자 경우도 마찬가지다. 창업주인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의 폭행 사건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미스터피자는 이후 가맹점 대상 ‘갑질 영업’과 불법 거래가 드러나면서 불매운동의 표적이 됐다. 매출 하락 직격탄을 맞은 일부 매장은 아예 문을 닫기도 했다.
 
이 때문에 본사 오너 리스크로 인한 가맹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프랜차이즈 오너의 일탈로 피해를 본 가맹점주들을 지원하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달 20일 발의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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