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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내고 탈래요"... '지공거사' 거부하는 작은 움직임

중앙일보 2017.06.05 16:52
경춘선 전철에는 요금을 내지 않는 노인 승객이 많이 몰린다. [중앙포토]

경춘선 전철에는 요금을 내지 않는 노인 승객이 많이 몰린다. [중앙포토]

 공기업을 다니다 정년퇴직한 정봉진(67)씨는 만 65세가 된 지난해 2월부터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게 됐다. 이른바 '지공거사(地空居士·지하철 무임승차 노인)'가 된 것이다. 정씨는 처음 한 두번은 별 생각없이 지하철을 공짜로 탔지만 이내 마음이 불편했다.
 

공기업 은퇴 정봉진씨, 매달 3만원씩 적립
"여유있는 데 무료로 이용하는 건 곤란"

김황식 전 총리도 주변에 '유료 승차'권유
"주변에서 돈내고 타는 지인 늘고 있어"

지하철 회사들, 무임승차 따른 적자호소
전국 7개 지하철, 승객의 16%가 공짜 노인

대한노인회, 대안으로 노인연령 70세 상향 제안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은 "75세로 올리자"

전문가, "연령따른 차등 할인 등 보완 필요"
"저소득층 주로 이용, 현행 제도 유지해야" 반론도

 그는 “65세를 넘으면 지하철을 무료 이용하게 해주는 정책은 고맙지만 이게 지하철 운영회사들의 중요한 적자 요인이란 얘기를 들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요금이 다른 지하철보다 비싼 신분당선이나 경강선에도 무료 노인승객이 일반 승객보다 많은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도 했다.
 
 그래서 정씨는 매달 3만원씩을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한달에 공짜로 타는 지하철 요금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굳이 무료로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요금을 내고 타거나 아니면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아서 좋은 일에 쓰는 작은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황식(68) 전 총리도 '지공거사'를 자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주변의 65세 이상 지인들에게도 지하철 유임승차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는 앞서 지난 2010년 총리 재임 당시 부유층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전 총리는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카드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며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지인들에게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타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했는데,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탄다고 얘기하는 지인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김황식 전 총리는 요즘도 주변의 65세 이상 지인들에게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타라고 권유한다.  [중앙포토]

김황식 전 총리는 요즘도 주변의 65세 이상 지인들에게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타라고 권유한다.  [중앙포토]

 이처럼 자발적인 '지공거사'거부 움직임이 개인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퍼지고 있다. 아직 큰 규모는 아니지만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관련 단체들은 이와는 조금 다르게 노인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지난 2015년 노인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0세로 올리자고 제안한 대한노인회가 대표적이다. 이심(78) 대한노인회장은 “여유 있는 노인 분들은 요금을 내고 지하철을 이용하자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건 좋다”면서도 “하지만 자발적으로 이뤄져야지 소득을 따지는 식으로 누구는 공짜, 누구는 유료 이렇게 구분 짓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지하철 무료운임 제도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무료혜택을 받는 연령을 점진적으로 올려서 부담을 줄이자는 얘기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김일순 회장(80)은 65세인 노인 연령 기준을 아예 75세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세대 의무부총장·연세의료원장을 지낸 그는 2009년 고령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비영리단체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을 만들고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과거엔 65세가 노인으로 대접 받을 만 했지만 지금은 건강상태가 좋아져 전혀 노인이 아니다”라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 처음에 진통이 따르더라도 아예 75세로 노인 연령을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에서도 최근 유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2015년 654만명(전체 인구 대비 12.8%)에서 2045년 1818만명(35.6%)으로 3배 정도 급증할 전망이다.  
 
 
인천 지하철2호선 전동차에 노인들이 탑승하고 있다. 김민욱기자

인천 지하철2호선 전동차에 노인들이 탑승하고 있다. 김민욱기자

문제가 된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시행된 건 1984년부터다. 초기엔 큰 부담이 없었지만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하철 운영사들이 극심한 운영난을 호소하면서 무임승차 제도 폐지나 정부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실제로 국내 노인인구는 2008년 10.2%에서 올해 13.7%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 경로우대 지하철 무임승차 인원도 2012년 1억7655만명에서 올해는 2억314만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 7개 도시철도를 공짜로 이용한 노인은 4억 1200만명으로 전체 수송인원(24억 5400만명)의 16.8%에 달한다. 이들 도시철도 운영기관 7곳이 무임수송으로 입은 손실액은 5381억원으로 당기순손실(8419억원)의 63.9%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때문에 지하철 운영회사들은 정부가 버거운 짐을 자신들에게만 떠넘기고 있다고 토로한다.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가 통합해 출범한 서울교통공사의 김태호 사장은 ”노인층의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면 지하철 운영회사들의 재정여건이 좋아져 안전시설에 더욱 투자할 수 있고 요금인상의 압박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지난해 순손실 3850억원 가운데 65세 이상의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이 71.6%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지하철 무임승차는 지자체의 주민 복지와 관련 있는 사안이라고 선을 긋는다. 정부차원의 지원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박일하 광역도시철도과장은 “도시철도 운임은 지자체에서 정하는 것이고 국토부에서는 통제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도 도시철도 건설비는 정부에서 부담하지만 운영 경비는 해당 지자체가 부담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연세대 김진수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은 대개 저소득층”이라며 “지하철 무임승차는 이런 노인들에게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인 복지이기 때문에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하철 운영회사들의 적자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교통대 우정욱 철도경영물류학과 교수는 ”어린이나 청소년 요금할인처럼 65세 이상 노인들의 나이에 따라 할인폭을 달리하는 할인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은 65세 이상 승객에게는 운임의 반값만 받는다. 룩셈부르크는 65세 이상 중에서도 저소득층에게만 50% 할인 혜택을 준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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