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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2012년과 2017년의 김상조

중앙일보 2017.06.22 01:00 경제 9면 지면보기
서경호경제기획부장

서경호경제기획부장

2012년 18대 대선을 한 달쯤 앞두고 당시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여야 대선 후보가 앞다퉈 경제민주화를 소리높여 외치던 때였다. 그는 “한 해 전까지만 해도 과격한 재벌 개혁론자였던 내가 이젠 중간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보고 유(柔)해졌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내 대답은 이렇죠. 내가 유해진 게 아니라 당신들이 과격해진 것이라고. 난 예전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거대담론만으로는 세상 못 바꿔
구체적 정책으로 변화 이끌어야
경쟁자 보호라는 현실론 이해하나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건 경계해야

그는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가치 판단의 문제여서 실체를 확정하는 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는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내세운 게 ‘방법론적 최소 원칙’이었다.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부터 천천히 가자는 뜻이었다. “거대담론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부족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능력이다.” 그가 했던 이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사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경쟁법의 목적은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경쟁법의 유명한 법언을 인용했다. 이 법언은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 후생을 늘리는 게 공정위가 할 일이지, 경쟁자 특히 경제사회적 약자 보호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사실 이 말은 공정위를 비판하는 단골메뉴로 애용돼왔다. 공정위가 경쟁당국의 본업(경쟁 촉진)보다 ‘단체 기합’ 용도로 종종 사용되는 재벌정책이나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기업거래정책 같은 ‘부업’에 더 신경 써왔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경쟁자 보호’도 중요하다고 했다. 재벌의 경제력 오남용을 막고 하도급 중소기업, 가맹점주, 대리점사업자, 골목상권 등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게 사회적 요구라고 명시했다. 양립하기 쉽지 않은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의 괴리는 상당히 크고, 김 위원장의 낡은 서류가방만큼 오래된 우리 경쟁정책의 난제다.
 
갑을(甲乙) 관계와 재벌은 한국의 독특한 문제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한국이 소규모 개방경제이다 보니 미국과 달리 수요독점(monopsony)으로 인해 대기업에 휘둘리는 납품업체가 많다”고 했다. 거래처가 제한돼 있어 특정 대기업에 납품이 끊기면 해당 중소기업은 당장 힘들어진다. 사법시스템으로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오래 걸린다. 중소기업이 소송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경제적 약자 보호의 현실적인 필요성도 만만찮다.
 
문제는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수요가 차고 넘친다는 데 있다. 국회에서, 언론에서 ‘공정위는 뭐하고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면 버틸 재간이 없다. 500여 명의 공정위 인력으로 이를 다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대기업의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이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엄하게 규제하는 게 소비자후생이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김 위원장은 제한된 인력과 정책 자원을 어떻게 써야할지 판단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을의 눈물’ 속에 뒤섞여 있는 포퓰리즘을 걸러내는 일이다. 신광식 연세대 겸임교수는 『공정거래정책 혁신론』에서 미국의 판사이자 학자인 로버트 보크의 말을 인용했다. “반트러스트는 인기가 있다. 반트러스트의 주요 특성들에 대해 지적인 반대는 일부 있으나 정치적 반대는 거의 없다.” 재벌 때리기는 인기 있는 소재다. 지난 대선에서도 상법 개정안을 비롯해 대기업을 정조준하는 움직임이 거셌다.
 
공정거래법은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광범위한 개입을 허용하는 법이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을 위해서라면 거의 모든 산업과 기업활동에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적절하고 자의적으로 집행되면 기업 통제의 편리한 수단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과거 여러 정권에서 경쟁정책이 재벌 군기를 잡는 정치권력의 ‘얼차려’ 도구가 된 사례는 굳이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다.
 
김 위원장은 시민운동가 시절에 “비용과 편익을 균형 있게 봐야 한다고 믿는 경제학자”라고 자신을 평한 적이 있다. 2017년의 김 위원장은 5년 전처럼 한 쪽에선 ‘유해졌다’고, 다른 쪽에선 ‘과격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나는 그가 예전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5년 전처럼 말이다.
 
서경호 경제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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