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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주소'를 아시나요...동 호수 없는 주소 전국에 42만 가구

중앙일보 2017.06.08 11:22
서울 동작구는 고시원이나 다가구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가운데 '동,층,호'가 없는 반쪽자리 주소를 가진 가구에 상세 주소를 부여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왼쪽부터 동작구청 최승민 주임, 최희숙 부동산 정책팀장. 김춘식 기자

서울 동작구는 고시원이나 다가구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가운데 '동,층,호'가 없는 반쪽자리 주소를 가진 가구에 상세 주소를 부여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왼쪽부터 동작구청 최승민 주임, 최희숙 부동산 정책팀장. 김춘식 기자

“혼자사는 이복순(82ㆍ가명) 할머니가 매일 나오던 경로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 동작소방서에 근무하는 최영서(31) 소방관은 지난해 9월 이런 신고를 받았다. 구내 한 경로당에서 온 신고에 곧바로 상도동 이복순 할머니의 집으로 출동했다. 

주민등록등본부상 동이나 층, 호수가 구분 안되는 가구 전국에 42만5787가구
긴급구조·복지 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여
원룸·고시텔 등 다가구·다중주택에 거주하는 독거노인이나 청년 등이 대부분 이런 경우에 해당
다가구·다중주택은 건축법상 단독 주택에 해당하기 때문

 
하지만 할머니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경로당에서 불러준 주소에는 층이나 호수가 없었다. 그런데 도착한 주소지는 일곱 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다가구 주택이었다.
 
일곱 가구는 주민등록등본상 별도의 동ㆍ호수 표기가 없이 같은 주소로만 기재돼 있었다. 결국 최 소방관은 한 집 한 집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거주자를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최 소방관이 이 할머니를 발견한 건 현장에 도착한지 20여 분이 지난 뒤였다. 그나마도 현관문으로 새어나오는 이 할머니의 신음소리를 최 소방관이 놓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최 소방관은 “문을 뜯고 들어가보니 바닥에 미끄러져 고관절이 골절된 이 할머니는 반나절을 마루바닥에 쓰러진채 신음하고 있었다”며 “신고를 받고 출동해보면 주소가 구분되지 않는 다가구 주택이 많아 현장에서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1동에서 복지 플래너로 근무하는 기자연씨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유한익(가명ㆍ87)씨 집에 방문했다. 가스ㆍ전기세 감면등 사회 복지 서비스를 안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등본에 기재된 주소를 따라 방문한 곳은 열 가구가 모여살고 있는 3층 짜리 다가구 주택이었다. 열 가구 모두 동ㆍ호수 구분 없이 주소가 같았다. 기씨는 일일이 방문을 두드리고도 끝내 유씨를 찾지 못했다. 기씨는 “사회복지서비스를 안나하러 지 직접 나갔다가 집을 찾지 못해 입구에 안내문만 붙여 놓고 가는 일을 흔하다. 직접 만난다고 하더라도 가스비와 전기세 등 면제 혜택을 받으려면 명확한 상세주소를 기입해야하는 데 , 그것을 넣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주민등록주소 상 건물의 지번까지만 적혀있고 상세주소(건물의 동ㆍ층ㆍ호)가 적혀있지 않은 ‘반쪽 주소’ 문제가 적지 않다. 서울시와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반쪽 주소 가구는 전국에 42만5787가구(지난해 12월기준)에 달한다.
 
반쪽 주소가 존재하는 건 현행 건축법상 원룸이나 고시원 등의 다중ㆍ다가구 주택은 단독주택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은 하나의 가구(혹은 소유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아파트나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과 달리 건축물 대장에 ‘동ㆍ층ㆍ호’를 기재하는 칸 자체가 없다. 따라서 이곳에 전입하는 사람들이 전입시 해당 기초지방자치단체에 ‘동ㆍ층ㆍ호’를 기재한다고 하더라도 주민등록등본에는 입력되지 않는다.
 
유보화 서울시 자치행정과장은 “반쪽 주소 거주자 대부분이 고시원이나 원룸 등 다가구ㆍ다중 주택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이나 고시생 등 취약 계층인 경우가 많다”며 “반쪽 주소로는 이들의 거주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 긴급 구호가 지연되거나 공공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쪽 주소로 인한 불편은 취약 계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서울 상도동 사는 김용석(가명ㆍ54)씨는 체납고지서를 받았다. 지난해 부과된 자동차세 25만원 가량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30만원 미만의 지방세 고지서 등은 현행법상 일반우편으로 배달된다. 따라서 동ㆍ층ㆍ호가 구분되지 않는 다가구 주택에 우편물이 배달되면 같은 주소를 가지고 있는 다른 집으로 배송되는 등 수신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늦게나마 반쪽 주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나서고 있다. 서울 동작구는 지난 2013년부터 다가구 주택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에 상세주소 부여하고 있다. 건물의 소유자나 임차인이 구청에 신청하면 현장 조사를 거쳐 신청인의 주민등록등본에 동ㆍ층ㆍ호를 기입해준다. 올해 6월부터는 집주인의 동의하에 구청장이 직권으로 상세주소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로명주소법이 개정됐다. 다만 임대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날 것을 염려하는 집 주인이 임차인의 상세주소 서비스 신청을 꺼려하고 있다는 점은 한계다.
 
해결책이 있긴 하다. 원룸·고시텔 등 다중주택을 단독주택이 아닌 공동주택으로 분류해 동·층·호를 기재하도록 하면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 승인 조건 등을 규정한 현행 건축법을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강성희 동작구청 부동산정보팀장은 "현행 건축법을 모두 고치는 건 어렵지만 각 자치단체가 집주인의 허락 없이도 의무적으로 동·층·호 상세주소를 부여하도록 도로명주소법을 개정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행정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권리 보호를 위해 상세주소 부여 서비스 안내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서준석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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