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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권이 역사를 장악하려고 할 때 왜곡되지 않는 걸 본 적 없어

중앙일보 2017.06.11 20:54
한국사의 가장 위대한 두 인물로 선택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자리잡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중앙포토]

한국사의 가장 위대한 두 인물로 선택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자리잡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중앙포토]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들어선 것은 1968년의 일이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광화문을 재건하고 자신이 직접 현판에 광화문‘이라고 썼다. 그는 누구보다도 “민족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광화문을 재건하고 이순신의 동상을 세우는 일이었다. 제3공화국(1963-1972)은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전통과 위인 만들기에 골몰했다. 국토 전역에 이순신을 비롯한 위인들의 동상을 세우고 표준영정을 만들었으며 현충사·오죽헌과 같은 문화유산을 복원했고, 이를 통해 국민국가 건설에 매진했다. 이순신과 신사임당의 동상과 진주 기생 논개의 영정을 보여주면서 충효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국민국가로의 통합을 꾀했다. 제3세계 신생국가에서 시도했던 '국가 만들기(Nation Building)'의 일환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도한 세종대왕상 건립 역시 박 대통령의 그늘에 선 일이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광화문에 두 명의 위인을 갖게 됐는데 이들은 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관'이 투철한 위인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역사는 선택된 위인들로 채워진 역사였다. 국가에 목숨 바쳐 충성하고, 자손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현모양처의 이념을 체현한 사람들을 추앙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제3공화국에 충성하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다. 승자만이 기록을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다. 당연히도 승자는 언제나 자신과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자신의 최선’을 선택한다.  

정부 가야사 복원 주문 아이러니
중요한 건 과거 영광 아닌 미래

한술 더 떠서 제5공화국에서는 대대적으로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MBC)에 관심을 보였다.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집권한 신군부는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집권한 이방원의 역사를 통해 정권의 정당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극상의 쿠데타를 통한 태생적인 약점에 대한 합리화를 TV 드라마에서 찾았다. 실제 역사가 어땠든지, 이성계나 이방원이 정말 어떤 말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때그때 상황에 견줄 역사적인 맥락과 불의의 정당화가 필요했을 뿐이다.  
참여정부, 그리고 그 직후인 2008~2009년에는 개혁군주로서 정조가 주목을 받았다.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서 앞다퉈 정조를 다뤘다. 이상적인 개혁을 꿈꾸며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이라는 현실에서 고민하고 좌절한 정조를 실제 대통령에 비유하기도 했다. 또 정권이 바뀐 다음에는 실패한 혁신가로서 광해군의 생애와 그의 비참한 최후가 거론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드라마 속 신라 선덕여왕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 이미지를 투영해 보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의도적인 '국가 만들기'라기 보다는 역사가 현실 정치의 메타포로 소비된 경우다.
도종환 문화부장관 후보자의 역사관이 연일 도마에 오른다. 그가 직접적으로 역사를 썼거나, 역사 연구를 한 것은 아니다. 한국 고대사에 관한 자신의 입장이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는 활동을 한 것이 화근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에 관여한 일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먼저 밝혀두어야 할 것은 동북아역사재단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공공기관이라는 점이다. 즉, 국회의원 신분으로 감사를 할 수 있었고, 감사 당시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사업 중단에 관여했으리라 추측된다. 이에 대해 그는 지도 제작의 부실이 원인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은 역사가 해석에 따라 달라지듯이 역사지도 역시 심사자에 따라 심사 결과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시작하는 한민족의 역사가 왜곡된 것이며 그에 앞선 문헌들이 있다는 것이 후보자의 입장이라고 한다. 「고한서」 등 그 문헌들은 후보자가 말하는 식민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엄밀하게 규명된 사료가 아니다. 소위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의 갈등은 여기서 비롯됐다. 양자는 각각 서로를 식민사학, 유사역사학이라고 부른다. 누가 옳은가 시비를 가리는 것은 길고 어려운 작업이다. 단지 재야사학의 역사인식이 ‘과거’ 지향의 극단적 민족주의에 서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가 단지 한반도에서만 살아온 민족이 아니라 광활한 중국 대륙을 누비며 한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전파한 위대한 민족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그 역사 인식의 요체이다. 양측의 갈등은 제일 먼저 고대사에서 불거졌다. 고조선의 강역은 만주와 중국 북부 대부분을 아울렀고, 한반도에 중국 한나라가 세운 한사군은 설치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재야사학의 주장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영토, 국경, 평양-낙랑군설을 말하는 강단사학자들은 일제가 만든 틀을 그대로 따르는 식민사학자라고 공격을 받았다. 결국 같은 문헌자료와 고고학·미술사학적 유물을 놓고 서로 해석하는 방법이 정반대에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이다. 고대사를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가 전혀 다른 데서 기인한 것이므로 양자 간의 논쟁은 평행선처럼 접점을 만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런데 한민족이 요하문명의 창시자인 동이족의 후예라며 '위대한 상고사'를 내세우는 이면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과 맞닿아 있다. 어찌 보면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이어지는 '국민교육헌장' 및 그 입안자 박종홍의 정신과 다를 바가 없다. 극과 극이 통한다고나 할까. 기원전 8000년까지 올라가는 중국 북방 훙샨(紅山) 문화를 만든 동이족이 우리 조상이라고 한들 21세기까지 1만년 동안 순수혈통을 이어올 수도 없다. 한민족이 단군의 자손,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도 알고 보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신화이다. 따지고 보면 도후보자의 역사 인식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단일민족 신화와 박정희식 민족주의에 맞닿아 있다. 세계가 하나로 되어가는 글로벌·다문화시대에 배타적 민족주의는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청와대에서는 가야사 복원을 통해 영호남의 화합을 이루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문화부장관 소관사업은 아니지만 지난 정권의 국정교과서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권이 역사를 장악하려 할 때 정권도, 역사도 왜곡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왕정국가도 아니고 민주공화국에서 역사 복원을, 그것도 왕조시대의 역사 복원을 지시하고, 삼국이 아니라 사국시대였음을 입증하라는 지시를 내린다면 그것도 아이러니다. 지금 우리 정부는 역사학을 포함한 인문학 진흥을 위해 다각도로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문학은 당장 코앞의 현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안 되겠지만 인간의 정신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학문이다. 그러나 학문의 방향과 그 과업을 명시하고, 이를 해결하라고 주문하는 일은 인문학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퇴색시키는 일이다.    
어느 집이나 ‘옛날엔 금잔디’였고, 왕년엔 천하절색이었다고 말하는 법이다. 그냥 그 정도에서 그쳐도 좋겠다. 굳이 덧붙이자면 신라의 화려한 금관과 대형 고분, 불국사에 주목하고 위대한 조선의 과거를 부각시킨 것은 조선총독부였다. 위대한 과거와 비참한 현실을 비교하고 자괴심이 들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누구인가? ‘과거의 영광은 괘념치 말라,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조국의 미래다’라고 말해줄 사람.  
강희정 서강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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