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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 치면 정규 이닝 채워…이제 힘 뺀 소설 쓸 수 있어"

중앙일보 2017.06.15 12:21
인간성 탐구에 천착한 연작소설집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을 낸 소설가 이응준씨. [사진 김일희]

인간성 탐구에 천착한 연작소설집『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을 낸 소설가 이응준씨. [사진 김일희]

스스로 20세기 작가라고 칭하는 소설가 이응준(47)씨가 새 소설책을 냈다. 연작소설집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문학과지성사)이다. 21세기 작가와 구분되는 한 세기 전의 작가는 이번 소설책 '작가의 말'에 따르면 뿔 달린 현대의 사제다. 작가에게 문학은 종교, 그러니 소설책은 교리문답의 기록이다. 이 현대판 종교는 세상을 진보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세상을 확 바꾸는 혁명가 한 사람을 개명(開明)시킬 수는 있다. 극단적 문학주의, 세상의 흐름과 180도 반대로 가는 단독자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이씨도 자신의 '시대착오'를 모르지 않는다. 13일 전화통화에서 "요즘 소설가는 창(唱)하는 사람들 아니냐"고 자조했다. 사양장르 종사자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소설 종교주의에 입각해 쓸 수밖에 없었다는 데서 이번 소설의 자랑과 문제가 비롯된다. 무겁고 어렵지만 그런 만큼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는 얘기다. 문명비판 성격, 철학적 소설이라고도 하겠다.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표지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표지

 

연작소설집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낸 소설가 이응준
"엉덩이에 뿔 난 짓(신경숙 표절 의혹 제기) 하면서도 부지런히 써"
"요즘 작가 창하는 사람 신세지만 여전히 세상 본령 이해 도울 수 있어"

 소설책을 소개하는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 실려 있는 9편의 길고 짧은 단편들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부류로 따진다면 인류 최악의 폭력과 야만으로 얼룩졌던 20세기 전반에 대한 언급을 꼽을 수 있다. 소설 속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세상의 비극은 이미 충분하다. 인간이 정신을 못 차리는 건 이제까지 비극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비극에 대한 계몽이다. 비극의 교훈을 제대로 되새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멀게는 100년 전 유럽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나. 익숙한 얘기지만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있었다. 덜 알려진 얘기로, 폴란드 엘리트들의 씨를 말리려 했던 소련 비밀경찰의 카틴숲 만행도 있었다. 효율적인 인간살상 무기 칼라시니코프가 제작된 것도 이 시기다. 레닌 같은 혁명가는 이상사회를 꿈꿨으나 스탈린 같은 괴물에 의해 좌절됐다. 
 
 이씨의 핵심 주장은 그 비극들을 저지른 가해자가 인간 아닌 괴물이나 사악한 생명체가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었다는 거다. 인간은 원래 살인자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살인자, 그런 인간들이 모여 만든 국가 가운데 정의로운 국가 같은 건 없다는 얘기다. 강한 국가와 약한 국가가 있을 뿐이다. 이런 어두운 진단을 이씨는 현대의 살인범죄, IS 만행, 인물들의 자살 기도나 실행, 누구나 걸리는 열병인 사랑과 이별 등을 교차시키며 풀어낸다. 멸종 위기 문학 사제의 철지난 그러나 묵직한 인간성 탐구 보고다. 
 
-올초에는 산문집, 이번에는 소설집을 묶었다. 
"소설책 10권쯤 썼으니 야구로 치면 정규이닝을 채웠달까. 게으르게 살았다고 누가 흉보지는 않을 거 같다. 시·소설·정치평론,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문단에서 막 밀어주는 운 좋은 작가도 아니었고, 문단 사람들이 보기에는 엉덩이에 뿔난 짓(신경숙 표절 의혹 제기)도 한 번 한 거고, 그러면서 이만큼 쓴 거다. 미학적으로도 해볼 거 다 해봤다. 이제 어깨에 힘 빼고 공 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자유를 얻은 느낌이다."
 
-연애·사랑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온다.  
"현대소설은 결국 이야기 구조에 관한 예술인데, 이야기로 단순화시켜 생각한다면 인간 삶이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 아닌가. 삶은 사랑이야, 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틀로 사랑을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의 존재, 인간 본성에 관한 대목도 많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게 현대문학의 본질인데 신은 거대한 물음표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기 위해 끌어들였다."
 
-첫 번째와 마지막, 두 편을 빼면 나머지는 상징적이어서 읽기 쉽지 않다.
"만날 쉽게 이해되는 것만 읽어서 그렇다. 지금 시대도 2차 대전 때처럼 분열, 파열돼 있고,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겉만 엔터테인먼트, 겉만 단순해져, 쉽게 납득되거나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얘기는 잘못된 것처럼 여기는데 그런 세태가 우리를 더 혼란에 빠뜨린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이럴 때 문학은 세상을 더 정밀하게 관찰하고, 분열에 분열을 한 번 들이대보고 재해석해야 세상의 본령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소설 미학이 아직 유효하다고, 내 자신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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