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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이야기] (32) 희망을 나누는 사람

중앙일보 2017.07.01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절망하는 이웃 손가락질하지 말고 손잡아 줘야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정말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절망과 자살의 횡포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기승을 부린다. 스위스에서는 ‘존엄과 탈출(Dignitas et Exit)’ 같은 단체들이 나서서 이 남루한 세상 편히 떠나겠다는 불치병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돕고 있다. 안락사 문제는 논란이 분분한 영역이며, 이 자리에서 가타부타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어떠한 경우에도 판단을 서두르지 않고 현실의 복잡다단함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철학자의 근본 책무다. 무엇보다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길 선택한 사람을 무작정 매도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아니, ‘선택’이란 단어가 과연 적절한가?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것은 아닌가? 그런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들조차 신성한 생명을 누렸던 한 존재로서 당연한 존중과 존엄을 누려야 마땅하다.
 
어제 나는 장례도우미 일을 하는 친구와 함께 산책했다. 햇살 가득한 화창한 봄날은 수많은 삶의 가능성으로 아롱져 있었다. 친구는 최근 자신이 직접 장례를 치른 사람들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나는 건물에서 떨어진 어느 목수였고 다른 하나는 고통을 스스로 끝내겠다며 차를 몰고 벽으로 돌진한 젊은 가장의 얘기였다. 지난주에는 70대 부부가 손을 맞잡고 생의 마지막 열차에 오르겠다며 ‘존엄과 탈출’의 도움을 빌렸다. 죽음의 병을 앓는 아내 없이 살 수 없다면서 남편이 내린 결정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약을 탄 샴페인 잔을 단번에 들이켰다.
 
살아남아 있는 우리들에게는 많은 숙제가 던져진다.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봉쇄돼 내일이 캄캄한 숱한 약자를 이 사회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카뮈는 우리에게 참여정신을 역설한다. 이제 막 삶을 끝내려는 누군가와 길에서 마주치고도 모른 척 지나간다면 그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다. 죄의식에 사로잡히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 어떤 운명도 우리의 소관은 아니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움튼 행위에는 무수한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마련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산 자로서 산 자를 적극 도와야 한다는 점이다.
 
결코 죽어간 사람에게 손가락질해선 안 된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웃의 고통에 귀 기울여 절망 속의 그들을 손잡아 주고 어깨동무해 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련이 아무리 고되도 결국 삶은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진리를 이야기해 줄 줄 알아야 한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당장 목을 매려는 순간까지도 행복을 추구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비겁하다, 나약하다며 칼끝 같은 비난과 야유를 휘두르기보다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희망을 불어넣는 데 우리의 힘을 모으자.
 
그 누구의 운명이 우리 소관이라서가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앞날도 확신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으로서의 자유, 이 무한한 가능의 세계는 숭고한 도전을 부르는 영역이기도 한 것임을 명심하자. 각자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영혼의 관대한 능력을 베푸는 데 인색해선 안 된다.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 희망을 나누는 사람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
  
※다다음주부터는 일본인 칼럼니스트 나리카와 아야(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씨의 글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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