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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청소노동자 휴게실 리모델링한 대학생들의 '은화과 프로젝트'

중앙일보 2017.06.06 17:10
"유령처럼 지내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1년 전 홍익대 총학생회가 축제 기간 중 마련한 교내 청소노동자들과의 식사 자리. 한 청소노동자가 이렇게 감사 표시를 했다. 그들은 자신을 학교 안의 '유령'이라고 표현했다.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시간은 일부러 피해다니고, 잠시 쉴 때는 대걸레 등 청소 도구를 넣어놓는 화장실 내 작은 공간에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앉았다.  
 
스스로를 아무렇지 않게 유령이라 부르는 그들을 보며 학생들은 생각했다. '청소노동자 분들은 학교의 유령이 아닌,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숨은 꽃들'이라고. 
한 대학 청소노동자가  강의실을 청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 대학 청소노동자가  강의실을 청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4월 홍익대 총학생회와 해비타트 동아리, 그리고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꾸린 '은화과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청소노동자들의 휴게 공간을 학생들이 직접 리모델링 하고 나아가 이들의 노동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게 프로젝트의 결성 취지다. 
 
◇‘은화과’를 아시나요
은화과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이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은화과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이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은화과'의 ‘은’은 숨을 '은(隱)'자다. 이름을 지은 김지선(20)씨의 설명은 이렇다.
 
"'무화과'는 '꽃이 없는 과일'이라고 해서 무화과(無花果)래요. 그런데 사실 꽃이 없는 게 아니라 열매 안에 숨어있는 거거든요. 보이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거죠. 저희는 우리 학교 청소노동자 분들이 학교의 무화과 꽃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홍익대에는 130여 명의 청소노동자가 있다. 현재 각 건물에는 이들의 휴게실이 마련돼 있다. 어떤 휴게실은 높이가 165㎝도 채 되지 않아 허리 한 번 펴고 일어나는 게 힘들다. 또 다른 휴게실은 지하 깊숙한 곳에 있어 어둡고 늘 퀴퀴한 냄새가 났다. 대학에 직접 고용된 게 아니라 청소 대행업체에 간접 고용돼 있어서 열악한 환경에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못했다.
공사중인 청소노동자 휴게실.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공사중인 청소노동자 휴게실.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을 모으다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알게된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휴게실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다. 총학생회 차원에서 사업 취지를 알리고 재학생들을 상대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두 개의 휴게실을 개선했다. 이수환(25) 홍익대 부총학생회장은 "어머님(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을 '어머님'이라고 부른다)들이 너무 기뻐하시고 재학생들 반응도 좋아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은화과 프로젝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올해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돈을 모았다. 지난달 27~28일 휴게실 두 곳에서 공사가 진행됐다.
 
◇축제가 끝나고 벽지를 붙이다
"공사 기간을 일부러 축제(지난달 17~19일) 일주일 뒤로 잡았어요. 축제 때는 학교가 많이 더러워져서 어머님들이 제일 바쁠 때쟎아요. 묵묵히 청소해주신 어머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휴게실 공사로 전하고 싶었어요. 축제 때는 사흘 간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좀 더 깨끗하게 시설을 쓰자'는 교내 캠페인도 벌였어요."(이수환 부총학생회장)
 
학생들은 당장 벌레가 뚝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회색 빛 높은 천장에는 짙은 브라운 계열의 페인트를 칠했다. 천장이 낮아보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전기장판 대신 온돌매트를 설치하고, 좀 더 많은 분이 쉴 수 있게 평상을 넓혔어요. 밝은 분위기가 나도록 페인트를 칠하고, 단열 벽지 붙이고…. 사실 전문업자가 공사를 했다면 더 잘했을텐데, 저희가 하나 하나 맡아서 하다보니 어설픈 부분도 많습니다.” 은화과 프로젝트 멤버인 채종한(24) 홍익대 해비타트 동아리 회장은 미안함을 나타냈지만 ‘어머님’들은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학교식당 식권을 사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휴게실. 리모델링 전(위)과 후.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휴게실. 리모델링 전(위)과 후.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span style="""""""""""""""""""""""""""""letter-spacing:"""""""""""""""""""""""""""" -0.245px;"="""""""""""""""""""""""""""""""""""""""""""""""""""""""">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휴게실. 리모델링 전(왼쪽)과 후.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span>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휴게실. 리모델링 전(왼쪽)과 후.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공부할 시간도 모자랄 텐데…우리 딸·아들 고마워!"
재학생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공기청정기와 냉장고, 벽걸이 에어컨 등을 샀다. 청소노동자들이 실제 생활하며 꼭 필요했던 편의용품이었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청소노동자 김모(49)씨는 "학교가 못해주는 걸 공부할 시간도 모자랄 학생들이 대신 해줘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지금도 학생들이 종종 휴게실에 들러서 필요한 거 없으시냐고 묻는데 이제 정말 우리 자식들 같다"고 말했다.
은화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홍익대 학생들과 청소노동자들.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은화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홍익대 학생들과 청소노동자들.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은화과 프로젝트 멤버들은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발성이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 확장시키고 싶어서다. 프로젝트 일원인 민동인(24)씨는 "프로젝트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에서 어머님들을 마주치면 괜히 민망해 피해 다녔다. 이제 그런 거리감이 사라져서 먼저 인사도 드린다"고 말했다. 이 부총학생회장은 "은화과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이어져서 학교 구성원들이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등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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