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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의 샐러리맨 코칭스쿨] 배신도, 불통도 ‘쌍방과실’ 대략난감한 교육팀장의 고집

중앙일보 2017.06.11 00:02
욕구·의도의 충돌 헤아리는 것이 소통의 시작... 내 욕구만 존중받길 원하면 불통은 필연


지난번 칼럼에서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알아차리면 소통의 길이 열린다고 했다.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알아주는지, 그 반대인지가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라고도 말했다. 이 말이 가진 의미를 온몸으로 겪었다.
 
M기업 팀장과 교육에 대한 미팅을 했다. M기업 니즈를 파악하고 난 후 강의 계획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해 보냈다. 대부분의 경우 니즈를 파악하고 콘텐트를 작성해 보내면, 그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그런데 뭔가 매끄럽지 못하고 힘들었다. 처음엔 이유를 잘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팀장은 교육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전문가가 아니었다.
 
교육 담당자들은 여러 스타일이 있다. 최상의 성과를 내는 스타일은 먼저 자기 요구사항을 전문가에게 정확하게 전달한다. 자기 니즈가 전달되었다고 생각되면,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다. 이때 이들의 진가가 발휘된다. 자신이 모르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전문가의 의견을 묻지만,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물어보고 난 후엔 믿고 맡긴다. 전문가와 담당자의 시너지가 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기 수준에 갇혀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외에는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존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한다. 이런저런 다른 것들을 알려줘도 막무가내다. 더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과 일하면 힘들다.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자기 확신의 덫에 걸려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략난감한 교육팀장의 고집
 
M기업 팀장은 이랬다. “예. 코치님 말씀이 뭔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 말대로 해주세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또 길게 설명했다. 그가 또 말했다. “예. 코치님이 전문가이시니까, 코치님 말씀이 맞겠지요. 그런데 제 말대로 해주세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평행선을 달리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M기업 팀장은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교육진행 경험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기가 모르는 내용은 포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에 포함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 자기를 먼저 납득시키라고 했다. 마치 초등학생이 대학교수에게 자기 논문을 허락받으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짜증이 났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
 
첫째 방법은 그 교육을 포기하는 거다. 근데 이건 몇 년 동안 함께 교육을 진행해 온 파트너 업체와의 관계 때문에 불가능하다. 파트너 업체와의 신뢰가 깨질 수 있다. 둘째는 팀장이 요구하는 대로 해주는 거다. 이것도 안 된다. 교육이 망가질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셋째 방법은 팀장에게 모든 걸 다 설명하는 거다. 이건 실제로 강의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린다. 이것도 난감하다.
 
결국 M기업 팀장에게 짜증을 냈다. 교육 담당자에게 짜증을 낸 것은 강의를 시작한 지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매일 아침 명상할 때마다 그 팀장이 생각났다.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문득 ‘팀장의 좋은 의도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자기도 정말 잘하고 싶어서 저렇게 하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팀장의 좋은 의도를 알아주는 것의 효과는 미미했다. 짜증이 잠시 멈추는 정도였다.
 
어떤 욕구가 충돌하는지 헤아려야
 
팀장의 선한 의도는 좋은 성과를 내는 거였지만, 실제로 나타난 그의 행동은 내겐 지옥이었다. ‘지옥에는 선한 의도만 있고, 천국에는 선한 행동이 있다’는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여태까지 난 머릿속으로만 이 말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알아주면 소통이 잘된다는 건 틀린 말인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더 깊이 알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팀장 덕분이다. 돌이켜보면, 난 전문가로서 존중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엄밀하게 말하면 팀장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라, 충족되지 못한 나의 욕구 때문에 짜증이 난 거다. 내 욕구가 너무 커서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 욕구는 잘못된 것인가? 그렇진 않다. 내 욕구와 상대방의 욕구가 서로 충돌했을 따름이다.
 
M기업 팀장과 나는 서로의 좋은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서로 존중하지 않았다. 서로가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무시한 거다. ‘좋은 의도에 대한 쌍방 무시’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서로 잘못한 경우가 많다. 이른바 ‘배신의 쌍방과실’이다. 팀장과 내 경우도 쌍방과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로서 좋은 교육성과를 내고 싶은 게 내 의도였다면, 담당자로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게 팀장의 의도였다. 그런데 우린 자신의 욕구만 봤고, 상대방의 욕구는 존중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알아준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만 존중받길 원했던 거다. 각자 의도는 좋았지만 내놓은 말과 행동은 서로 무시하는 거였다. 팀장은 고집을 부렸고, 난 짜증을 냈다. 옆에서 누군가가 봤으면 똑같은 사람으로 비쳐졌을 거다.
 
팀장의 좋은 의도와 내 의도가 충돌했을 때, 난 그의 좋은 의도를 존중하지 않았다. 전문가라는 것을 내세워서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무시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팀장만 억지를 부린 게 아니라, 나도 억지를 부린 거다. 이른바 쌍방억지다.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선 상대방의 좋은 의도만 알아선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상대방의 욕구는 무엇이고, 내 욕구는 뭔지, 어떤 욕구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욕구의 충돌’ ‘좋은 의도의 충돌’을 해결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소통을 하기 어렵다. 서로 잘 통하지 않을 경우, 우린 보통 불통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린다. 그러나 내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불통은 어느 일방의 잘못만이 아니다. 어떤 욕구가 충돌하고 있는지, 서로의 좋은 의도를 알아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좋은 의도가 있듯이, 상대방에게도 좋은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의 욕구는 충돌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욕구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지 살피는 게 소통의 시작이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불통이 된다. 불통은 쌍방과실이다.
 
김종명 - 리더십코칭연구소 대표,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다.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리더십과 코칭, 소통 등에 대해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보성어패럴 CEO, 한국리더십센터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리더 절대로 바쁘지 마라] [절대 설득하지 마라] [코칭방정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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