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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성 자산 표현 막연, 어느 은행 계좌인지 정확히 쓰세요

중앙선데이 2017.06.11 00:43 535호 10면 지면보기
기자가 직접 쓴 유언장 첨삭받아 보니
유언장

유언장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유언장을 써 본 적은 없다. 그러기엔 이른 나이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주인공이나 재벌급 부자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본지 탐사기획 ‘혈연이 해체된다’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취재 과정에서 분석한 혈연 간 소송 판결문 204건 속에 등장하는 부모와 자녀들 상당수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수백억원대 자산가도 있었지만 그보단 평생을 아끼고 모아 집 한 채에 땅 조금, 예금 얼마 정도를 상속재산으로 남기고 간 중산층이 대부분이었다. 사망 후 자녀들 간 상속 분쟁을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였다. 만 38세, 비교적 젊은 나이의 기자가 자필 유언장을 미리 써보기로 한 것은. 유언장은 사후 분쟁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집도 여러 채면 주소까지 적어야
유류분 고려해 재산 공평히 나눠야
지장은 괜찮지만 사인은 분쟁 소지
다 쓴 유언장은 안전한 곳에 보관

하얀 A4용지 맨 위에 유언장 세 글자를 적고 나니 왠지 경건해졌다. 뭐부터 써야 할까. 법 조문을 찾아봤다. 자필 유언과 관련된 민법 조항은 간단하다.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해야 한다’이다. 일단 유언장 작성날짜를 ‘2017년 6월 1일’이라고 적었다. 이제 전문을 쓸 단계다. 물려줄 재산이 뭐가 있는지 떠올려봤다. 가장 큰 것은 역시 대출을 끼고 산 집이었다. 함께 일군 재산인 만큼 집을 아내에게 상속한다고 썼다. 집 안 물건 중 책은 장남과 올해 태어날 둘째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은행 예금은 자녀들에게 동등하게 나눠주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아내가 관리하도록 했다. 당부의 말까지 쓴 다음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 주소를 정확히 기재했다. 마지막 장엔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었다.
 
가족법 전문가에게 완성한 유언장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다. 나름 잘 썼다고 자신했지만 전문가 시각에서 보기엔 분쟁의 소지가 많았다. 사봉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물려주는 재산을 특정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은행 예금 등 현금성 자산’이라고 적었는데 어느 은행 예금인지 구별이 안 될 수 있다. 현금성 자산이라고만 쓰면 어디까지인지 범위를 놓고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 분쟁을 막기 위한 목적에 충실하려면 어느 은행 어느 계좌 수준으로 명확히 적어야 한다. 집도 한 채만 있으면 상관없는데 여러 채가 있다면 주소까지 적어서 특정하는 게 좋다.”
 
유류분을 고려하지 않은 점도 상황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 변희찬 법무법인세종 변호사는 “제일 큰 재산인 아파트를 배우자에게만 상속한 것은 유류분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자녀들에게 분배되는 나머지 재산이 법정상속분의 절반 이상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분쟁 방지를 위해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에 지장을 찍은 부분에 대해선 문제가 없다고 봤다. 지장도 판례상 도장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도장을 찍는다면 굳이 인감도장일 필요는 없다. 다만 도장 대신 사인만 했다면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아직 출생 전인 태아도 상속권이 인정되므로 유언장에 포함시켜도 무방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작성한 유언장은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사봉관 변호사는 “특별한 규정은 없다. 보통 집 안의 개인금고나 변호사 등 제3자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맡길 땐 자녀들에게 유언장의 존재를 미리 알려주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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