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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극장 애니메이션 '홍길동' 만든 신동헌 화백 별세

중앙일보 2017.06.06 16:16
신동헌 감독과 홍길동[사진 한국애니메이션학회]

신동헌 감독과 홍길동[사진 한국애니메이션학회]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1967년)을 연출한 신동헌 화백이 6일 오전 별세했다. 90세. 역시 만화가인 동생 고 신동우 화백 (1936~94)과 함께 1950~1970년대 한국 만화·애니메이션계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한국애니메이션 학회는 '홍길동' 탄생 40주년을 맞은 지난 2007년 ‘신동헌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1927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시절 서울 명동에서 초상화를 그려 팔다 시사만화 '코주부'를 연재하던 김용환 화백을 만나면서 만화 공부를 시작했다. 1947년 만화 '스티브의 모험'으로 데뷔한 후 시사만평, 명랑만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만화를 그렸다. 주요 일간지와 잡지 연재를 거쳐, 1950년대 후반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팬'을 시작으로 해외 애니메이션들이 국내에 들어와 흥행하자 해외 전문 서적 등을 읽으며 애니메이션 제작을 독학했다. 이후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진로소주 광고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 광고를 제작했다. 신동헌 프로덕션을 세워 광고제작자로도 변신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원로, 90세 나이로 별세
"한국 초기 만화의 기틀 잡으신 분"

 1967년 고인이 감독한 '홍길동'은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이었다. 동생 신동우 화백이 소년 조선일보에 1966년부터 연재한 만화 '풍운아 홍길동'이 원작이다. 당시 신문광고에 따르면 국내 영화 평균 제작비의 10배 규모인 5400만원이 들고, 12만5300장의 그림이 삽입됐다. 서울 대한극장 등 전국 7개 극장에서 개봉했으며 개봉 4일 만에 10만 명, 총 38만 명의 관객을 끌어 크게 흥행했다. '홍길동'은 같은 해 제6회 대종상 문화영화작품상(비극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만화평론가인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홍길동'을 연출할 당시 재료가 부족해 미군에서 구한 필름을 양잿물로 씻어 재활용했다는 일화까지 있다"며 "해방 이후 불모지였던 한국 초기 만화의 기틀을 잡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후 고인은 '홍길동'의 조연을 주인공으로 한 '호피와 차돌바위(1967)'을 연출한 후에는 국내의 열악한 제작환경에 실망, 한국을 떠나 일본·미국·캐나다 등지의 애니메이션 작업에 관계했다. 1995년에는 김민종·채시라가 주제곡을 부르고, 신현준·노영심이 목소리 배역으로 참가한 '돌아온 영웅 홍길동'을 감독했다. 
1980년대 이후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면서는 음악 관련 서적을 내고 클래식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앞 좌석에 앉아 연주자들을 그려 선물하기도 했고,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는 만화계 행사에 참석했다. 2001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공로상, 2002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공로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신경섭(애니메이션 사업), 차남 신인섭(전 광고제작자), 삼남 신양섭(영화학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은 9일 오전 7시, 장례는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대전공원묘지.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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