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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노동당 코빈 대표 "졌지만 승리했다"

중앙일보 2017.06.11 16:16
지난 4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요청에 따라 조기총선이 결정됐을 때만 해도, 노동당의 참패는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당시 일간 가디언은 “보수당 의석은 395석까지 늘고, 노동당은 116석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내 리더십이 위태롭던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패배가 유력한 조기총선을 수용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젊은 유권자 호감 얻어
완패 예상 깨고 대선전

확고한 사회주의 노선 탓
온건 좌파와 갈등했지만
총선으로 당내 입지 강화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테리사 메이 총리의 승부수였던 조기총선에서 노동당은 의석을 31석 늘리며 선전했다. 집권 보수당의 ‘하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코빈 대표는 최대한 EU에 잔류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주장했다.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테리사 메이 총리의 승부수였던 조기총선에서 노동당은 의석을 31석 늘리며 선전했다. 집권 보수당의 ‘하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코빈 대표는 최대한 EU에 잔류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주장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불과 몇 주 사이 메이 총리와 코빈 대표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8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은 262석을 차지했다. 전망치를 훌쩍 뛰어넘으면서 보수당의 과반 의석 확보를 좌절시켰다. 가디언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함께 이번 총선을 “서구 정치 지형을 뒤흔든 세 가지 정치적 지진”으로 꼽았다. 
9일 영국 총선 결과를 분석한 뉴욕타임스(NYT) 기사의 제목도 ‘패배했지만 총선 최대 승자는 제레미 코빈’이었다. 
 
1949년 보수당 지지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웨스트미들랜드에서 태어난 코빈 대표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82년 런던 내 좌파 본거지인 아일링튼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노동당에서도 가장 선명한 사회주의 기치를 내걸었던 그는 내내 아웃사이더였다. 2015년 노동당 대표로 선출된 뒤에는 중도의 길을 걷던 당을 왼쪽으로 이동시켰다. 부유세를 인상하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고등교육을 무상화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웠다. 이같은 정책이 지난해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맞붙었던 버니 샌더스의 공약과 상당 부분 겹치면서 코빈은 ‘샌더스의 정치적 쌍둥이’ ‘영국의 버니 샌더스’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내 주류인 온건 좌파와 갈등하면서 내홍이 깊어졌고 리더십은 흔들렸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지리멸렬했다. 총선을 앞두고 당내에서조차 “코빈에겐 희망이 없다”는 비관 전망이 우세했던 까닭이다.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깼다. 단점으로 여겨지던 코빈 대표 성향이 오히려 주류 정치에 환멸을 느낀 젊은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당의 복지 축소 공약을 거론하며 메이 총리를 냉혹한 사람으로 묘사했고, 편안한 차림으로 유세 현장을 오가며 젊은 유권자의 호감을 얻고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 출구조사를 맡았던 존 커티스 스트라스클라이드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사람들은 그가 쓸모없고 무능하며 극단적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보수당보다 나은 공약을 제시했고, 유세도 잘했다”고 말했다  
 
총선 결과로 코빈 대표의 당내 입지도 확 달라졌다. 지난해까지 공개적으로 코빈 대표를 비판했던 추카 우무나 의원은 “코빈 대표의 선거운동은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열정과 에너지로 선거 운동을 펼쳤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며 “그것이 바로 정치다”라고 극찬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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