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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누드사우나, 와인 20잔 … 슬로베니아에선 가능한 일

중앙일보 2017.06.23 01:23 종합 18면 지면보기
여행자의 취향 │ 시인 김이듬
김이듬

김이듬

2001년 등단한 시인 김이듬(49)이 속된 말로 ‘한 건’을 했다. 미국에서 번역·출간된 그의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Cheer up Femme Fatale)』이 2017년 미국 번역문학 에이전트 스리퍼센트가 주관하는 ‘최우수 번역 도서상’ 최종 후보(10권)에 오른 것이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이다. 미국 대표 번역문학 온라인 잡지 ‘워드 위드아웃 보더스’는 김 시인을 두고 “자신만만하고 어떠한 제약도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김 시인 작품에 대한 이런 이방인들의 평가는 어쩌면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할 때도 유효할지 모른다. 한국 시를 찾아주는 곳이면 어디든 향한다는 그에게 국경이라는 제약은 무의미해 보이니 말이다.
 

여행지마다 한 달 이상 머물며 생활
고추장·미역 챙겨가 친구들과 파티

 
김이듬 시인은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로 슬로베니아를 꼽았다. 사진은 남부 해안도시 피란. [사진 슬로베니아관광청]

김이듬 시인은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로 슬로베니아를 꼽았다. 사진은 남부 해안도시 피란. [사진 슬로베니아관광청]

외국에서 머무는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한국에서 절반, 외국에서 절반을 보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보면 ‘유럽으로 떠날지 말지 고민할 때 머릿속에서 벌이 윙윙댔다’는 일화가 나온다. 하루키는 벌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유럽으로 떠났다. 나도 마음에 두근대는 소리가 울리면 일단 여행 짐을 꾸린다.”
 
 
주로 어떤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나.
"한국 시를 찾아주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2014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 시 페스티벌 초청 작가로 참석하고, 2016년에는 미국 10여 개 도시에서 낭독회를 했다. 한 번 가면 그 여행지에서 최소 한 달은 머문다.”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가 어딘가.
"2016년 늦가을과 겨울, 그리고 2017년 늦봄을 보낸 슬로베니아가 기억에 남는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한국학과에 초빙돼 대학생들과 한국 문학에 대해 세미나를 했다.
 
슬로베니아는 미운 사람에게 절대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여행지다. 슬로베니아 안에 모든 유럽이 있다. 북서부에 알프스 설산이 있고, 서남부는 지중해와 맞대고 있다. 나라 곳곳에 중세 도시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름난 와이너리와 온천도 많다. 물가는 체감하기론 파리의 절반 수준이다. 그리고 음식이 정말 맛있다. 슬로베니아는 빵·우유·치즈 등 주식에 방부제를 넣지 못하게 법으로 막아 놨다. 거의 모든 식재료가 유기농이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구를 만드는 것. 김이듬 시인의 여행법이다. [사진 김이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구를 만드는 것. 김이듬 시인의 여행법이다. [사진 김이듬]

류블랴나에서는 눈 감고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현지인처럼 살았다. 서울로 치자면 남산 정도 될까? 매일 아침 티볼리 공원을 산책했다. 오후에는 프레셰렌 광장 주변 카페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금요일에는 중앙시장을 찾았다. 과일을 사고 갓 만든 길거리 음식도 사 먹었다.”
 
 
여행 갈 때 꼭 가져가는 게 있나.
"할머니가 직접 담근 고추장. 이민 가방에 한국 식재료도 가득 넣어 간다. 현지에서 사귄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기 위해서다. 미역국도 끓이고 떡볶이도 만든다. 사람은 음식을 나눠 먹으면 친구가 된다. 2015년 파리에서 석 달 동안 머물렀을 때 한국 음식으로 24명의 파리지엥을 사귀었다. 시인, 사진가, 도서관 사서, 피아니스트 등 제각각의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를 통하면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쌓기 쉽다. 슬로베니아 여행 때도 그랬다. 몸이 안 좋았는데 친구 추천으로 류블랴나 사우나에 갔다. ‘누드 사우나’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현지 친구의 추천으로 류블랴나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 노점이 가득 들어서는데 조금씩 맛이 다른 와인을 판다. 한 잔에 2유로쯤 하는 와인을 20잔쯤 사 마셨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여행 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적극적으로 헤매보는 것, 그게 여행의 묘미 같다.”  
 
양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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