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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살이 대학원생들의 냉가슴, 집단 목소리로 이어질까

중앙일보 2017.06.30 11:41
“제가 잘 모르구요 …말씀드리기도 좀 그렇습니다.(서울대 대학원생 A씨)”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1화 <교수의 주먹>' 중 한 장면.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원생들의 사례 제보를 받아 제작한 웹툰을 게재하고 있다.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캡처]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1화 <교수의 주먹>' 중 한 장면.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원생들의 사례 제보를 받아 제작한 웹툰을 게재하고 있다.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캡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한모(54) 교수의 인건비 횡령 사건이 터진 뒤 소속 대학원생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라는 속담과 똑같은 처지다. 한 교수는 국가지원 연구 프로젝트에 제공되는 인건비를 횡령한 혐의로 최근 구속 기소됐다.

교수 구속 뒤에도 "새어나갈까 두렵다"
폭언·성희롱 교수에 '정직 3개월+보수 제공'
"혼자서는 안 된다" 단체행동 서서히 보여

 
학교 측에 따르면 한 교수의 연구실에 있던 대학원생들은 최대한 연구 분야가 유사한 다른 교수의 연구실로 재배정됐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연구실을 바꾼 학생도 있다. BK21사업과 관련해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되던 인건비도 임시 중단된 상태다. 
 
사업을 운영하는 한국연구재단은 횡령이 BK21사업과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질 때까지 인건비 제공을 중단한다고 알려왔다.그러나 피해 당사자인 대학원생들은 이같은 사태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피해가 닥칠까 우려해서다. 
 
타 학부 대학원생 B씨는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나간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제도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 때문이다.
 
지난 13일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이 터지면서 대학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갑을 관계가 논란이 됐지만, 그로부터 보름 여가 지난 지금도 대학원생들은 교수와 대학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비위 말했다가는 재학 기간 내내 고생"
제도적으로 대학원생은 교수의 비위를 알린 뒤에도 졸업할 때까지 교수와의 관계가 계속된다는 점도 대학원생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게 현실이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대학원생과 학부생에게 지속적으로 폭언과 성희롱, 부당 업무지시 등을 해 학내 인권센터에 제소된 서울대 H교수는 학교 본부에 ‘정직 3개월’의 징계가 요청돼 있는 상태다. 
 
사립학교법상 해임 다음으로 무거운 중징계다. H교수의 ‘갑질’을 알리는 역할을 했던 대학원생은 “한 학기만 지나면 내가 고발한 사람과 다시 마주치며 지내야 한다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정직 수준의 교수 징계는 대학원생들에겐 큰 의미가 없다. 학교 측은 학과 건물 근처에 H교수가 사용할 임시 사무실 공간을 찾고 있다. “정직 처분이 내려지기 전까지만 한 교수가 사용할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은 “징계받은 교수의 사무실이 학과 건물 근처에 마련되면 학생들과의 생활 공간이 전혀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원은 공무원과 달리 정직 중에도 보수의 3분의 1을 제공받는다.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10화 <인간적 대우>' 중 한 장면.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캡처]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10화 <인간적 대우>' 중 한 장면.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캡처]

 
교수에게 당한 부당한 일을 '고발'했을 때 주변 인간관계가 모두 끊길 것이라는 불안감도 있다. 이런 처지를 다룬 웹툰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대학원생 C씨는 “대학원생 사이에도 파벌이 있어 신고를 했다가 비난과 협박에 직면하기도 한다. 내가 피해자라는 것이 좁은 학계에 알려졌을 때 ‘인생 망한 것 아니냐’는 시선을 견디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졸업 혹은 대학원을 그만 둔 뒤 입을 여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현재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원의 징계 시효는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3년, 예외적인 경우 5년이다. 대학원생들이 박사과정만 4년, 석사과정까지 합치면 6년을 대학원에서 지내야 하는 것에 비해 시효가 짧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현재 국회에는 이 시효를 각각 5년, 7년으로 늘리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총학생회 중심 결속 가시화  
혼자서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커지자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총학생회 등 단체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8일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성추행과 폭언 의혹을 받고 있는 체육학과 모 교수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달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대학 차원의 진상조사와 교수의 사퇴를 요구했다. 
 
서강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지난 15일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포식’을 열고 총장과 함께 서명했다. 서울대에서는 대학원생들이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을 열어 대학원생 인권 개선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지난 28일 고려대 총학생회는 고려대 서울캠퍼스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육학과 B교수의 폭언 및 성추행 사실을 고발했다. [연합뉴스]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지난 28일 고려대 총학생회는 고려대 서울캠퍼스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육학과 B교수의 폭언 및 성추행 사실을 고발했다. [연합뉴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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