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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대 성추행 사건으로 본 동성 성희롱 논란

중앙일보 2017.06.08 01:00
서울대 공대에서 동성 간에 “모텔에 가자”며 강제적으로 신체를 만지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대 공대 학생회는 해당 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그 결과를 지난 5일 온라인상에 공개했다.  
 
서울대학교 정문. [중앙포토]

서울대학교 정문. [중앙포토]

학생회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해자 A씨와 피해자 B씨는 둘 다 공대 학부생으로 같은 단체에 소속된 사이다. A씨는 지난 3월 새벽 B씨에게 “술자리로 나와 달라” 여러 차례 부탁하고 술자리에 나온 B씨에게 “동성을 좋아하느냐”며 성적 지향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B씨가 명확하게 답하지 않자 A씨는 B씨에게 “좋아한다”고 했다. B씨가 이를 단순한 선후배 간 호감 표시로 여겨 “나도 좋다”고 하자 A씨는 연인 관계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B씨가 거절했지만 A씨는 술집 밖에서 B씨에게 여러 차례 강제적인 신체 접촉을 하고 “모텔이나 자취방에 가자”고 요구했다.  

강제로 신체 접촉하고 "모텔 가자"
학교, 직장에서 동성 간 성추행·성희롱 빈번
전문가들 "동성애 혐오로 연결돼선 안 돼"

 
학생회는 사건을 전해들은 B씨의 지인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이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 B씨는 조사 과정에서 “사건 이후 수치심을 느끼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시간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술에 많이 취해 있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도 “B씨의 진술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학생회 측은 보고서에서 “B씨가 신체 접촉 요구를 거절했음에도 A씨가 계속 종용하고 강제적으로 신체 접촉을 한 것은 성추행에 해당한다. 또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모텔 등으로 함께 가자고 반복해 요구한 점, 상대의 의사에 반해 성적인 주제로 대화를 계속한 것은 성적 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회 측은 진상조사보고서를 공개한 것에 대해 “당사자의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에 관련 없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된 사건은 당사자가 원한다면 공론화 해야 한다”며 “동성 간에 이루어지는 언행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 같은 성별을 가진 다른 사람이 나의 고유한 특성까지 같을 것이라 일반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서을 냈다.  
 (서울대 공대 진상조사보고서: http://bit.ly/공특위_보고서
서울대 공대 입장서: http://bit.ly/공특위_입장서)
 
서울대 공대 학생회가 SNS에 공개한 사건에 대한 입장서. 학생회는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학생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작성된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사건 당사자에 대한 성별 언급이 없었다. 이 보고서는 학내에서 처음으로 성폭력 당사자들의 성별이 같음을 명시하는 보고서"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캡처]

서울대 공대 학생회가 SNS에 공개한 사건에 대한 입장서. 학생회는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학생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작성된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사건 당사자에 대한 성별 언급이 없었다. 이 보고서는 학내에서 처음으로 성폭력 당사자들의 성별이 같음을 명시하는 보고서"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캡처]

학생회는 "사건이 학생사회 내에서 처리되기를 바란다"는 당사자의 뜻에 따라 별도의 고발 조치 등은 취하지 않을 계획이다. 학생회 측은 “현재는 가해자에게 피해자와의 공간 분리 요청만 한 상태로, 추가 조치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건국대, 연세대에서도 … 
최근 동성간 성추행 사례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월 법원은 건국대 MT에서 남선배들이 잠든 남후배의 성기 주변에 치약을 바른 ‘치약 장난’ 사건에 대해 성추행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2015년 연세대에서는 한 남자 대학원생이 “1년 간 상습적으로 내 신체 일부를 만졌다”며 같은 연구실 소속 남자 선배를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성교육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나는 당당하며,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입장을 보이자, 피해자는 자살을 시도했다. 
 
◇직장에서도, 여성간에도 …
직장에서의 동성 간 성추행도 빈번하다. 지난해에는 40대 남성 팀장이 30대 남성 직원에게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보자”며 배와 가슴을 만진 일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성희롱 사건(진정 사건)으로 접수됐다. 
 
여성끼리도 예외는 아니다. 2015년에는 여성 팀장이 같은 팀의 여성 직원에게 목의 아토피 자국을 보고 “어제 밤 남자랑 뭐했냐. 목에 이게 뭐냐”는 등의 말을 해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손해배상금으로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직장에서의 동성 간 성희롱 실태는 통계로도 나와있다. 지난 달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직장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 성희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중 29%(남성 25%, 여성 34.4%)가 주 1회 이상 직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 특히 남성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 성비는 남성 86.4%, 여성 13.6%로 나타나, 남성이 동성으로부터 당하는 성희롱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형으로는 ‘본인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음담패설’, ‘음란물을 보여주는 행위’, ‘성관계 강요 및 회유’ 등이 많았다. 여성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 성비는 남성 78%, 여성 22%였다.
 
◇“동성애 혐오로 연결돼서는 안 돼”
점점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 가고 있는 동성 간 성추행·성희롱에 대해 전문가들은 ‘동성애 혐오로 번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진원 연구교수(고려대 인권센터)는 “남녀 간 성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이성애자를 가해자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처럼, 동성 간 성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동성애자를 경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박찬성 변호사(서울대 인권센터)는 “최근 통계에 잡히는 동성 간 성희롱 사건 중 다수는 그간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장난, 또는 농담처럼 동성에게 해 오던 성적 행동이 문제화된 것”이라며 “동성 간 성희롱은 동성애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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