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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방카슈랑스 확대, 보험설계사 생존권 위협한다

중앙일보 2017.06.12 01:00 경제 10면 지면보기
강길만한국보험대리점협회장

강길만한국보험대리점협회장

새 정부의 81만 개 일자리 창출 계획이 탄핵정국으로 얼어붙었던 우리 국민의 가슴을 희망으로 녹여 주고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30일 은행연합회는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은행권 제언 과제’ 보도자료에서 “방카슈랑스 업무 범위 확대로 소비자 권익 증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방카슈랑스 제도는 은행 위주의 금융정책 변질을 막고, 보험대리점·설계사 등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국회, 관련 종사자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다. 그러나 방카슈랑스 도입 후 은행이 매년 판매수수료로만 7000억~1조원의 수익을 가져가면서 보험설계사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어, 설계사 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것과 같이, 보험설계사들은 거대 은행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까 봐 노심초사한다.
 
한 손해보험사는 2015~2016년 방카슈랑스 비중을 줄이고 대면 채널을 강화한 결과, 보험설계사가 1년 만에 700명 이상 신규 채용됐고 연 소득도 600만원 가까이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은행의 영역 침범으로 보험 모집종사자의 생계가 얼마나 피해를 받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특히 보험설계사 중엔 경력단절 여성이 많아서 일자리 확대나 저소득 가정의 소득증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편 방카슈랑스 때문에 은행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도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대출 실행을 조건으로 보험가입을 요구하는 ‘꺾기’가 그 사례다. 국회 정무위 김해영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6년 2분기 기준 15개 은행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이 대출을 받은 후 1~2개월 내 6만6714건의 보험, 예금 등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의 논리대로 방카슈랑스 제도에 큰 변화가 생길 경우, 압도적 협상력을 앞세운 은행의 ‘갑질’이 성행할 것이 뻔하다. 은행은 ‘25% 룰’ 완화, 영업점 내 보험 판매인 수 확대, 자동차보험 등 판매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은행만의 배불리기 행위를 소비자 편익 증대로 둔갑시킨다고 해서 새 정부가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지난 2015년 11월, 대법원은 서울 동대문구청과 성동구청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시킨 조치에 대해 “달성하려는 공익이 중대할 뿐만 아니라, 이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도 크므로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50만 보험 모집종사자와 그 가족들의 생활권 보장과 중소기업의 피해방지를 위해 방카슈랑스 제도 역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
 
강길만 한국보험대리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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