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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수 몰라 집 확인 허탕 … ‘반쪽 주소’에 길 잃은 복지

중앙일보 2017.06.09 02:11 종합 10면 지면보기
동작구는 반쪽 주소를 가진 가구에 상세 주소를 부여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동작구청 최승민 주임(왼쪽)과 최희숙 부동산 정책팀장이 다가구주택 대문 옆에 상세 주소 안내판을 붙이고 있다. [김춘식 기자]

동작구는 반쪽 주소를 가진 가구에 상세 주소를 부여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동작구청 최승민 주임(왼쪽)과 최희숙 부동산 정책팀장이 다가구주택 대문 옆에 상세 주소 안내판을 붙이고 있다. [김춘식 기자]

“혼자 사는 이복순(82·가명) 할머니가 매일 나오던 경로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원룸·고시원 등 단독주택으로 분류
주민등본에 상세주소 기재란 없어
독거 노인 위급해도 집 찾기 힘들어
복지사들 일일이 방문 노크해 확인
집 주인 동의 받으면 상세주소 가능
임대소득 드러날까 봐 신청 꺼려

서울 동작소방서에 근무하는 최영서(31) 소방관은 지난해 9월 이런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하지만 할머니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경로당에서 불러준 주소에는 층이나 호수가 없었다. 그런데 도착한 주소지는 일곱 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다가구주택이었다. 최 소방관은 한 집 한 집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거주자를 확인하던 중 20여 분이 지나 현관문으로 새어 나오는 이 할머니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그는 “문을 뜯고 들어가 보니 바닥에 미끄러져 고관절이 골절된 이 할머니가 반나절을 마룻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며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면 주소가 구분되지 않는 다가구주택이 많아 현장에서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1동에서 복지 플래너로 근무하는 기자연씨는 최근 기초생활수급자인 유한익(가명·87)씨 집에 방문했다. 가스·전기세 감면 등 사회 복지 서비스를 안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등본에 기재된 주소를 따라 방문한 곳은 열 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3층짜리 다가구주택이었다. 열 가구 모두 동·호수 구분 없이 주소가 같았다. 기씨는 일일이 방문을 두드리고도 끝내 유씨를 찾지 못했다. 기씨는 “집을 찾지 못해 입구에 안내문만 붙여 놓고 가는 일이 흔하다. 직접 만난다고 하더라도 가스비와 전기세 등 면제 혜택을 받으려면 도시가스 측에서 명확한 상세 주소를 요구하는데, 그것을 기입하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처럼 주민등록 주소상 건물의 지번까지만 적혀 있고 상세 주소(건물의 동·층·호)가 적혀 있지 않은 ‘반쪽 주소’ 문제가 적지 않다. 서울시와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반쪽 주소 가구는 전국에 42만5787가구(지난해 12월 기준)다. 현행 건축법상 원룸이나 고시원 등의 다중·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으로 분류된다. 아파트나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과 달리 단독주택은 하나의 가구(혹은 소유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건축물 대장에 ‘동·층·호’를 기재하는 칸 자체가 없다. 전입자가 ‘동·층·호’를 기재하려 해도 주민등록등본에는 입력되지 않는다.
 
유보화 서울시 자치행정과장은 “반쪽 주소 거주자 대부분이 고시원이나 원룸 등 다가구·다중주택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이나 고시생 등 취약계층인 경우가 많다”며 “반쪽 주소로는 이들의 거주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 긴급 구호가 지연되거나 공공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세금고지서 제때 못 받아 체납자 되기도
 
반쪽 주소로 인한 불편은 취약계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서울 상도동에 사는 김용석(가명·54)씨는 체납고지서를 받았다. 지난해 부과된 자동차세 25만원가량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30만원 미만의 지방세 고지서 등은 현행법상 일반우편으로 배달된다. 따라서 동·층·호가 구분되지 않는 다가구주택에선 우편물이 주인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서울 동작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다가구주택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에 상세 주소를 부여하고 있다. 건물의 소유자나 임차인이 구청에 신청하면 현장조사를 거쳐 신청인의 주민등록등본에 동·층·호를 기입해 준다. 올해 6월부터 집주인의 동의하에 구청장이 직권으로 상세 주소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로명주소법이 개정됐다. 다만 임대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날 것을 염려하는 집주인이 임차인의 상세 주소 서비스 신청을 꺼려 하고 있다는 점은 한계다.
 
원룸·고시텔 등 다중주택을 단독주택이 아닌 공동주택으로 분류해 동·층·호를 기재하도록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하지만 건축 승인 조건 등을 규정한 현행 건축법을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강성희 동작구청 부동산정보팀장은 “현행 건축법을 모두 고치는 건 어렵지만 각 자치단체가 집주인의 허락 없이도 의무적으로 동·층·호 상세 주소를 부여하도록 도로명주소법을 개정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행정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권리 보호를 위해 상세 주소 부여 서비스 안내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서준석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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