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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자식은 주지 마” 편파 유언, 이쁜 자식도 망친다

중앙선데이 2017.06.11 00:41 535호 10면 지면보기
[탐사기획] 혈연이 해체된다 <하> 있어도 문제, 없으면 더 큰 문제 유언장
일러스트 강일구

일러스트 강일구

‘나는 요즘 몸이 자꾸 부실한 관계로 급작스러운 일이 있을 때 내 아내와 장녀에게 재산 전부를 물려준다. 그리고 형제간 재산 분쟁을 하지 말 것을 유언한다’.
 

유언장 작성해도 분쟁 빈발
40.5%가 편파적 재산분배 때문

작성자 절반 사망 전 1년 내 작성
“멀쩡할 때 작성해야 분쟁 막아“

주소·날짜·날인 등 형식 따라야
유언장 없으면 더 큰 다툼 불러

1남3녀를 둔 김모씨가 2007년 작성한 자필 유언장 전문이다. 김씨는 자기 명의로 된 서울 동작구 소재 건물 두 채를 두고 자녀들이 다툴 것을 걱정해 일찌감치 유언장을 작성했다. 2012년엔 건물 한 채는 장녀, 나머지 한 채는 장남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 내용을 바꿨다. 1년 뒤 김씨는 사망했다. 하지만 김씨 사후 아무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둘째·셋째 딸은 “유언장이 위조됐다”며 유언 무효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는 지난해 “필적 감정 결과 김씨 자필이 맞다. 유언장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부모 사망 후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혈연 간 소송을 막아 줄 안전장치인 유언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특히 일부 자녀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는 등 편파적 내용의 유언장은 유류분 소송(법정 상속지분의 절반에 못 미치게 상속받은 이가 공동상속인을 상대로 부족한 부분을 돌려달라고 내는 소송)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중앙SUNDAY가 최근 1년여간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유언장 분쟁 관련 판결문 37건을 분석한 결과 분쟁의 40.5%가 형제자매 간 불공평한 재산 분배가 원인이 돼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황모씨가 2012년 남긴 유언장도 자녀 간 분쟁의 씨앗이 됐다. 그는 자필 유언장에 ‘전 재산은 딸에게 증여한다. 장남은 내 모든 인생을 희생해 키우고 지원했지만 늙은 나를 전혀 돌보지 않고 평생 용돈 한 번 준 적이 없으니 배신감과 함께 인생에 허무감을 느낀다. 내 재산을 한 푼도 상속할 수 없으니 이를 따르길 바란다’는 내용을 담았다. 2014년 황씨가 사망하자 장남 측은 곧바로 “치매로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유언장이 작성됐다”며 유언 무효 및 유류분 반환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는 지난해 말 “유언장은 유효하지만 유류분(법정 상속분의 절반)이 침해됐다. 물려받은 부동산 지분 6분의 1을 장남에게 넘기도록 하라”고 판결했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유언 내용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 전 재산을 한 명에게 몰아주거나 밉다고 누구한텐 절대 주지 않는다고 하면 자녀로선 승복하기 힘들다. 부모가 싸우지 말라고 당부했어도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유언 무효소송을 낸다. 안 되면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유류분 소송까지 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판단력 흐려졌을 때 작성하면 무효
유언장이 너무 늦은 시기에 작성되는 것도 분쟁 원인이다. 본지 조사에서 자녀들이 부모가 판단력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일부 자녀에게 이끌려 유언장을 작성했다며 소송을 낸 경우가 32.4%였다. 유언장 작성시기는 48.7%가 사망 전 1년 이내에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치매·노환 때문에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서 작성된 유언장이 많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대목이다.
 
3남2녀를 둔 박모씨가 그렇다. 박씨는 2012년 12월 장남과 함께 로펌을 방문해 경기도에 있는 1만1495㎡(약 3477평) 규모의 과수원과 임야를 장남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한 뒤 공증을 받았다. 유언 내용이 알려지자 다른 자녀들은 즉시 반발했다. 박씨가 치매로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2014년 박씨의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된 장녀는 장남을 상대로 유언 무효소송을 냈다. 장남은 “아버지의 진정한 의사가 맞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법 민사15부는 지난해 말 유언장 작성 넉 달 전 병원에 입원했던 박씨가 아내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심한 기억장애 증세를 보인 점 박씨가 치매 진단을 받아 약물 치료를 받고 있었던 점 박씨는 2006년부터 일관되게 재산을 5남매에게 골고루 나눠 주겠다는 의사를 밝혀 온 점 등을 근거로 유언장을 무효로 판단했다.
 
유언장 작성 시 민법에서 규정한 형식적 요건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유언 방식 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자필 유언은 유언 전문과 작성일자(연월일)·주소·이름을 모두 직접 쓴 뒤 도장(지장)을 찍어야 효력이 생긴다. 그간 대법원은 다른 요건을 다 제대로 갖췄어도 ‘2002년 12월’이라고만 적고 날짜를 쓰지 않은 경우 주소를 ‘암사동에서’라고만 적은 때 도장을 찍지 않은 유언장 등을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 권성연 법무법인 민산 대표변호사는 “가장 흔한 실수는 주소를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다. 불필요한 분쟁을 막기 위해선 법이 정한 요건을 엄격히 지키고 가급적 미리 유언장을 작성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 가장 안전
유언장을 제대로 못 쓰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유언장조차 없이 떠나는 경우다. 법정 상속분대로 상속이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그간 생전 증여로 불이익을 받은 공동상속인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지은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문화적 배경상 자녀들이 부모에게 미리 유언장을 써 놓으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왠지 불효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본인도 아직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미루다 보니 치매와 노환으로 병원에 누워 있게 되고 일부 자녀가 접근해 유언 내용을 불러 주고 부모가 끄덕거리는 걸로 유언장을 작성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 현 상태에선 분쟁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최대 300만원가량인 공증비용을 아끼려다 사후 자녀들 간 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의 조언이다.
 
“현 단계에서 공정증서 유언이 가장 안전한 것은 사실이다. 자녀 간 다툼은 막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방어 가능성은 높일 수 있다. 더 확실히 하려면 유언장을 만들기 전부터 후까지의 모습을 촬영해 파일로 보관하면 좋다. 판단력이 멀쩡한 상황에서 자유의지로 유언했다는 흔적은 많이 남겨 놓을수록 안전하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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