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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족이던 그들의 최후 안식처는 20L 종량제 봉투였다

중앙일보 2017.06.27 02:16 종합 10면 지면보기
환경미화원 박성기(58)씨는 하루 한 번 이상 동물 사체를 치운다. 서울의 한 자치구의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유기견 변사체 등을 마주치게 된다.
 

반려동물 매년 15만 마리 죽지만
12만 마리는 소각되거나 버려져
산 채로 봉투서 발견된 ‘희망이’
주인은 “죽을 것 같아서 버렸다”
장묘시설 적고 주민 반발 심해
20만원 안팎 드는 비용도 부담

박씨는 신문지를 깐 박스에 사체를 담아 옮긴 뒤 구청 내 환경미화원 휴게실에 마련된 냉동고에 보관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어서 이젠 박씨에게 하나의 의식이 됐다. 원래 김치냉장고로 쓰이던 이 냉동고에는 20여 구의 동물 사체를 넣을 수 있다. 냉동고가 가득 찰 때면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이 와서 사체를 황색 의료용 폐기봉투에 담아 간다.
 
사체들은 소각장에서 화장 처리된다. 3~4주에 한 번꼴이다. 박씨는 26일 “처음에는 휴게실 옆에 동물 사체가 쌓여 있다는 게 꺼림칙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동물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경험상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엔 동물 사체가 다른 계절보다 두 배 가까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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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마리 중 1마리만 제대로 장묘=반려동물 1000만 마리 시대에 돌입했지만 동물의 죽음은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농림축산식품부 추산에 따르면 한 해 죽음을 맞는 반려동물은 15만 마리 정도다. 하루 평균 410마리가 숨을 거둔다.
 
이 중 농식품부에 정식 등록된 장묘업체에서 화장되는 동물 수는 3만1000~3만3000여 마리뿐이다. 나머지 12만여 마리는 생활 혹은 의료 ‘폐기물’로 분류돼 민간 소각장에서 화장되거나 야산·길거리 등에 버려진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 야산 등에 불법 투기되는 동물의 사체가 다수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얼마나 버려지는지 쫓아다니며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경기도 부천의 한 전봇대 앞에서 종량제 봉투에 담긴 채 발견된 반려견 희망이. [사진 동물권단체 케어]

지난 4월경기도 부천의 한 전봇대 앞에서 종량제 봉투에 담긴 채 발견된 반려견 희망이. [사진 동물권단체 케어]

◆종량제 봉투에 버려진 희망이=지난 4월 경기도 부천의 한 전봇대 앞에서 20L짜리 초록색 종량제 봉투에 버려진 강아지 ‘희망이’가 이웃 주민의 신고로 발견됐다. 하얀색 털을 가진 스피츠 종인 희망이는 다리와 갈비뼈가 심하게 부러진 상태였다. 흰색 털은 군데군데 굳어진 갈색 피로 얼룩졌다. 희망이의 다리 사이에서는 배변 패드도 함께 발견됐다. 경찰에 붙잡힌 희망이 주인 A씨(27·여)는 “병에 걸려 죽을 것 같아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희망이는 동물보호단체에 인계돼 목숨을 건졌다. A씨처럼 비뚤어진 인식을 갖는 것도 문제지만 현행 폐기물관리법이 반려동물 사체 투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사체는 다른 생활 쓰레기처럼 ‘물건’으로 간주돼 종량제 봉투에 버리도록 규정돼 있다. 반려동물의 사체를 동물병원에 맡겨 의료용 폐기물과 함께 소각되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이 역시 15만~20만원 수준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공동 동물 장묘시설 논란=동물보호단체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동물용 공영 장묘시설을 건립해 반려동물 주인들의 비용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식품부에 등록된 동물장묘업체 숫자는 전국을 통틀어 24곳뿐이다. 비용도 20만원 정도 내야 한다. 반려동물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시 역시 반려동물 사체 처리의 책임을 공공부문이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까다로운 장묘시설 건립 허가 기준과 주민의 반대 등이 고민거리다. “사람을 위한 시설도 부족한데 동물 장묘시설 건립에 동의할 수 없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경남 창원시는 지난해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공공 동물 장묘시설 조성을 추진했다가 잠정 보류했다. 기존의 폐쇄된 화장터 등을 개조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지만 주민들의 강렬한 저항에 부닥친 탓이다. 창원시청 관계자는 “동물에게 장례식장을 지어 주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는 주민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동물 장묘시설 건립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시민 의견을 직접 묻는 온라인·길거리 투표를 진행한 뒤 그 결과를 다음달 8일 ‘함께 서울 정책박람회’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시민의 토론과 투표로 결정된 내용을 시정에 적극 반영해 동물 장묘시설 건립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서준석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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