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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 굴리냐” 비웃던 시절 가족·친구 다 끌어들였죠

중앙선데이 2017.06.11 02:02 535호 25면 지면보기
[2017 스포츠 오디세이] 컬링 대표팀 독식한 ‘킴스패밀리’ 家長 김경두 교수
컬링 여자대표팀은 전원 김씨로 구성돼 ‘팀 킴(Team Kim)’이라 불린다. 가운데 김민정 감독을 중심으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미·선영·은정·경애·초희. 영미와 경애는 자매고 영미-은정, 경애-선영은 의성여고 동기동창이다. 의성=프리랜서 공정식

컬링 여자대표팀은 전원 김씨로 구성돼 ‘팀 킴(Team Kim)’이라 불린다. 가운데 김민정 감독을 중심으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미·선영·은정·경애·초희. 영미와 경애는 자매고 영미-은정, 경애-선영은 의성여고 동기동창이다. 의성=프리랜서 공정식

내가 김경두(61)라는 사람을 처음 만난 건 2003년 2월 일본 아오모리(靑森)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였다. 경북과학대 사회체육과 교수였던 그는 이름도 생소한 컬링 대표팀을 이끌고 있었다. 컬링 결승전은 대회 마지막날 열렸는데 남녀 모두 한국과 일본이 결승에서 맞붙었다. 일본 왕세자 부부가 경기를 관람하러 와서 경기장이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여자 팀은 일본에 석패했지만 남자는 일본을 꺾고 우승했다. 남자 대표팀 양영선 감독은 김 교수의 부인이었다.

90년대 초반 컬링 보급한 주인공
빙상장에 원 그려 심야에 도둑훈련

딸·아들의 친구·후배에 사위 가세
경북체육회 단일팀, 3종목 모두 출전

컬링은 선진국형 두뇌·가족 스포츠
올림픽 계기로 전국적 붐 일어나길

 
레슬링 선수 출신인 김경두 교수는 현재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컬링을 국내에 소개하고 보급한 장본인이다. ‘요강단지 비슷한 돌덩이를 얼음판에 굴려 놓고 빗자루로 쓰는 이상한 놀이’ 정도로 컬링이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이제 컬링은 ‘얼음판의 체스’라는 근사한 별명과 함께 동계 종목에서 보기 드문 아기자기한 두뇌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부터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컬링은 2018 평창올림픽에선 믹스더블(남녀 혼성 2인조)이 추가돼 기존의 남녀 단체전(4인조)과 함께 3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팀워크가 중요한 컬링은 축구나 야구처럼 각 팀에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게 아니라 선발전에서 성적이 가장 뛰어난 팀이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출전한다. 지난 5월 경기도 이천 장애인선수촌 컬링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경북체육회 팀이 3종목(남녀 단체, 믹스더블)에서 모두 우승,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독식해 버렸다. “경북체육회가 다 해 먹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더 기가 막힌 장면이 있다. 지난 5월 22일 경북 의성에 있는 의성컬링센터에 대표팀이 첫 소집됐다. 그런데 김경두 부회장의 딸·아들·사위에다 김 부회장의 친구와 그의 아들 등이 모인 대표팀은 사실상 킴스 패밀리(Kim's Family)였다. 여기에는 한국 컬링의 비사(秘史)가 숨어 있다.
 
 
“여기가 컬링장이냐” 빙상장서 쫓겨날 뻔
의성컬링센터에 모인 컬링 국가대표팀. 김경두 부회장(뒷줄 왼쪽 둘째) 오른쪽으로 사위 장반석, 딸 김민정, 아들 김민찬, 김 부회장 아래는 부인 양영선씨. 가운데 트로피 든 이는 이기복-기정 쌍둥이 형제.

의성컬링센터에 모인 컬링 국가대표팀. 김경두 부회장(뒷줄 왼쪽 둘째) 오른쪽으로 사위 장반석, 딸 김민정, 아들 김민찬, 김 부회장 아래는 부인 양영선씨. 가운데 트로피 든 이는 이기복-기정 쌍둥이 형제.

동아대 대학원 시절 컬링을 처음 접한 김 부회장은 이 낯선 종목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해외 경기 영상을 입수해 규칙과 전략을 익혔고, 스톤(돌)과 브룸(브러시) 등 장비를 들여왔다. 컬링은 빙판 위에서 20㎏ 무게의 스톤을 손으로 밀어 보낸 뒤 브룸으로 빙면을 닦아 스톤을 하우스(동그란 표적) 중앙에 가깝게 붙이면 이기는 경기다. 경기 전 빙판에 물을 뿌리고 살짝 얼리면 표면에 패블(얼음알갱이)이 생기는데 브룸을 빙판에 빨리 마찰시키면 패블이 없어지면서 스톤의 속도와 방향이 바뀌게 된다. 1엔드당 8개씩의 스톤을 던지는데 하우스 중앙에 있는 상대 스톤을 쳐내기도 하고, 상대가 갈 길을 미리 막아 놓기도 한다. 당구의 쿠션처럼 스톤끼리 2차, 3차 충돌하는 묘미도 있다. 다양한 작전과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내에선 컬링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컬링을 할 수 있는 경기장도 없었다. 결국 김 부회장은 가족과 친구들을 끌어들였다. 대구실내빙상장 한쪽에 특수 페인트로 하우스를 그리고 주말 밤 11시부터 김 교수와 몇몇 가족이 모여 비의(秘義)를 치르듯 컬링 경기를 했다. 처음에 두 개만 그리기로 했다가 네 개를 그리는 바람에 관리자로부터 “여기가 컬링장이냐” 소리를 들으며 쫓겨날 뻔도 했다. 그러면 김 부회장이 “형님, 금방 지우겠습니다”며 사정사정했다. 그렇게 김 부회장의 딸과 아들, 그들의 친구·후배가 모여 클럽이 만들어졌고, 국제대회에도 출전하게 됐다.
 
김 부회장이 첫 국제대회 출전 당시 얘기를 해 줬다. “일은 벌여 놨는데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난 대학교수라 자리 비우기 힘들고. 그래서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리는 주니어 선수권에 인솔자로 와이프를 보내기로 했어요. 비행기로는 제주도밖에 안 가 본 사람이 영어가 되나, 얼굴이 노래지더라고요. 밥값이 모자라 캐나다 동포들이 김밥을 사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평창올림픽 여자 대표팀 5명은 모두 김씨라서 ‘팀 킴(Team Kim)’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여자팀 김민정 감독은 김 부회장의 딸이다. 김영미-경애는 자매고, 김은정과 김영미, 김선영과 김경애는 각각 의성여고 동기동창이다.  남자팀 김민찬은 김 부회장의 아들이다. 김창민과 오은수는 의성고 동문이고, 오은수는 김 부회장의 절친인 오세정 경북컬링협회 부회장의 아들이다. 오 부회장은 “동네 친구가 고군분투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일단 발을 담근 뒤에는 뺄 수가 없더라고요. 주말에 혼자 가기 뭐하니까 아들에 아내까지 데리고 갔죠. 운동 끝나고 같이 야식 먹고 헤어져서 오면 새벽 청소하는 아저씨를 만나곤 했지요”라고 지난 시절을 회고했다.
 
2006년 김 부회장은 고향인 의성에 국내 최초 컬링전용경기장을 건립하게 된다. 경상북도와 의성군을 설득해 14억원을 받아냈고 민자(民資)로 절반을 보탰다. 김 부회장은 컬링 본고장인 캐나다로 가서 아무나 안 보여 주는 경기장 도면을 어떻게든 입수해 참고하고, 컬링장 건설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누구든 쫓아가서 만났다. 그의 집념과 열정 덕에 의성컬링센터는 전문가들이 “전 세계 1500개 컬링장 중 상위 3% 안에 드는 수준”이라고 인정할 만큼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의성컬링센터는 의성이 컬링의 메카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컬링을 배운 선수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팀을 만들었다.
 
김 부회장은 “앞뒤 안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습니다. 젊을 때는 혈기로, 이거 나쁜 일 아닌데,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인데, 그러면 가족이 도와줘야지 하면서 끌고 갔죠. 지금은 내가 아이들을 과연 옳은 길로 끌어들였는가, 컬링 안 했다면 더 나은 길로 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고 말했다.
 
김민찬 선수는 “컬링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스포츠, 공부하면서도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아버지 손에 끌려 왔는데 하다 보니 정말 재미있어서 친구들을 불러들이게 됐죠. 저는 컬링을 하면서 청소년기에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주니어 대회 우승, 평창도 자신 있다”
컬링은 기술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엄청난 근력이 요구되는 종목도 아니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 의성에서는 지역 법조인과 중학생이 친선경기를 하기도 한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어 대학 진학과 진로 선택도 다양하다. 남자팀 임명섭 코치는 억대 연봉의 증권사 프라이비트 뱅커(PB) 출신이다.
 
대표팀 믹스더블 감독을 맡고 있는 장반석씨는 대학에서 국문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고, 학원을 운영하다가 장인의 요청을 받고 컬링을 도우러 들어왔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인 김민정 감독과 함께 컬링을 하면서 정을 키워 결혼에 골인했다.
장 감독은 “컬링연맹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길이었구나. 뭔가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되돌려 줄 게 없어서 결국 가족이 희생할 수밖에 없었구나’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결혼 승낙을 받으러 예비 장인을 찾아간 얘기를 들려줬다. “장인어른을 보고 ‘이 여자랑은 결혼해도 되겠구나’ 확신이 들었어요. 자기 인생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목표의식이 있는 분 밑에서 자란 딸이라면 절대 마이너스는 없겠구나 싶었죠. 하하.”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컬링팀은 10개국 중 8위(3승6패)를 했다. 평창올림픽 전망은 어떨까. 올해 2월 강릉컬링센터에서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로 열린 세계주니어컬링선수권에서 남자팀이 10개국 중 1위를 했다. 22세 이하 선수가 출전한 대회여서 현 대표선수인 이기정-기복(22) 쌍둥이 형제도 포함돼 있었다. 평창에서 첫 선을 보이는 믹스더블에 대해선 각국이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장반석 감독은 “우리는 일찌감치 믹스더블을 전략종목으로 삼고 3년째 이기정-장혜지 팀이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홈 링크라는 이점도 있는 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고 말했다.
 
김민찬 선수는 “평창 올림픽은 컬링이 가족 스포츠, 두뇌 스포츠로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전략을 잘 짜고 멘탈 관리만 잘 하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컬링 1세대인 우리가 컬링을 한 단계 도약시킬 찬스를 놓칠 순 없죠”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김경두 부회장은 ‘평창 이후’를 생각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땅만 확보해 준다면 공사비 40억∼50억원 내에서 컬링장을 지을 수 있는 노하우를 저희는 갖고 있습니다. 전국 주요 도시에 컬링장이 만들어지면 도시대항전, 연중리그 등을 통해 컬링을 대중 스포츠로 발전시키겠습니다.” 김 부회장의 꿈이 현실이 되는 날, ‘킴스 패밀리’도 역할을 끝내고 대한민국 컬링 역사 속으로 흩어지지 않을까.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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