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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넘었지만 ‘지공거사’는 싫어 … 지하철 돈 내는 노인들

중앙일보 2017.06.06 01:36 종합 2면 지면보기
공기업을 다니다 정년퇴직한 정봉진(67)씨는 만 65세가 된 지난해 2월부터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게 됐다. 이른바 ‘지공거사(地空居士·지하철 무임승차 노인)’가 된 것이다. 정씨는 처음 한두 번은 별생각 없이 지하철을 공짜로 탔지만 이내 마음이 불편했다.
 

김황식 전 총리 등 유료 탑승 앞장
“경제적 여유 있다면 무료 이용 곤란”
대한노인회 “노인 연령 70세로 하자”
급속한 노령화에 지하철 큰 적자
작년 무임수송 4억명 5381억 손실
전문가들 “나이 따른 할인제 도입을”

그는 “65세를 넘으면 지하철을 무료 이용하게 해주는 정책은 고맙지만 이게 지하철 운영 회사들의 중요한 적자 요인이란 얘기를 들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요금이 다른 지하철보다 비싼 신분당선이나 경강선에도 무료 노인 승객이 일반 승객보다 많은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도 했다.
 
그래서 정씨는 매달 3만원씩을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한 달에 공짜로 타는 지하철 요금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굳이 무료로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요금을 내고 타거나 아니면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아서 좋은 일에 쓰는 작은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황식(68) 전 총리도 ‘지공거사’를 자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주변의 65세 이상 지인들에게도 지하철 유임승차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김 전 총리는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카드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인들에게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타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했는데,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탄다고 얘기하는 지인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자발적인 ‘지공거사’ 거부 움직임이 개인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퍼지고 있다. 노인 관련 단체들은 노인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2015년 노인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0세로 올리자고 제안한 대한노인회가 대표적이다. 이심(78) 대한노인회장은 “여유 있는 노인분들은 요금을 내고 지하철을 이용하자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건 좋다”면서도 “하지만 자발적으로 이뤄져야지 소득을 따지는 식으로 누구는 공짜, 누구는 유료 이렇게 구분 짓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고령사회 대비를 위한 비영리단체인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김일순(80) 회장도 “과거엔 65세가 노인으로 대접받을 만했지만 지금은 건강 상태가 좋아져 전혀 노인이 아니다”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 처음에 진통이 따르더라도 아예 75세로 노인 연령을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인 인구 비율, 올해 14%서 2045년 36%로
 
실제로 국내 노인 인구는 2008년 10.2%에서 올해 13.7%로 급증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2015년 654만 명(전체 인구 대비 12.8%)에서 2045년 1818만 명(35.6%)으로 세 배 정도 급증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 경로우대 지하철 무임승차 인원도 2012년 1억7655만 명에서 올해는 2억314만 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 7개 도시철도를 공짜로 이용한 노인은 4억1200만 명으로 전체 수송 인원(24억5400만 명)의 16.8%다. 이들 도시철도 운영 기관 7곳이 무임수송으로 입은 손실액은 5381억원으로 당기순손실(8419억원)의 63.9%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에 대해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가 통합해 출범한 서울교통공사의 김태호 사장은 “노인층의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면 지하철 운영 회사들의 재정 여건이 좋아져 안전시설에 더욱 투자할 수 있고 요금 인상의 압박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등은 도시철도 건설비는 정부에서 부담하지만 운영 경비는 해당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노인의 무임승차를 재정 부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에 대해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은 대개 저소득층”이라며 “지하철 무임승차는 이런 노인들에게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인 복지이기 때문에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정욱 한국교통대 철도경영물류학과 교수는 “어린이나 청소년 요금 할인처럼 65세 이상 노인들의 나이에 따라 할인 폭을 달리하는 할인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65세 이상 승객에게는 운임의 반값만 받는다. 룩셈부르크는 65세 이상 중에서도 저소득층에게만 50% 할인 혜택을 준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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