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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 로또가 파괴한 가족, 행운이 아니라 재앙의 불씨였다

중앙일보 2017.06.11 16:32
 "로또 당첨된 패륜아들 고발합니다" A씨 어머니가 지난해 8월 경남 양산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로또 당첨된 패륜아들 고발합니다" A씨 어머니가 지난해 8월 경남 양산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빠 딸이 고등학교 때 애를 낳았다는 사실을 남편 될 사람한테 알릴 거야. 당장 돈 내놔.”

로또 당첨 50대 A씨의 두 여동생, 당첨금 분할 요구
어머니 앞세워 ‘패륜아들’ 1인 시위 시키기도
A씨 어머니는 모욕죄로, 두 여동생과 사위 협박과 주거침입으로 고소
재판부 “죄질이 나쁘고 반성의 기미 없어” 집행유예·징역 실형 선고

 
지난해 7월 40억 로또에 당첨된 A씨(58)는 그해 8월 자신을 찾아온 B씨(57)와 C씨(49)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두 여동생은 로또 당첨금 실수령액 27억원의 일부를 자신에게도 달라며 욕설과 협박을 했다고 한다.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A씨가 20여년간 거의 교류 없이 떨어져 산 여동생들에게 돈을 줄 리 없었다. 혈육이라는 인식도 희미했다.  
 
두 여동생은 어머니 D씨(79)를 내세웠다. 이들은 ‘로또 당첨 후 엄마를 버리고 간 패륜아들’이라고 적힌 피켓을 만들어 어머니를 경남 양산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게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글도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 어머니는 피켓을 들고 있으면 곧 큰돈을 받을 수 있다는 두 딸의 말을 믿고 1인 시위를 했다. 이 모습은 사진으로 찍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급속히 퍼지면서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사건이 됐다.   
 
A씨는 이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로또 당첨 후 A씨는 가장 먼저 경남 양산에 34평형 아파트를 3억원에 샀다. A씨가 이혼 후 20여년 간 딸과 아들을 키워준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이었다. 하지만 A씨는 졸지에 ‘돈에 눈이 멀어 엄마를 버린 패륜 아들’이 돼 있었다. 더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A씨는 이후 어머니는 물론 두 여동생과 연락을 끊었다.
 
그러나 두 여동생은 포기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로 욕설을 남겼고 경남 양산 집을 수소문해 찾아오기도 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자 두 여동생과 한 여동생의 남편 E씨(54)는 열쇠 수리공을 불러 잠금장치를 공구로 파손하고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9월 경찰에 이들을 고소했다.  
 
8개월 가량 이어진 법정 공방에서 두 여동생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의 추궁 끝에 협박을 한 사실만 일부 자백했을 뿐이다. 
 
울산지법은 11일 협박과 주거침입 등을 유죄로 인정해 두 여동생 모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여동생의 남편인 E씨의 죄질을 나쁘게 보고 징역 8개월을 선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E씨가 두 여동생을 대표해 경찰에 신고하고 열쇠수리공을 부르는 등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하고, 주도했으면서 A씨 집 현관문을 부술 때 현장에 없었다는 점을 내세워 범행을 부인하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고 태도가 매우 나쁘다”고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남 양산경찰서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 가족애가 약해진 상태에서 거액의 돈이 생긴 것이 행운이 아니라 형제를 원수처럼 만든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양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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