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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소비자 돈으로 생색내는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인하

중앙일보 2017.06.15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한애란경제부 기자

한애란경제부 기자

“매출액 5억원 이하 소상공인들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대폭 완화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겠습니다.”
 

매출 기준 낮춰 평균 80만원 절감
포인트·캐시백 혜택 줄일 게 뻔해
자기 돈 안드는 카드업계는 안도
선심성 정책 고객에 피해 줄 우려

14일 금융위원회가 낸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개정 관련 보도자료의 제목은 유독 길었다.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은 새로울 게 없었다. 8월부터 카드 수수료율 0.8%인 영세가맹점 기준을 매출액 2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1.3%인 중소가맹점은 3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일 일자리위원회가 ‘일자리 100일 계획’ 중 하나로 발표했고, 13일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이한주 경제1분과 위원장이 언론에 브리핑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
 
그럼 이 우대 수수료 확대 정책은 일자리위와 국정기획위 중 어느 위원회의 작품인가. 금융위 관계자는 “일자리위는 상시 조직이고 국정기획위는 한시적인 조직이다 보니 접근방식이 좀 다르다”면서도 명확히 설명하진 못했다.
 
왜 두 위원회가 카드 수수료 정책을 서둘러 발표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금세 실행 가능하고(법 개정 필요 없음), 다수에 영향을 미치는데(45만5000개 가맹점 대상) 예산 한 푼 들지 않는(카드사 수수료 연간 3500억원 감소) 알짜 정책이어서다. 이런 생색내기 좋은 정책을 두 기관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카드업계는 타격이 크다며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대통령 공약사항 중 ‘카드 수수료율 0.3%포인트 인하’가 이번에 빠졌기 때문이다. 수수료율 조정은 원래 법이 정한 대로 3년 주기가 돌아오는 내년에 논의키로 했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요율을 3년마다 조정한다는 원칙은 지켰으니 얻은 게 있다”며 “애초에 공약을 모두 이행하면 연간 5500억원의 수익 감소를 예상했는데 이를 3500억원으로 막았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통신요금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이 ‘카드업계는 그 정도면 다행인 줄 알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충격이 없진 않지만 카드사 입장에선 어느 정도 감내할 수준이란 뜻이다.
 
그동안 수차례 카드 수수료가 당국의 압박에 못 이겨 큰 폭으로 인하 됐지만 카드사의 순이익 감소폭은 그에 비례하지 않았다. 카드사는 발 빠르게 돈 안 되는 카드를 없애고, 부가서비스를 줄여 비용 절감에 나섰다. 예전에 많았던 ‘주유소에서 L당 100원 할인’ 신용카드가 자취를 감춘 것도, 신용카드 포인트·캐시백 혜택을 받기 위한 이용실적 기준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시에 카드사는 고금리 대출인 ‘카드론’ 영업을 강화하고 나섰다. 2014년 30조3000억원이던 카드사의 카드론 실적은 지난해엔 38조6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전보다 부쩍 카드론 이용 안내 문자메시지가 자주 오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의문이 든다. 영세·중소 가맹점주는 수수료를 평균 연 80만원씩 절감하고, 정부는 45만5000명의 유권자에게 생색을 내고, 카드업계는 손해를 감수하고 대통령 공약 사항을 이행한다는 이미지라도 얻는다. 카드 소비자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연 매출 2억~5억원인 동네 약국·음식점·슈퍼마켓 등 가맹점은 카드 수수료가 떨어진 만큼 물건 값을 내려 받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일자리위는 카드 수수료 인하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당근책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카드 소비자들이 받던 할인·적립 혜택을 줄여서 그 돈으로 중소 자영업자에게 수수료를 깎아주는 셈이 된다. 소비자 주머니로 들어갈 돈이 가맹점주에게 돌아가는데 생색은 정부가 낸다. 이것은 새로운 소득 분배 정책인가. 소비자가 빠져있는 카드 수수료 정책은 반쪽짜리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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