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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혈압약 복용 때 자몽주스 마시면 헛일 … 자기 먹을 약 남 주는 건 독약 주는 셈

중앙일보 2017.06.07 01:09 종합 19면 지면보기
손은선 약사의 건강비타민 
수년 전 40대 여성 환자가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호흡 곤란의 원인은 환자가 허리에 붙인 작은 ‘파스’였다. 얼마 전 환자의 시어머니가 암 치료를 받고 퇴원해 “효과 좋은 파스라며 줬다”고 했다.
 
하지만 이 약은 일반 파스가 아니었다. 암 환자의 통증 조절을 위해 피부에 붙이는 매우 강력한 진통제였다. 병원에서는 암 환자를 포함한 중증 질환자에게 퇴원을 앞두고 약 복용부터 주의해야 할 음식까지 철저히 교육한다. 특히 자신이 처방받은 약은 절대 가족에게 나눠주지 말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한다. 하지만 환자들이 약을 잘못 사용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처방 지시대로 약을 잘 먹는 것을 ‘복약 순응도’라고 한다. 순응도가 낮으면 목표한 효과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홍모(71·경기도 일산)씨는 임의대로 처방약을 끊었다가 응급실에 실려 온 사례다. 혈전이 폐동맥을 막아(폐동맥 색전증) 긴급히 혈관 확장 수술을 진행했다. 홍씨가 임의대로 끊은 약은 혈전 방지제(와파린)였다. 이전에 병원 왔을 때 검사에서 혈전이 발견됐기 때문에 중요 혈관이 막히는 것을 예방하려고 혈전 방지제를 처방했다. 홍씨에게 “왜 약을 안 먹었느냐”고 물었다. 홍씨는 “와파린이 독약이라고 들었다. 또 와파린을 먹으면 시금치·된장 같은 음식을 못 먹고 혈액검사를 하기 위해 자주 병원에 가야 해 귀찮았다”며 “약 대신 혈액순환에 좋은 오메가3, 은행잎 제제, 종합비타민을 먹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왜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복약지도를 따르지 않을까. 첫째는 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다. 전립샘암 수술을 받은 정모(81·서울 종로구)씨에게는 진통 효과가 오래가는 약을 처방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통증 때문에 힘들다며 하소연을 해 왔다. 처방 받은 알약을 가루로 빻아 먹었다고 한다. 정씨가 받은 알약은 서서히 녹으면서 진통 효과가 지속되도록 특별히 설계된 약이다. 가루로 빻는 바람에 약효 지속시간이 너무 짧아져 통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 외에 증상이 완화됐다고 스스로 판단해 약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도 흔하다.
 
둘째, 약 복용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펴낸 2013년 한국의료패널 심층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당뇨병 환자의 84.7%, 고혈압 환자의 81.2%, 기분장애 환자의 58.5%가 그 이유를 ‘복용을 잊어서’라고 답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노인 환자에게 흔하다. 한 달분 약을 사서 먹었는데 한 달 뒤에 약이 꽤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노인 환자들이 규칙적으로 정해진 약물을 복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복용 사항을 달력에 표시하거나 복용 요일이 적힌 약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최근에는 복용 시간 알람용 스마트폰 앱도 나온다.
 
셋째, 관심 부족이다. 환자 교육 프로그램뿐 아니라 매스컴을 통해 수없이 강조되는데도 많은 사람이 반복하는 잘못은 자몽주스를 약과 함께 먹는 것이다. 자몽주스는 약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식품이다. 고혈압·고지혈증 약을 포함한 많은 약은 자몽주스와 함께 먹으면 안 된다. 자몽에 많이 든 성분(푸라노쿠마린) 때문이다. 이 성분은 약을 대사시키는 효소(CYP3A4)를 억제해 약이 체내에서 잘 분해되지 않도록 한다. 자몽의 효소 억제 작용은 장시간 이어진다.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가급적 자몽주스를 먹지 않는 게 좋다.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도 잘못 복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 두통약을 남용한 회사원 김모(25)씨는 심한 울렁거림과 구토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혈액검사를 했더니 간 수치가 정상 범위의 30배였다. 그는 한 달 전부터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시로 두통이 왔고 그때마다 아세트아미노펜(상품명 타이레놀)을 복용했다고 한다. 사흘 전부터는 밤샘 작업을 하느라 하루에 20~30알씩 먹었다고 했다. 그는 “안전한 약이라 많이 먹어도 괜찮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프랑스 미디피레네 지역 약물감시센터에서 2008~2014년에 보고된 부작용 사례를 분석했는데 1만2000여 건 중 일반의약품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한 비율은 1.3%였다. 이 중 4분의 3가량인 122건은 입원 치료가 필요하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부작용이었다.  
 
◆손은선 세브란스병원 약무국장·약사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동국대 약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연세대 약학대학 겸임교수, 세브란스병원 약무국 국장,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분쟁조정위원회 위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위원회 위원, 한국병원약사회 부회장
 
손은선 세브란스병원 약무국장·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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