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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중 관계와 북핵 문제

중앙일보 2017.06.12 02:40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 진(사)한미협회 회장전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장

박 진(사)한미협회 회장전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장

최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방문해 유학 시절 은사인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를 만났다. 앨리슨 교수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결정의 본질』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국제정치 석학이다. 그는 새로 저술한 『미국과 중국은 전쟁을 피할 수 없는가?』를 소개하면서 북한 핵문제와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을 걱정했다. 그 책의 요지는 미국은 아직도 부동(不動)의 지배세력이고 중국은 돌이킬 수 없이 부상(浮上)하는 신흥세력인데 패권 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미국의 두려움으로 인해 굴기하는 중국과 충돌 코스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위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s Trap)’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양국 지도자들의 현명한 국가운영전략(statecraft)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스 문명의 황금시대를 저물게 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역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는 신흥세력인 아테네의 도전과 지배세력인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결국 전쟁을 불가피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구조적 스트레스’가 현재 미·중 간에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굴기에 두려움 느낀 미국
양국 충돌로 해법 찾을 가능성
양국 갈등, 북핵문제도 영향권
한·미동맹 신뢰 흔들리면 안 돼

투키디데스의 고전적인 주장에 관해서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이를 언급한 바 있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을 다루는 핵심 인사들도 이를 숙지하고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투키디데스가 지적한 대로 두려움, 명예, 그리고 이익이라는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싸우고 있다”고 언론에 기고했다. 동서양 전쟁사에 해박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투키디데스의 가설에 대해 “그러한 것들이 아직도 한 국가가 교전 행위로 가는 뿌리 깊은 이유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향후 5~10년 내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미·중 관계의 충돌 또는 타협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단층 지대에 놓여 있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했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4월 초 미·중 양국 정상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만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 안보 문제를 논의했다. 앨리슨 교수에 의하면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김정은 정권이 장거리미사일 테스트를 중단하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을 동결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것은 북한의 과거 핵개발을 문제 삼기보다는 미국 본토를 핵미사일로 위협하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미·중 간의 전략적 편의에 따른 ‘빅딜’을 하는 걸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등장하고 한·미 동맹은 약화될 것이다. 그 반대의 시나리오는 미국의 압박을 받는 중국이 주저하는 사이에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고 미국이 북한에 선제공격을 할 경우다. 비록 가능성은 낮지만 이것은 북한의 즉각 보복공격으로 제2의 한국전을 불러일으키고 또다시 미·중 간 정면 충돌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남북한이 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편의에 의한 설익은 타협이나 운명론에 입각한 위험한 충돌을 피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앨리슨 교수는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북한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리 국방부는 북한이 핵폭탄 10개를 만들 수 있는 약 5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있고, 미국의 과학국가안보연구소(ISIS)는 북한이 2016년 말 기준 13~30개의 핵폭탄 보유 수준에 와 있고, 연간 3~5개씩 추가로 제조하면 2020년에는 25~50개 정도를 보유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핵 폐기가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그 첫 단계 필요조건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동결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길고도 어려운 단계적 협상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와 대미 특사외교를 통해 동맹 간 소통의 첫 단추를 꿰었다. 양국의 국가안보 담당자들도 만났다.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동맹의 신뢰를 회복하고 북핵 해결을 위한 양국의 공통 전략과 효과적인 역할 분담을 이끌어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정권교체보다는 일단 대북제재를 강화해 ‘최고의 압박’을 가하고,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 ‘개입’의 단계로 이행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변화하는 미·중 관계의 현주소와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적 외교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미·중 관계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있도록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환경영향평가 문제로 한·미 신뢰관계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리면 북핵 문제가 악화되고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박 진 (사)한미협회 회장·전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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