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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구의 이상가족] ⑦엄마의 고민, 아빠 다른 내 아이들

중앙일보 2017.06.24 03:00
[중앙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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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디지털 광장 '시민 마이크'가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어쩌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랜 판사 경험을 살려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가사·상속센터장(변호사)가 여러분의 고민을 함께 합니다. 배인구의 '이상(理想) 가족'은 매주 1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사연은 사례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 재구성·각색해 전달합니다. /시민마이크 특별취재팀 
 

첫 남편과 이혼, 그리고 남편의 사망
다시 만난 지금의 남편과 '아빠' 다른 두 아이
성 바꿔주고 싶지만, 시댁 반대가 두려워요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큰 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작은 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100일이 조금 지났습니다. 두 아이는 아빠도 다르고 성도 다릅니다. 3년 전에 전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아이를 제가 키우기로 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양육비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딱 2번만 주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에게 빚만 남기구요. 상속포기를 했습니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늘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어도 제게 양육비 도움을 주시지는 않으셨어요. 솔직히 야속했습니다. 며느리가 밉다고 손자까지 내치시다니요. 아이 아빠의 사망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한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아이가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많이 망설였지만 그 집안과는 이제 보지 않고 살 것인데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솔직히 예전 남편과 같은 성을 가진 남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제 맘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행인 점은 큰 아이가 지금의 남편을 친아빠로 여기는 것 같고, 남편도 큰 아이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재혼을 하면 보통 바로 아이의 성과 본을 재혼하는 남편의 성과 본으로 변경한다고 하는데,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져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름 바꿔야 할까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는 곧 성과 본이 변경될 것이라고 하고 재혼한 남편의 성과 같은 성으로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여 아직 아이는 자기의 성이 아빠, 동생의 성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최소한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빨리 성과 본을 변경해서 아이가 왜 아빠와 동생은 같은 성이고, 자기만 다른 성인지 의아해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성과 본 변경을 신청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물론 아이의 성과 본을 변경하여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같은 성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아이의 성과 본을 변경하는 신청을 혹시 아이 할아버지가 알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아이의 조부가 아이를 찾아오면 어쩌죠? 전 아이가 할아버지와 만나는 것, 또 혹시 아이가 아빠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계부라는 것을 알게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차라리 아이의 성과 본을 변경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제작=조민아

제작=조민아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많은 분들이 주민등록등본에 여러 성이 나오는 것을 무척 꺼려합니다. 그래서 더러는 전 남편과 같은 성씨를 가진 남성과 재혼하려고 애쓰기도 하지요. 아직 우리 사회가 아빠와 아이의 성이 다른 상황을 자연스럽게 보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겠죠. 그래서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많은 분들이 법원에 '성본 변경'신청을 하고 허가를 받았습니다. 두번 이상 아이의 성과 본이 바뀐 경우도 많습니다.

  
성과 본 변경 신청을 할 때 대부분 전 남편의 동의서를 같이 첨부합니다. 전 남편과 연락이 된다는 조건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데 동의해달라는 말을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경우(소식을 두절하고 살았거나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에는 법원이 상대방에게 어떤 생각인지 의견조회를 합니다. 
 
만약 아이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면 아이의 조부모에게 의견을 구합니다. 의견을 구한다고 해서 그 의견대로 법원이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 아빠나 조부모가 전혀 미리 알지 못한 채 나중에 아이의 성과 본이 변경된 사실을 알게 하는 것도 바람직한 건 아니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복과 이익”입니다.
 
대부분 부모님은 성과 본을 변경하는 게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이는 딱히 변경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된 경우에는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불리던 성과 다른 성으로 불러달라고 하는 것이 더 고역일 수 있죠. 그래서 많은 경우 성과 본을 변경하고, 이어서 이름까지 변경 신청한 후 전학을 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자는 취지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것이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례자분과 같은 경우를 저도 법원에 있을 때 접한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종손인 아이의 성과 본을 절대 변경할 수 없고, 아이를 직접 양육하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셨어요. 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생각이나 아이 엄마의 희망보다 아이의 입장에서만 봐달라고 할아버지와 엄마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가 동의를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성과 본이 변경되면 손자가 이른바 '호적'에서 빠진다고 아셨답니다. 아들이 죽은 것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인데 손자가 없어진다니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하셨답니다. 
 
할아버지는 비록 성과 본이 변경되어도 손자가 '내 아들의 자식'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셨지요. 또 "어린 손자를 위해 아주 어렵게 맘을 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이 엄마가 눈물을 보이며 할아버지께 고개 숙여 깊이 인사를 하는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사례자분의 어린 아이도 벌써 아빠가 계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을 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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