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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살코기로만 우려낸 육수 맑고 담백

중앙선데이 2017.06.11 00:02 535호 28면 지면보기
▶광화문국밥 주소: 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53 전화번호: 02-738-5688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2시 30분, 오후 5시 30분~밤 10시(일요일 휴무) 주차: 유료주차

▶광화문국밥 주소: 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53 전화번호: 02-738-5688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2시 30분, 오후 5시 30분~밤 10시(일요일 휴무) 주차: 유료주차

이 식당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팔할은 간판이 아닐까. 하얀 바탕에 검고 두툼하게 예서체 풍으로 쓰인 ‘광화문국밥’. 조선 세종시대 집현전 학사들이 명명했다는 ‘광화문’의 무게감이 ‘국밥’이라는 서민 음식과 무심하게 엮였다.
 

강혜란의 그 동네 이 맛집
<1> 광화문 국밥

간판의 단정함은 식당 테이블에서 만나는 수저 세트 포장에서 되풀이된다. 성냥갑처럼 빽빽한 수저통에서 뒤적뒤적 빼내는 게 아니라 1인용 ‘커틀러리’(테이블 식기구 세트)를 국밥집에서 받아드는 순간, 평범한 한 끼는 밥벌이에 대한 귀한 답례로 거듭난다.
 
박찬일(51) 주방장(겸 월급사장)이 국밥집을 ‘가오픈’(정식개업 전에 시범영업)한 것은 지난 3월 말. 지난해 9월 인근에 이탈리안 선술집 ‘광화문 몽로’를 개업한 지 6개월 만이다. 이 자리에 가게 임대가 나오지 않았으면 국밥집을 열지 않았을 거란다. 좁은 골목 뒤편, 널찍한 정동유료주차장 안쪽에 자리 잡은 식당은 주변 고층빌딩과 16차선 세종대로와 동떨어진 1970년대 시간대로 손님을 이끈다. 복고풍 간판에선 옛날 영화관도 떠오른다.
 
실제로 오래전 근처에 영화관이 있었다. 광화문국밥 초입, 지금 동화면세점이 있는 널찍한 모서리에 위치했던 국제극장이다. 경향신문 1985년 2월 6일 ‘국제극장이 내달 헐린다’는 기사에 따르면, 1956년 8월 3층 규모로 세워진 국제극장(설립 당시엔 국제문화관)은 30년간 총인원 200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인 광화문의 명물이었다. 신문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20대 이상 치고 한두 번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서린 곳”이다. 박 주방장의 기억 속에는 “영화 ‘ET’의 마지막 날, 마지막 회를 봤던 곳”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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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주방장이 까까머리 학생 때부터 이 일대를 활보하고 다닌 것은 학교(종암중)가 근처였던 데다 80년대 아버지 직장이 광화문에 있어서였다. 30여 년 만에 광화문에 국밥집을 낸 것도 수구초심(首丘初心)만이 아니라 ‘상권’을 고려한 결과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관공서와 각종 사무실이 밀집해 있다.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은 빠듯한 점심시간을 쪼개 끼니를 해결하고 커피까지 마신다.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보수적인, 간편한 음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이들 공무원·언론인·외국계 회사 엘리트들은 일정한 취향과 기호가 있다. 인근 서촌·인사동 일대에서 흘러오는 식객들도 꽤 된다. 말하자면 이 동네의 주축은 압구정·청담동의 혁신적인 미식가들도 아니고 종로 뒷골목만 고집하는 전통주의자도 아니다. “특이한 걸 원하면서도 가성비를 따지는, 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열려 있는” 손님들. 그런 동네이기에 광화문국밥이 탄생할 수 있었다.
 
메인은 일단 돼지국밥이다. 그런데 뼈를 우린 뽀얀 국물이 아니라 살코기로만 말갛게 육수를 냈다. 국산돼지 중에 고급품종으로 자리 잡은 버크셔K(전북 남원 생산) 앞·뒷다리살이 주축이다. 메뉴 개발에 도움을 준 식재료전문가 김진영 ‘여행자의 식탁’ 대표 말에 따르면 버크셔K는 여느 돼지품종과 달리 토종닭에 함유된 것과 비슷한 불포화지방과 아미노산이 많단다. 국밥에서 닭국물 맛이 나는 이유다. 때문에 육수 내는데 닭을 쓰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는데 박 주방장은 정색하며 도리질했다. “이 맛을 내려면 닭을 얼마나 우려야 하겠느냐. 그리고 남는 닭고기는 어디 쓴단 말이냐.” 그만큼 국물이 맑고 담백하다.
 
또 다른 것은 온도. 혀 천장이 델 정도로 펄펄 끓이는 뚝배기 국밥 일색인데 여기선 하얀 사기 그릇에 담겨나와 첫술부터 부드럽게 넘어간다. “뜨거우면 맛을 못 느끼기 때문에 펄펄 끓이는 국밥은 대체로 짜요. 염도와 맛을 온전히 느끼게끔 80도에 맞춰 냅니다.” 토렴하지 않고 별도로 나오는 밥은 고시히카리 품종을 쓴다. 국물에 말아도 밥알의 식감이 살아있다. 다만 육수를 내고 진이 빠져 퍽퍽해진 살코기는 씹는 맛을 두고 호불호가 갈린다.
 
박 주방장은 책을 여럿 내기도 한 ‘글 쓰는 셰프’다. 한국의 노포(老鋪)들을 발품 팔아 기록한 『백년 식당』이라는 책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한 시대가 입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백년 가까이 이어져온 노포의 한결 같은 맛에 대한 찬사이리라. 광화문국밥을 뜨면서도 한 시대의 맛을 경험한다. 다만 그것은 대대손손 노부(老婦)의 손끝으로 전해져온 ‘그리움’의 맛이 아니라, 오랜 전통과 젊은 입맛을 교배시킨 ‘새로움’의 맛이다. 그 자신이 미식가이면서 “남들과 이런 국밥을 나눠먹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박찬일식 국밥이다. 뜨겁지 않지만 오래도록 감도는 그 결기를 씹으며 문을 나섰다. 누군가의 일터에서 한 끼를 먹고 광화문을 지나 내 일터로 되돌아간다. ●
 
 
글·사진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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