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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귀족처럼 … 홍콩 여행길 차 한 잔의 여유

중앙일보 2017.06.30 0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홍콩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하는 장소로 꼽히는 곳이 있다. 페닌술라호텔이다. 묵는 장소로도 좋지만 다들 1928년 이 호텔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어지고 있는 애프터눈 티를 경험하러 간다.
 

90년 된 페닌술라호텔 애프터눈 티
오픈 전부터 장사진 … 투숙객만 예약
차와 한 입 크기 빵·케이크 곁들여
화려한 은식기로 즐기는 호사까지

페닌술라호텔 애프터눈 티는 1층 로비 라운지 ‘더 로비’에서 즐길 수 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제공하는데 평일·주말 상관없이 사람들로 늘 줄이 길게 늘어선다. 대기시간이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오픈 30분 전인 오후 1시30분에 도착했지만 이미 80~90개쯤 되는 테이블이 전부 차 있는 것은 물론이요, 입장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이 20명이 넘었다.
 
여유 있게 다과와 차를 즐기는 까닭에 자리는 쉽게 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기 줄은 점점 더 길어져 오후 3~4시면 복도 끝 아케이드까지 대기자로 꽉 들어차는 일이 빈번하다. 오픈 시간 이후라면 최소 한 시간은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예약을 미리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투숙객 이외에는 예약을 따로 받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자리에 앉고 보니 “기다리지 않고 애프터눈 티를 즐기기 위해 페닌술라호텔에 묵는다”는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애나 마리아 공작 부인에게서 유래
 
1928년부터 영국식 정통 애프터눈 티를 선보이는 페닌술라호텔 ‘더 로비’. 티파니의 은 식기를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페닌술라호텔]

1928년부터 영국식 정통 애프터눈 티를 선보이는 페닌술라호텔 ‘더 로비’. 티파니의 은 식기를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페닌술라호텔]

애프터눈 티는 원래 영국 상류층 문화다. 유래는 19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차 이야기』의 정은희 작가에 따르면 베드퍼드 가문 7대 공작 부인이었던 애나 마리아(1788~1861)가 점심과 저녁식사 사이에 하녀에게 다기세트와 빵·버터를 쟁반에 담아 방으로 가져오게 한 데서 애프터눈 티가 시작됐다고 한다. 애나 마리아는 작은 샌드위치와 스콘·비스킷 등을 곁들여 홍차를 마셨고 저택을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이를 즐겼다. 오후 티타임은 곧 상류사회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이후 영국인의 사교행사로 뿌리내렸다. 홍콩에 애프터눈 티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영국 식민지라는 배경 때문이다.
 
오이 넣은 샌드위치 필수
 
페닌술라호텔 1층 ‘더 로비’에 사람들이 애프터눈 티를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윤경희 기자]

페닌술라호텔 1층 ‘더 로비’에 사람들이 애프터눈티를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윤경희 기자]

격식을 중시하는 상류층 문화이다 보니 먹는 법과 구성하는 다과에도 정해진 규칙이 있다. 다과는 한입에 먹을 수 있는 빵과 케이크·초콜릿 같은 디저트류로 구성되는데 스콘과 얇게 썬 오이가 들어간 작은 샌드위치를 넣는 게 전통이다. 애프터눈 티라고 하면 떠오르는 ‘3단 트레이’에 담긴 다과는 보통 가장 밑에서부터 위 접시 순으로 먹으면 된다. 직원들은 “그냥 권할 뿐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먹으면 된다”고 했다. 단 복장에는 최소한의 격식을 요구했다. 슬리퍼나 해변용 샌들, 플라스틱으로 만든 신발을 신을 수 없다. 남성은 소매 없는 셔츠를 입으면 입장이 안 된다.
 
애프터눈 티 가격은 2인 기준으로 658홍콩달러(약 9만5000원)다. 인원이 추가되면 1인 세트(368홍콩달러)를 추가로 시키거나 4명이라면 2인 세트 2개를 주문하면 된다. 페닌술라호텔의 애프터눈 티를 ‘디저트 카페’로 생각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서울에도 이미 독특하고 개성 있는 디저트를 선보이는 디저트 집이 즐비하니 말이다. 이곳은 ‘디저트를 먹는 곳’이라기보다 애프터눈 티 ‘문화’를 즐기는 곳이라고 접근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쌉싸름한 차 맛을 좋게 만드는 달콤한 디저트와 화려한 티파니앤코의 식기,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등 이 모든 것을 배경으로 함께하는 사람과 여유로이 보내는 시간, 그게 바로 페닌술라 애프터눈 티의 진수다.
 
홍콩=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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