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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웃지만 상인들은 우는 지하철상가, '땅밑 전쟁' 왜?

중앙일보 2017.06.27 00:01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에 환한 조명, 깔끔하게 정비된 간판들. 지난 22일 찾은 서울 지하철3호선 고속터미널역 상가는 여느 백화점 내부와 크게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이곳은 지난해만 해도 작고 허름한 분식집과 의류 점포들로 가득했다.  
 

대리석 깔리고 브랜드 줄서 입점
"온라인에 고객 빼앗긴 뒤 시설 개선 절실"
기존 상인들 "좋아하는 시민들 보면 씁쓸"

이날 상가에 입점한 노브랜드(NO-BRAND) 상품 전문 몰을 찾은 회사원 안모(39)씨는 “고속터미널역이라고 하면 좀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이미지였는데 최근엔 워낙 좋아져서 지하철을 타지 않을 때도 구경하러 종종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지하 세계가 환골탈태하고 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부터 승강장을 따라 조성된 ‘지하철 상가’ 얘기다. 과거에는 5000원짜리 셔츠를 비롯한 저렴한 의류ㆍ신발 매장, 분식점, 지하철 이용 고객을 위한 매점 등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유명 화장품과 의류, 드러그스토어와 레스토랑 브랜드 매장으로 들어찬 역사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역에선 전면 리모델링도 필수적으로 이뤄진다. 지난 3년 간 전면 리모델링이 된 역사는 고속터미널역과 잠실역, 노원역, 강남구청역등 네 개 역이다. 지하철 5·8호선 천호역과 고속터미널역의 7호선 구간의 리모델링을 위한 계약도 각각 지난 16일과 9일 체결됐다.  
 
고속터미널역 상가의 리모델링 이전 모습. [사진 서울교통공사]

고속터미널역 상가의 리모델링 이전 모습. [사진 서울교통공사]

지난해 말 리모델링된 고속터미널역 상가.

지난해 말 리모델링된 고속터미널역 상가.

 
이런 전면 리모델링과 업종 전환이 가능한 것은 기존에 점포 4~10개씩을 갖고 운영하던 소규모 사업자들 대신 큰 기업 한 곳이 전권을 잡고 추진하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역의 운영ㆍ관리권을 가진 서울교통공사(구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가 통합)는 최근 기존 임차인들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자본력이 있는 기업에 전체 상가 공간을 임대해주고 있다. 계약 기간은 최장 10년이다. 
 
입찰을 통해 천호역 개발을 따낸 주식회사 엔터식스는 고속터미널역과 지하철2호선 왕십리역의 개발도 맡아 했다. 
 
공사가 지하철 상가의 변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공사 관계자는 “2008년 쯤부터 지하철 상가의 침체가 두드러졌다. 개별 사업자들이라 매출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가끔 나가보면 중국인 관광객들 외에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철 상가가 인기를 끌었던 건 젊은이들의 최신 유행을 빠르게 베낀 저렴한 상품들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런 상품들은 온라인으로 산다. 그렇다고 상인들이 고급화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낙후가 계속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29)씨도 “중고등학교 때에는 유행하는 CD나 옷을 보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엔 사고 싶은 물건이 없다”고 했다.
  
상인들의 반발은 거세다. 고속터미널역 상가만 해도 기존 상인들과의 계약은 2013년에 끝났지만 2016년이 돼서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2년 넘게 소송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소송에 적극적이었던 상인 박모(55)씨는 “대기업이 상가 전체 리모델링을 맡은 후 임대료가 2~3배 올라 들어갈 엄두를 못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을 눈앞에 둔 천호역에서도 기존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천호역 임차인들은 “공사가 관리 편의를 위해 대기업에 입찰 편의를 줬다”며 서울시 감사를 요구하고 있다. 노원역과 청담역, 반포역 등에서도 소송이 끝난 뒤에야 리모델링을 할 수 있었다.
 
공사의 관리 범위를 벗어난 공간에서 30년 동안 열쇠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오모(55)씨는 “시민들에겐 당연히 지금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같이 장사하던 사람들이 다 나가서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씁쓸해했다.
  
서울 지하철 상가는 1976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서울지하철 1호선이 1974년 개통한지 2년 뒤부터였다. 교통공사에 따르면 1976년~1981년 사이에 1호선 지하철역 곳곳에 상가 21개동이 들어섰다. 애초 지하철 역사가 상가를 목적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마름모꼴 등 매장을 내기 부적절한 공간도 많았지만 어떻게든 공간을 활용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1990년대는 지하철상가의 호황기였다. 유동인구가 보장되는 번화가 지하철 상가는 원래 임차인이 또 다른 임차인에게 단기 임대를 해주는 일도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권리금도 수천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지하철 상가가 공급하는 상품 대부분을 온라인 매장들이 판매하며 매출도 크게 줄었다. 공사 관계자는 "고속터미널 상가처럼 세련된 복합쇼핑몰을 만드는 동시에 소상공인들에게 공급되는 상가도 함께 도약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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