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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과거로 가는 '골목여행의 메카'로 떠오른 마산 창동-오동동

중앙일보 2017.06.15 00:01
1980년대 창동과 오동동의 경계지점인 코아양과 인근 모습.  [사진 창원향토자료전시관]

1980년대 창동과 오동동의 경계지점인 코아양과 인근 모습. [사진 창원향토자료전시관]

지난 2013년 방영됐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여주인공 나정(고아라)의 고향은 옛 마산시(2010년 경남 마산·창원·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였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마산 3대 부자로 ‘몽고간장·시민극장·무학소주’과 함께 빵집 ‘코아양과’가 소개되면서 이들이 위치한 마산 구도심지인 창동과 오동동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한때 이어졌다.  
 

2013년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소개된 마산의 도심지
250년 된 옛 골목에 역사·문화·예술 입히는 재생사업 추진
과거로의 추억여행 떠나는 관광객들로 상권도 되살아나

그러나 창동과 오동동은 부침이 많았던 곳이다. 1970년 전국 7대 도시였던 마산의 창동과 오동동은 90년대까지 사람들로 붐볐다. 주말에 거리로 나가면 가만히 서 있어도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 다닐 정도였다. 
당시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역) 근로자 3만5000명과 한일합섬 근로자 1만5000명 등 5만명(전체인구 38만 여명)이 퇴근 이후나 주말·휴일 창동과 오동동 일대 다방·음식점·술집·재래시장 등을 찾으면서 누린 호황이었다. 
반면 2000년대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한일합섬 등 기업이 떠나고 인근 창원 등에 인구를 뺏기면서 급격히 공동화한 것이다. 창동과 오동동은 밤이 되면 유령 도시처럼 변했고, 상가는 빈 점포가 늘어났다. 
2010년대 초 창동 남성동 파출소 부근에서 창동 사거리쪽을 바라본 모습. 낮시간인데도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진 창원시]

2010년대 초 창동 남성동 파출소 부근에서 창동 사거리쪽을 바라본 모습. 낮시간인데도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진 창원시]

 
이런 가운데 정부와 창원시가 540여 억원의 예산을 들여 도시재생 테스트베드 사업(2011~14년), 도시재생선도사업(2014~17년)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창동과 오동동이 몰라보게 바뀌었다. 
이곳의 60여개 빈 점포를 활용해 예술인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인 ‘창동예술촌’을 조성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골목 바닥에 보도블록을 깔고 담벼락에는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의 옷을 입혔다. 이로 인해 낡고 어두웠던 창동과 오동동이 밝고 깨끗하게 바뀌었다. 특히 창동과 오동동의 가장 큰 장점인 ‘옛 골목’에 숨어 있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 스토리텔링도 덧붙였다. 
창동예술촌 골목길 모습. 위성욱 기자

창동예술촌 골목길 모습. 위성욱 기자

창동예술촌 골목길 모습. 위성욱 기자

창동예술촌 골목길 모습. 위성욱 기자

창동예술촌 골목길 모습. 위성욱 기자

창동예술촌 골목길 모습. 위성욱 기자

 
지난 2014년 12월 창동과 오동동 등 시내 중심가 하루 유동인구는 주중 1408명, 주말 1465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주중 3741명, 주말 4798명으로 2~3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창동과 오동동 등 중심 상가의 월 매출액도 395억여원에서 573억여원으로 늘어났다. 
창동 남성동 파출소 앞에 재현해 놓은 마산창 모습. 위성욱 기자  

창동 남성동 파출소 앞에 재현해 놓은 마산창 모습. 위성욱 기자

 
창동 일대가 번화가가 되기 까지는 오랜 과정을 거쳤다. 1760년 지금의 남성동 파출소 앞 제일은행 자리에 조선 영조 때 조창인 마산창이 설치됐다. 조창은 대동미 수납과 운반을 맡은 기관으로 이곳을 지키는 군사만 960여명이 되면서 인근에 큰 상권이 형성됐다. 현재 제일은행 건물 옆쪽에 당시 조창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창원도시재생지원센터 김경년 마을 활동가는 “남성동 파출소 인근은 1987년 6·10 항쟁 당시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말했다. 
250년 역사길 모습. 이곳에 마산 예술인들이 자주 찾던 고모령 등의 술집이 있었다. 위성욱 기자

250년 역사길 모습. 이곳에 마산 예술인들이 자주 찾던 고모령 등의 술집이 있었다. 위성욱 기자

 
제일은행 맞은편 건물 사이로 ‘250년 골목길’이 조성돼 있다. 길이 250m 정도의 이 길은 257년전 조창으로 대동미를 운반하는 수레가 실제 다녔던 길이다. 기와가 얹어진 옛 돌담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건물 2층에 1979년 문을 연 ‘해거름’이란 술집이 있다. 이곳은 술과 함께 LP판으로 된 옛 노래를 신청해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 술집 맞은편에 이선관 시인 등 마산 예술인들이 가장 많이 찾았다는 ‘고모령’이란 술집이 있었으나 90년대 말 문을 닫았다. 드라마 ‘1994’에 언급된 창동복희집(떡볶이집),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리좀’도 이 길에 있다. 
창동 상상길 입구 모습. 최근에는 연인이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해 '쌍쌍길'로도 불린다. 위성욱 기자. 

창동 상상길 입구 모습. 최근에는 연인이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해 '쌍쌍길'로도 불린다. 위성욱 기자.

 
골목길 끄트머리는 상상길(불종거리~창동 사거리)과 이어진다. 상상길은 한국관광공사와 창원시가 2015년 11월 조성했다. 관광공사가 ‘당신의 이름을 한국에 새겨보세요’란 주제로 글로벌 캠페인을 펼쳐 2만5000여명의 외국인들의 지원을 받아 이곳 150m 길 바닥에 보도블록 형식으로 이름을 새겨 놓았다.
 창원시 관광과 박기한 계장은 “지난해 한 일본인 아버지와 딸이 이 길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며 “사연을 들어보니 엄마가 캠페인에 참가해 상상길에 이름을 새겼는데 그 뒤 돌아가셔 어머니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남녀가 함께 이 길을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쌍쌍길’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창동 상상길 바닥에 적힌 외국인 이름들. 위성욱 기자

창동 상상길 바닥에 적힌 외국인 이름들. 위성욱 기자

 
창동에는 시골 마을 입구 정자나무 같은 오래된 가게 3곳이 있다. 황금당(귀금속집·1938년 개업)·학문당(서점·1955년), 고려당(빵집·1959년)이 주인공이다. 이 중 황금당과 고려당은 250년 길을 나서 상상길과 만나는 지점에 있다. 고려당은 달콤한 팥빵이 가장 유명한데 한 번 먹으면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속 찾는다. 마산이 고향인 안상수 창원시장도 가끔 퇴근길에 들려 이 팥빵을 사간다고 한다. 
창동 황금당. 위성욱 기자

창동 황금당. 위성욱 기자

창동 고려당. 위성욱 기자 2017.6

창동 고려당. 위성욱 기자 2017.6

드라마 ‘1994’에 언급됐던 코아양과는 창동과 오동동의 경계인 불종거리 인근에 있다. 이곳은 크리스마스 때면 가게 앞에 케이크가 산더미처럼 쌓여 진풍경을 보여줬다. 
 
창동 중심부에 현재도 영업중인 학문당은 지금은 사라진 시민극장과 함께 창동 역사를 대변한다. 마산시내에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서점 60~70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6개 정도만 남았다. 학문당 맞은편 시민극장(현 SSAZY 건물)은 1908년 '마산민의소'가 있던 곳이다. 마산포 개항 이후 일본 침탈에 맞서 상권 수호를 위해 1908년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 된 뒤 청년들의 토론 장소나 강연장 등으로 사용되다 1945년 시민극장이 됐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창동 등에는 시민·연흥·피카디리·중앙·태양·명보·동보 등 많은 극장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시민극장마저 문을 닫으면서 이곳에는 현재까지 대형극장이 없다. 
창동 시민극장 뒷편 희망쉼터 입구. 창원도시재생센터 이세원 마을활동가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위성욱 기자

창동 시민극장 뒷편 희망쉼터 입구. 창원도시재생센터 이세원 마을활동가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위성욱 기자

창동 시민극장 뒷편 희망쉼터 내부.위성욱 기자

창동 시민극장 뒷편 희망쉼터 내부.위성욱 기자

시민극장 옆 골목에는 여행자들에게 최근 포토존 등으로 인기를 끄는 장소가 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3·15 의거를 상징하는 ‘3·15 희망나무’가 벽화로 조성된 희망쉼터가 그곳이다. 창동과 오동동의 변화상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황금당 맞은편 골목은 창동예술촌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이곳과 창동 부림시장 지하 ‘부림창작공예촌’에는 100여명의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창동예술촌 골목 곳곳에서는 이선관 시인 등 마산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의 벽화나 조형물 등 흔적도 볼 수 있다. 
창동 부림시장 지하 부림창작공예촌에 있는 한복체험관. 위성욱 기자

창동 부림시장 지하 부림창작공예촌에 있는 한복체험관. 위성욱 기자

부림창작공예촌 인근에는 한복 체험관도 있어 이곳에서 한복을 무료로 빌려 골목을 다닐 수 있다. 특히 창동예술촌은 유명 찻집과 식당 등이 중간 중간에 있다. 정근식당(소고기집)은 가격이 싸면서도 맛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사랑이 그린 세상은 커피 등 각종 차를 파는데 이곳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독특한 맛의 ‘마약토스트’가 인기다. 실내에서 조경이 아름다운 마당을 통유리를 통해 볼 수 있다. 창동 사거리 지난 5월 들어선 독립서점 ‘산·책’(Live book)도 차를 마시며 일반 서점에서는 볼수 없는 독립서적을 볼 수 있고 인테리어도 깔끔해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이 나고 있다.   
창동 사거리 인근에 있는 독립서점 '산·책' 내부. 위성욱 기자

창동 사거리 인근에 있는 독립서점 '산·책' 내부. 위성욱 기자

 
이 외에도 역사적 장소가 많다. 현 부림시장 입구는 1919년 3월 구마산장터에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곳이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마산의 명물 ‘할매꼬마김밥’과 6·25떡볶이집이 있다. 꼬마 김밥은 보통 김밥의 3분의 1 굵기, 6·25떢볶이는 화분 받침대에 떡볶이를 담아주는 것이 특징이다.
할매꼬마김밥집.위성욱 기자

할매꼬마김밥집.위성욱 기자

6.25 떡볶이집. 위성욱 기자

6.25 떡볶이집. 위성욱 기자

 
불종거리에서 오동동 문화의 거리로 30여m 내려가면 바닥에 ‘3·15 의거 발원지’ 기념 동판이 있다. 그 옆에 있는 '원할머니 보쌈' 건물이 옛 민주당 당사다. 1960년 3월 15일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마산시당이 부정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시위를 시작한 곳이다. 해방이후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자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건물 뒤쪽으로 가면 당시 모습을 담은 갖가지 조형물과 사진 등이 벽면에 전시돼 있다. 
옛 민주당 마산시당 건물 뒷편 모습. 위성욱 기자 2017.6

옛 민주당 마산시당 건물 뒷편 모습. 위성욱 기자 2017.6

창동 사거리는 1979년 10월 18일 마산시민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해 부마항쟁을 일으킨 발원지다. 창원도시지원센터 손재현 사무국장은 “마산 창동과 오동동은 먹거리 볼거리는 물론이고 과거 역사로의 추억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며 “오는 10월에는 마산 국화축제 전시장이 이곳에 일부 들어서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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