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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자연계 ‘협력 끝판왕’ 개미의 세계

중앙일보 2017.07.01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초유기체
베르트 횔도블러·

일꾼·여왕개미 등 계층·분업화
군락이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
개체들 사이에 갈등 거의 없어
곤충 사회의 힘·질서에 경이감

에드워드 윌슨 지음
임항교 옮김, 사이언스북스
600쪽, 5만5000원
 
외계인 과학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지구 생명체의 40억 년 역사를 모조리 훑어보았다고 해보자. 그들이 작성할 지구 생명 탐사 보고서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틀림없이 세 종류의 생명체가 주인공이 될 것이다. 세균, 인간, 그리고 개미. 우선 세균은 제일 먼저 탄생한 선조격으로서 그때나 지금이나 지구를 뒤덮고 있는 부동의 생물량(biomass) 1위 생명체다. 한편 인간은 연배가 20만년 밖에 안 된 막둥이 생명체이지만 문명을 이룩한 유일한 종이라 독특하게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화학 물질로 의사소통을 하는 개미는 5000만 년 전쯤부터 지구를 뒤덮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사실 때문에 외계인이 개미를 특별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미·벌·말벌·흰개미가 외계인의 눈에 띌 결정적 이유는 그들의 희한한 사회성 때문일 것이다. 지구에는 무려 2만여 종과 1경 마리 이상의 고도로 사회적인 생명체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이 사회성 곤충들이 모인 군락은 종에 따라 적게는 10마리에서 많게는 2000만 마리 개체로 구성되어 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좀 더 들어가 보자. 이 군락에는 번식하는 개체와 평생 일만하는 일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계층화·분업화를 통해 그 군락은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한다. 가령 잎꾼 개미와 베짜기 개미 사회에서는 번식만 하는 비대한 여왕과 평생 노동만 하는 수십만 마리의 아담한 일꾼들이 정교한 조직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군락 내의 개체들 사이에는 갈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말이다.
 
개체들로 구성된 군락 자체가 또 다른 거대 개체란 말인가. 이것이 어떻게 진화했을까. 이 질문에 다다른 외계인 과학자라면 틀림없이 두 명의 지구인 생물학자를 납치하고 싶을 것이다. 반세기 이상을 개미를 비롯한 사회성 곤충 연구에 매진한 휠도블러와 윌슨이 그들이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그들은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하는 이런 기이한 군락을 ‘초유기체’라고 부르고, 이것을 가능하게 한 ‘진사회성(eusociality)’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베짜기개미 일개미 떼가 나뭇잎을 나란히 이어붙이며 집을 만들고 있다. [사진 사이언스북스]

베짜기개미 일개미 떼가 나뭇잎을 나란히 이어붙이며 집을 만들고 있다. [사진 사이언스북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익숙한 독자들은 진사회성의 진화를 집단 선택으로 설명하려는 그들이 매우 낯설게 보일 것이다. 저자들은 진사회성 곤충 세계에서 유전자가 아니라 군락이 자연 선택의 단위임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심한 독자들은 이러한 윌슨의 갑작스런 집단선택 옹호 행보 때문에 최근 진화학계가 한바탕 큰 소동을 겪었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이른바 주류 학자들은 윌슨류의 이런 집단 선택 이론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경멸한다!
 
하지만 나는 이 두꺼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에 또 한 번 그의 마법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론적 논쟁의 치열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대신 곤충 사회의 힘과 질서에 대한 경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미 등 진사회적 곤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미의 생태적 성공만큼이나 인류의 성공적 확산 뒤에도 ‘사회성의 진화’라는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그들은 본능으로 ‘문명’을, 우리는 본능과 학습으로 문명을 진화시켰다는 것! 그래서 문명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우리는 ‘지속이냐 파멸이냐’라는 양 갈래 길목에서 서성이고 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협력의 끝판왕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이다.
 
[S BOX] 20만년 만에 초연결 사회 이룬 인류
강한 사회성을 가진 동물은 개미와 꿀벌만이 아니다. 차별·서열·편애·소외, 심지어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 사회이긴 하지만 인류도 사회성 항목 만큼은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종이다. 침팬지와는 600만 년 전쯤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지간이지만, 그들과는 달리 고도의 집단적 작업이라 할 수 있는 문명을 진화시킨 ‘초사회적(ultrasocial) 종’이기 때문이다. 공감력과 역지사지 능력이 가장 높은 존재로서 인류는 불과 20만년 만에 대규모의 협력으로 현재의 초연결 사회를 이룩했다. 이런 인간의 초사회성은 개미나 벌처럼 ‘본능’으로만 똘똘 뭉친 진사회성과는 다르다.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복잡하며 인간의 뇌는 개미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집단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태적 성공에 강한 사회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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