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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면 죽는다 … ‘살인 병기’ 김옥빈

중앙일보 2017.06.06 01:00 종합 19면 지면보기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길러진 ‘숙희<span style="font-size: 14.7px; letter-spacing: -0.294px;">’</span> 역의 김옥빈.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길러진 ‘숙희 역의 김옥빈.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누군가 마약 범죄 조직의 근거지에 침투한다. 카메라가 마치 그 인물의 시점으로 ‘역할 수행 게임’을 하듯, 건물의 여기저기를 돌며 수십 명의 범죄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하는 모습이 약 10분 동안 펼쳐진다. 총으로 시작해 쌍칼을 휘두르고, 신기에 가까운 격투 기술까지 선보이는 액션은 물론, 거의 모든 움직임을 하나의 생동감 넘치는 숏으로 이어낸 촬영까지.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진다. 영화 ‘악녀’ 얘기다. 이 시퀀스의 가장 결정적 순간에 그 주인공, 숙희(김옥빈)의 얼굴이 드러난다. 한국 액션영화에 강렬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스턴트맨 출신의 정병길 감독, 액션 연기에 최적화된 배우 김옥빈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던, 한국영화의 새로운 풍경이다.
 

8일 개봉하는 영화 ‘악녀’
스턴트맨 출신 정병길 감독 작품
복수와 사랑 뻔한 설정이 흠

‘악녀’는 계속해서 인상적인 액션 장면들을 선보인다. 첫 장면의 ‘일당백 액션’ 이후 경찰에 체포된 숙희는, 젊은 여성들이 제각각의 공간에 모여 있는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눈을 뜬다. 숙희가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시도 역시 긴장 넘치는 액션으로 펼쳐진다.
 
여배우가 주연인 액션 영화 ‘악녀’의 한 장면.

여배우가 주연인 액션 영화 ‘악녀’의 한 장면.

덕분에 극적 긴장과 숙희에 대한 호기심은 극에 달한다. 숙희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눈 하나 깜짝 안 하며 이토록 어마어마한 액션을 펼치는 걸까. 영화는 액션 신 사이사이 숙희의 과거에 대해 조금씩 설명한다. 어려서 아버지(박철민)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복수를 위해 살인 병기로 자란 숙희. 복수극 형태의 액션영화에 빤히 등장하는 설정이다. 그런데 ‘악녀’는 이 상투적인 설정을 지극히 상투적인 드라마로 그려낸다. 그 만듦새가 무척 조악한 수준이라 제대로 김이 식는다. 고강도 액션과 기발한 촬영 기법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던 액션 장면과,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특히 극 중반 숙희와 그를 지켜보는 국정원 요원 현수(성준)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을 구구절절 묘사한 멜로드라마. 그 어색함이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갉아먹는 모양새다. 차라리 드라마를 간소화하고 오로지 액션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한국 액션영화에 전에 없던 여성 전사로 우뚝 선 숙희의 존재는 물론 반갑다. 그와 연인 관계로 얽히는 두 남성, 중상(신하균)과 현수가 비중 있게 그려지는 반면, 숙희를 제2의 살인 병기로 만드는 여성 권숙(김서형)을 기능적으로만 활용한 점은 무척 아쉽다.
 
김옥빈은 “운동을 좋아해서 평소 혼자 열심히 하면서, 언젠가 영화에서 쓰일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런 날을 기대해왔다”며 “액션 잘 찍기로 소문난 정 감독님이, 남자 아닌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액션영화를 찍겠다고 나서다니 그 청개구리 같은 뚝심이 멋있었다.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숙희의 처절한 심정이 액션에 드러나길 바랐다”는 그는 “워낙 액션이 중심인 영화라, 숙희가 지금 왜 이런 액션을 하는지에 대한 감정적 동기가 시나리오에 여백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더러 있어서 숙희의 심정을 혼자 많이 상상하며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스크린에 부는 ‘강한 여성’ 열풍을 잇는 작품이다. 8일 개봉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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