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소득층 유혹하는 하이엔드 SUV] 남들과 차별화하고 싶은 욕구 겨냥

중앙일보 2017.07.01 00:02
 SUV 시장도 매슬로우 법칙 적용 … 프리미엄 지향하며 고성능 경쟁


좌측부터 마세라티 르반떼, 포르쉐 카이엔 터보S,

좌측부터 마세라티 르반떼, 포르쉐 카이엔 터보S,

좌측부터 재규어F페이스, 벤틀리 벤테이가.

좌측부터 재규어F페이스, 벤틀리 벤테이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에서 연봉 1억5000만원을 넘게 받은 직장인은 1만6000명이다. 지난해 종합소득세 과세 기준액이 3억원을 넘는 개인은 6만6000명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5배가량 고소득자가 증가한 셈이다. 소득이 늘면 씀씀이도 커지고, 그에 맞춰 소비재 또한 고급화되게 마련이다. 지금 자동차 시장에서 보이는 하이엔드 SUV의 소비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이엔드 SUV 시장이 커지는 것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일부에선 저유가에 레저활동 인구 증가에 따른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남들과 차별화하려는 욕망이 하이엔드 SUV를 사도록 만든다는 설명도 내놓는다. 더불어 자동차회사의 수익성 추구도 SUV 시장 확대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하이엔드 SUV 성장 배경을 보다 깊이 파고들면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소득 증가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소득 상위 1%의 비중은 14.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2000년 9%와 비교할 때 그만큼 돈 많이 버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단순히 소득의 증가만으로 하이엔드 SUV 증가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단편적이다. 소득이 높다고 반드시 하이엔드 SUV를 구입한다고 단정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등장하는 이론이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1단계) 안정의 욕구가 솟아오른다(2단계), 이후 다양한 사회적 욕구가 꿈틀대며(3단계), 존경받고 싶은 욕망이 외부로 드러난다(4단계). 이 과정을 거쳐 마침내 5단계에 도착하는 순간 잠재된 능력을 극대화하려는 자아실현 욕구가 발현된다.
 
프리미엄 SUV 등장은 자연스러운 현상
 
하이엔드 SUV를 말하면서 뜬금없이 매슬로우 법칙이라니 황당할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자동차는 매슬로우 욕구 법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비재다. 젊을 때는 일단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 시급한 탓에 소형 세단을 구입하고, 경제적 여력이 생기면 중형 세단으로 옮아간다(2단계). 이어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면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기 위해 중형 SUV를 구입하고(3단계), 지갑이 넉넉한 50대 이후가 되면 품격 있는 프리미엄 세단이 눈에 들어온다(4단계). 마지막으로 사회적 지위나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다시 프리미엄 SUV로 시선을 돌린다(5단계). 다시 말해 소득 증가에 따라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지고, 변화된 라이프 스타일은 결국 자동차의 선택 기준을 바꾸는 셈이다. 욕구 시작의 기준점만 다를 뿐 단계별 진화 과정은 모두 동일하다는 의미다.
 
또 하나는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다. 일반적으로 하이엔드로 갈수록 소비자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 자동차는 안전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지는데, 제조사로선 소비자 요구를 만족시키는 방법이 몸집 불리기밖에 없다. 다시 말해 세단 플랫폼에 SUV의 덩치를 씌우는 게 최상인 만큼 하이엔드 SUV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자동차업계에 ‘정석’처럼 통하는 트렌드 읽기 가운데 ‘2만 달러와 4만 달러’가 있다. 매슬로우 욕구 이론을 적용하면 국민소득 2만 달러는 세단에서 SUV로 수요가 이동하는 시점이며, 4만 달러는 SUV가 프리미엄으로 바뀌는 소득이다. 그리고 10만 달러 소득자가 늘면 덩달아 하이엔드 SUV도 함께 증가한다. 그러니 1인당 소득이 2만7000달러인 국내에서 SUV는 일반화 현상이고,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가 증가하는 만큼 여러 프리미엄 브랜드의 하이엔드 SUV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세라티 르반떼, 벤틀리 벤테이가, BMW X6 M50d,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벤츠 AMG G 63, 포르쉐 카이엔 터보S, 재규어 F페이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등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관심은 같은 SUV라도 어떻게 차별화, 즉 남다름을 실현하느냐로 모인다. 누구나 SUV를 선택할 수 있지만 아무 SUV나 소득 상위 1%의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리미엄 SUV일수록 마력과 토크 등의 성능 숫자는 별다른 파급효과를 미치지 못한다. V형 6기통에 터보, V형 8기통에 4.0L 이상의 엔진만으로도 체감 성능은 충분해서다.
 
그럼에도 모두가 하나같이 ‘고성능’을 내세운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실제 벤틀리 벤테이가는 W형 12기통 6.0L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 608마력, 최대 91.8㎏.m의 토크를 발휘하며, 마세라티 르반떼 또한 V형 8기통 4.7L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 450마력, 52.0㎏.m의 회전력을 자랑한다. 렉서스 LX570은 V형 8기통 5.7L 엔진으로 383마력, 55.7㎏.m의 성능이다. 외형적인 출력은 낮아 보이지만 최대토크는 르반떼 못지않다.
 
국민소득 4만 달러부터 프리미엄 SUV 증가
 
프리미엄 SUV라는 점에서 고출력 엔진은 기본이지만 그래도 ‘고성능’이라는 수식어를 결코 놓지 못하는 이유는 ‘고성능 자동차=차별화’라는 전통적 개념의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1% 소비자의 생각에 ‘고성능’은 프리미엄 제품의 기본 항목으로 자리 잡았고, 고성능이야말로 매슬로우 법칙 5단계의 자아실현 욕구의 궁극이 되는 셈이다.
 
실제 브랜드 차별화에서 ‘고성능’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단골 메뉴다. 포르쉐가 카이엔에 스포츠카 DNA를 넣은 것처럼 브랜드마다 고유의 제품 철학을 확보하는 것이 선택 기준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재규어가 F-페이스의 2,995㏄ 엔진에 수퍼차 저를 넣어 최대 380마력, 45.8㎏·m의 토크를 만들어 ‘PUV(Performance Utility Vehicle)’로 정의한 것도 남다름의 시도이며, 가장 빠른 럭셔리 SUV를 표방한 벤테이가 역시 ‘속도와 고급’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마세라티 SUV 르반떼 역시 고성능을 무기로 한국 시장에 등장했다. 결과적으로 과거 세단에서 시작된 엔진 성능 경쟁이 SUV로 옮겨졌고, 이들 중에서도 하이엔드가 자아실현의 도구로 활용되는 셈이다. 그래서 지금 쏟아지는 SUV 홍수 속에 하나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프리미엄 SUV를 놓고 결정 장애를 겪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는 얘기가 거짓은 아닌 셈이다. 차별화는 하고 싶은데, 성능 차이는 없으니 말이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편집장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