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속으로] “밥이 나오면 수프 말아먹을라구요” 시골 여학생과 양식집 미팅의 추억

중앙일보 2017.07.01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284쪽, 1만3000원
 
도련님, 아프시면
수프라도 좀 드세요
최철호 지음, 이매진
328쪽, 1만2500원
 
웃음과 감동을 비수처럼 간직한 짧은 글 모음집들이다. 산만하게, 내키는 대로 책 속에 뿌려진 깨소금 같은 재미를 챙기는 게 최소한의 감상 요령이다.
 
‘프로 작가’ 성석제는 이 분야의 원천기술 보유자. 데뷔 무렵부터 시도 소설도 그렇다고 산문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글들을 즐겨 묶어왔다. 그게 하나의 장르처럼 굳어져, 일정한 미학까지 갖추게 됐으니, ‘소설의 작은 기미’ ‘벼락치듯 다가오는 우연과 찰나의 연쇄’를 정리한 거라는 지론이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은 모두 55개의 작은 이야기(小說)를 담았다. 빛깔은 다르다. 노골적인 개그도 있고, 그윽한 글도 있다.
 
프로의 짧은 글을 요약하는 건 부질 없지만, 이런 글도 있다. 시골 출신 대학 1학년생이 경양식집 미팅에서 만난 파트너가 어찌나 예쁘고 똑똑했던지, 옆에서 보기에 ‘정신이 헐떡거리며 몸의 안팎을 출입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단다. 하지만 여학생은 사실상 동향이었다. 정식을 주문해 수프가 나왔는데도 여학생이 먹지 않아 이유를 물었더니 “밥 나오면 말아먹을라구요”라고 답하더란다. 둘이 결국 결혼했다는 얘기. ‘경양식집에서 생긴 일’이다.
 
‘무명 작가’ 최철호의 책은 ‘웃음과 감동’이라는 성긴 그물로는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다. 작가가 2015년 세상을 떠나 유작이기도 하지만 1980년 전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산42번지 아이들의 극성맞고 유쾌한 일상을 흑백사진처럼 애잔하게 복원해내서다. 이 사진의 해상도는 놀라울 정도다. 철호를 비롯한 아이들은 “간질 간질 간질 봄바람 불어온다” 고무줄놀이에 열중하고, 50원짜리 누가바를 난생 처음 사먹는다.
 
철호는 TV 드라마에서 감기에 걸린 부잣집 도련님에게 식모가 수프를 권하는 장면을 보고는, 감기에 걸린 친구 정민을 위해 맹물에 라면 스프 5개를 타서 갖다 준다. TV에 나온 치료 비법이라며. 표제글 내용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