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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한 것도 때론 아름답죠 … 사진의 유머 즐기세요”

중앙일보 2017.06.28 01:05 종합 22면 지면보기
2006년 ‘최신 유행’ 시리즈 가운데 인물 사진. [사진 공근혜갤러리]

2006년 ‘최신 유행’ 시리즈 가운데인물 사진.[사진 공근혜갤러리]

여기 아름다운 두 여성의 기괴한 얼굴을 담은 사진 하나가 있다. 기괴한 얼굴이 된 건 이마와 뺨과 턱에 뭔가 이물질을, 그것도 우스울 만큼 노골적 형태로 넣었기 때문. 이는 네덜란드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58)의 작품 ‘최신 유행’(2006)이다. 함께 선보이는 같은 제목의 비디오 영상 작품은 두 여성이 모던하게 꾸며진 집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같은 얼굴 변형이 유행 중임을 알려준다. 그 배경이 자막에는 ‘2019년 파리’라고 나오지만 요즘 세태를 겨냥한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올라프는 이를 “비판만 아니라 유머”라고 말했다. 그를 국내 세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만났다. 이번 전시는 ‘휴먼&네이처’란 제목으로 그의 작품 15점을 선보이는 중이다.
 

어윈 올라프 서울서 개인전
패션 사진 찍으며 창작 영감 얻어
예술창작은 아름다움 이상의 것
카사노바의 여인 소재 영화도 준비

어윈 올라프

어윈 올라프

“저는 아름다움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다양한 개인을 좋아합니다. 큰 사람, 작은 사람 … 모두 아름다움이 있고 영감을 주죠. 아름다운 여성만 영감을 주는 건 아닙니다. 더 추한 사람이 더 아름다울 수 있죠. 아름다운 사진은 요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전 세계에서 매일 수만장이 올라와요. 예술을 하려면 아름다운 소녀만 찍을 수는 없죠. 예술창작은 아름다움 이상의 것이 있어야죠. 아름답고, 화려하고, 성공적이고 … 그건 인생의 목적도, 예술의 목적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내게 사진은 피부와 감정에 대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2013년 패션잡지 보그에 실린 사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연상 된다. [사진 공근혜갤러리]

2013년 패션잡지 보그에 실린 사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연상된다.[사진 공근혜갤러리]

그는 마치 고전회화나 고전영화의 분위기로 특정 시대와 공간과 인물을 정교하게 연출한 사진, 이를 통해 미묘한 감정을 극적이고 섬세하게 담아낸 사진, 때로는 성·인종·나이 등 각각에 대한 통념의 빈 틈을 자극하는 사진으로 국제적 명성을 쌓아왔다. 광고와 패션사진도 유명하다. 이번 내한과 개인전은 그의 작품을 비롯해 패션잡지 보그에 실렸던 흡사 명화 같은 사진을 전시하는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전(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과 때를 맞췄다. 양쪽 전시에 모두 선보인 2013년 네덜란드 보그 사진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재해석한 분위기다.
 
‘최신 유행’ 시리즈 가운데 정물 사진. [사진 공근혜갤러리]

‘최신 유행’ 시리즈 가운데 정물 사진.[사진 공근혜갤러리]

‘최신 유행’ 시리즈에 포함된 정물 사진도 이런 맥락으로 설명했다. 영상에 등장한 여성의 집에 있는 꽃병 등의 정물이다. “집에 있는 물건은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전해주죠. 또 저는 꽃을 좋아해요. 꽃은 회화와 사진의 고전적 테마죠. 아다시피 저는 유럽 회화, 특히 네덜란드 황금시기의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또다른 사진은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를 닮았다. 실은 액세서리 광고 사진이다.
 
2008년 액세서리 광고 사진. [사진 공근혜갤러리]

2008년 액세서리 광고 사진.[사진 공근혜갤러리]

그는 의뢰받아 찍는 사진, 그 중 패션사진은 창작활동과 충돌하기보다 서로 영감을 준다고 했다. “‘최신 유행’은 온전히 패션사진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2006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제안으로 파리에서 오트 쿠튀르 사진을 찍으면서 구상했죠.” 그는 작품 시리즈마다 영상도 함께 선보이곤 한다. “더 큰 얘기를, 더 큰 감정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2년 뒤 개봉을 목표로 첫 장편영화도 준비중이다. 전설적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사랑한 여성, 이후 천연두로 흉해진 얼굴을 가리자 온갖 남성이 그에게 끌렸던 여성 얘기다. 그는 “결점이, 불완전함이 매력이 된 강한 여성의 이야기”라며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5년전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최근 제작비를 투자 받은 소식을 전했다.
 
최근에는 로케이션 시리즈, 즉 특정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 현지에서 찍는 사진작업도 진행해왔다. 지난해 국내 개인전에도 선보인 ‘베를린’(2012) 시리즈가 그 시작이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상하이 시리즈를 찍었다. 프랑스 기업가들이 싱가포르에 만든 재단의 후원을 받아 진행한 프로젝트다. 1930~40년대 분위기로 찍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예술에서, 정치에서 흥미로운 시기였죠.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을 떠난 사람들의 얘기를 비롯, 큰 감정을 담아냈어요.”
 
혹 한국에서 이런 시리즈를 찍는다면 어떤 시대를 찍고 싶을까. “지금은 말하기 곤란하네요. 역사를 공부해야 하니까. 일제강점기가 중요한 역사라는 건 알지만 그 직후가 더 흥미로울 수도 있고.” 그는 로케이션 시리즈에 대해 “그 시대의 신문을 읽고, 역사를 연구하고, 사람들을 알아야 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우연히도 그는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장면 중 하나를 목격했다. 지난번 방한은 마침 광화문 촛불시위가 한창인 때였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로 알고 있어요. 평화로운 분위기에 가족들도 많더군요. 그 때는 제 남자친구와 함께 왔었는데 우리도 하루 나가 둘러봤죠. 지난해에 비하면 지금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이네요.” 이번 개인전은 7월 23일까지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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