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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격동의 중국 현대사 지켜본 옌유윈

중앙일보 2017.06.12 17:26
 격동의 20세기 초ㆍ중반 중국 현대사의 증인이 또 한사람 사라졌다. 112세를 일기로 지난달 24일 뉴욕에서 별세한 옌유윈(嚴幼韻)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삶과 중국 현대사의 장면들이 중첩되는 건 외세 침략과 항일전쟁, 국공 내전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두 사람의 걸출한 중화민국 외교관과 차례로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그 역시 13년동안 유엔 의전국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뉴욕 사교계의 명사였다.  
미국으로 이주한 옌유윈(가운데)은 유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946년 가을 뉴욕. [사진제공=김명호]

미국으로 이주한 옌유윈(가운데)은 유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946년 가을 뉴욕. [사진제공=김명호]

 
 
옌은 출생부터 비범했다. 1905년 톈진에서 태어난 그의 할아버지는 당대 중국 최고의 갑부 옌신허우(嚴信厚)였다. 한 때 청말의 재상 리훙장(李鴻章)의 측근으로 지내다 사업가로 변신해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톈진에서 여학교를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간 옌은 명문 푸단(復旦)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여학생이 되었다. 타고난 미모에 전통의상 치파오를 날마다 바꿔 입고 자동차로 등교하는 그를 보기 위해 동료 남학생들이 교문앞에서 줄지어 기다렸다는 얘기가 전해올 정도로 여대생 옌은 인기가 높았다.  
 
옌유윈(왼쪽)이 장쉐량과 장제스의 고문이었던 도널드와 이야기하고 있다. 1945년 3월 마닐라. [사진제공=김명호]

옌유윈(왼쪽)이 장쉐량과 장제스의 고문이었던 도널드와 이야기하고 있다. 1945년 3월 마닐라. [사진제공=김명호]

 
옌의 첫 반려가 된 주인공은 당시 상하이에서 수재 청년으로 이름난 양광성이었다. 20대에 칭화대 교수로 있다 국민당 정부의 부름으로 외교관이 된 양은 열렬하게 옌에 구애를 했다. 옌의 부모는 양의 장래를 보고 결혼을 승락했다. 첫 결혼의 결말은 비극적이었다. 1937년 마닐라 총영사로 부임한 양은 동남아 화교들을 대상으로 항일전쟁 자금을 조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42년 필리핀을 점령한 일본군에 체포됐다. 옌도 대사관 부지의 대부분을 일본군에 내주고 포로아닌 포로 생활을 하며 힘든 나날을 버텼다. 옌이 남편의 처형 소식을 알게 된 건 45년 일본군이 패주한 뒤였다.  
 
중국 외교사절단 대표 자격으로 만찬에 참석한 양광성(왼쪽 두 번째)과 옌유윈(왼쪽 세 번째). 옌유윈의 오른쪽으로 세번째가 프랑스 주재 대사 구웨이쥔. 1938년 5월, 파리.  [사진제공=김명호]

중국 외교사절단 대표 자격으로 만찬에 참석한 양광성(왼쪽 두 번째)과 옌유윈(왼쪽 세 번째). 옌유윈의 오른쪽으로 세번째가 프랑스 주재 대사 구웨이쥔. 1938년 5월, 파리. [사진제공=김명호]

 
옌은 중화민국 정부가 성대하게 치러준 남편의 국장(國葬)을 마치고 딸 셋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공산화된 중국 대륙과 국민당 정부가 쫓겨간 대만 대신 미국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남편의 동료 외교관이었던 구웨이쥔(顧維鈞)과 운명의 재회를 했다. 남편을 잃은 옛 동료의 부인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은 구는 56년 장제스 정부로부터 주미 대사 발령을 받자 아내와 이혼하고 옌과 새 가정을 꾸렸다. 구는 국제사회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거물 외교관이었다. 중화민국이 해외에 파견한 최초의 현대적 직업 외교관이었던 그는 1차대전 청산을 위한 파리강화회의에 중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고 프랑스 대사와 외교부장을 거쳐 한때 총리 대행까지 지낸 거물이었다. 국제사회는 지금도 그를 웰링턴 쿠란 서양식 이름으로 기억한다.  
헤이그 시절의 구웨이쥔과 옌유윈(오른쪽).  [사진제공=김명호]

헤이그 시절의 구웨이쥔과 옌유윈(오른쪽). [사진제공=김명호]

 
 
옌과 구의 결혼 생활은 1985년 구가 먼저 숨질때까지 26년간 계속됐다. 그 사이 옌도 유엔 소속 외교관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가 중국ㆍ유럽ㆍ동남아ㆍ미국으로 삶의 무대를 옮겨가며 만났던 사람들을 열거하면 초창기 중화민국의 역사를 쓸 수 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교류의 폭이 넓었다.  
1947년 12월, 미국에서 발행되는 부녀잡지에 미국서 첫 번째 성탄절을 보내는 옌유윈(맨 왼쪽)과 세 딸의 모습이 크게 실렸다.  [사진제공=김명호]

1947년 12월, 미국에서 발행되는 부녀잡지에 미국서 첫 번째 성탄절을 보내는 옌유윈(맨 왼쪽)과 세 딸의 모습이 크게 실렸다. [사진제공=김명호]

옌은 2년간의 구술을 거쳐 2015년 ‘109개의 봄날들:나의 이야기’란 제목의 자서전을 펴냈다. 중국판 출판 기념회는 그의 모교인 푸단대학에서 열렸다. 자서전에서 그는 평범치 않은 장수 비결을 밝혔다. 첫째. 운동을 하지 않는 것, 둘째 보약을 먹지 않는 것, 셋째 살고기를 즐겨 먹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 철학은 ‘타인에게 은혜를 베풀자’였다. 대부호이자 자선사업가였던 할아버지와 부친의 영향이기도 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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