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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구의 이상가족] ⑥"내아들 잘라라" 진정서 내겠다는 아버지

중앙일보 2017.06.17 03:00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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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디지털 광장 '시민 마이크'가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어쩌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랜 판사 경험을 살려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가사·상속센터장(변호사)가 여러분의 고민을 함께 합니다.  배인구의 '이상(理想) 가족'은 매주 1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사연은 사례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 재구성·각색해 전달합니다. /시민마이크 특별취재팀

가정 버린 아버지와 남겨진 가족
손 발 부르튼 어머니, 이 악물고 공부한 아이들
고향서 '공무원'된 자녀 찾아온 70대 아버지
"생활비 안주면 진정서 내겠다" 자식이 죄인인가요?

 
 
 

제게 가장 소중한 분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저희 형제를 훌륭하게 키워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13살이 되기 전에 우리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저희가 사는 집을 몰래 팔고 그 돈을 몽땅 가지고 나가셨죠. 저희는 하루아침에 길에 나앉게 되었고 이집 저집 빈방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어쩌면 시골이라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든 이사할 수 있도록 짐은 모두 보따리 보따리로 되어 있는 작은 방에서 옹기종기 살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저와 제 동생은 편하게 숨을 쉬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채소 장사로 자식 키운 어머니
철이 일찍 든 우리 형제
 
하지만 어머니는 생계를 혼자 책임지기 위해 모진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서 일하셨고, 남의 밭 한 이랑을 빌려 지은 채소를 장날에 들고 나가 파셨습니다. 어머니의 손과 발은 늘 부르트고 터져 있었습니다. 간헐적으로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만, 저희 형제와 어머니는 아버지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한 번도 부족한 생활비와 학자금을 달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두를 것이 뻔했으니까요.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저희를 키우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저희 형제는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빨리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열심히 산 덕분에 저희 형제는 지금 모두 고향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갚아야 할 대출금이 남아 있지만 어머니와 같이 살 집도 마련하였습니다. 저는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모두 숨김없이 하였고, 저에게 어머니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는 아내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전화 한 통
오래 가지 않은 행복
  
그런데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근무하고 있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요. 다른 사람들은 저를 욕하고 손가락질 할지 몰라도 저는 그 목소리를 듣는데 소름이 돋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용건만 말하라고 했는데 뻔뻔하게도 제게 생활비를 요구하셨습니다.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서 끊었습니다.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내동댕이치고 떠나면서 땡전 한 푼도 남겨놓지 않아 그토록 심한 고생을 하게 한 사람이 어떻게 지금 와서 아버지라고 나타나 자식들에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지요.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동생도 그런 전화를 받았다면서 망연자실해 했습니다. 어머니께는 도저히 말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이런 사실을 알면 당신 죄가 많아 자식들이 고생한다며 곡기를 끊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아버지 친척들에게 연락을 해서 알아보니 아버지는 저희를 버리고 가서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모두 술 마시고 여자 만나는데 써버리고 지금은 종중 재실에서 지내고 있는데, 지금도 어떤 아주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에도 이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혼녀라는 편견이 큰 시절에 자식에게 해가 될까 싶어서죠. 저희를 위해 청춘을 쓸쓸하게 그리고 모진 고생을 하시며 사셨는데, 70이 넘은 아버지는 계속 하고 싶은 대로 재미나게 살았다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또 전화를 해서 자식된 도리를 운운하기에 저는 직장이라는 사실도 잊고 큰소리로 당신은 사람도 아니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란 사람이 '이렇게 천륜을 어기는 사람이 공무원으로 있으면 안 된다'면서 진정서를 내겠답니다. 아니 이것이 말이 됩니까? 아비라는 사람이 자식의 앞날에 재를 뿌리는 게 말이 되나요? 정말 답답합니다.
 
 
제작=조민아

제작=조민아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사례자분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릴 적에 매를 맞은 기억밖에 없는데 어느 날 아버지라고 나타나서 부양하라고 하면 어느 누가 반갑게 맞이하겠습니까? 어린 자녀를 부양한 부모가 늙어 생활능력이 없을 때 자녀에게 부양을 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겠지만요. 더구나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들 생활 꾸리는 것도 힘이 들어 어릴 적 열심히 키워 준 부모를 부양하는 것도 힘에 벅차다고 생각할텐데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부모가 부모라는 이유로 부양을 요구하면 반감이 생길 것입니다.

 
저도 이런 사례를 많이 접했습니다. 어떤 부모님은 심지어 자식이 다니는 직장앞에서 불효자 자식을 고발하는 1인 시위를 하시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들었고, 어떤 부모님은 자녀가 창피해 하도록 부양료 소송을 하면서 자녀 직장 주소지로 소송서류를 보내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부모 자식지간은 천륜이 지배하는 영역이라고 하는데, 빈 틈이 생기면서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민법은 이런 경우에 부양을 청구하는 것이 권리남용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한, 자녀에게 여력이 있다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로 부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대부분 학설은 콩 한 쪽도 나눠먹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부분을 빼고 남는 부분에서 적절한 부양료를 부모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게 정설입니다. 대부분 부모는 콩 한 쪽이 남았을 때 자기는 먹지 않고 자식에게 주었죠.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는 콩 한쪽도 부모와 나눌 것입니다. 
 
사례자분에겐 속시원한 답이 못 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소원하게 지냈다고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일 수밖에 없으니 지금으로선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는 길밖에 없어 보입니다. 동생과 힘을 합하여 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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