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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한 학과도, 개명 사실도 몰랐어요"...정유라의 '자기 비하 전략' 통했나

중앙일보 2017.06.05 14:37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1)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법조계에선 ‘변론 전략의 승리’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씨의 자기 비하적 발언, 예상보다 빨랐던 입국, 영장심사의 눈물 호소 등이 결과적으로 유리한 법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한달 빨리 귀국해 검찰 준비 부족.. 판사 앞에선 '눈물' 펑펑

 
정씨는 올해 1월1일 덴마크에서 체포된 후 줄곧 구금 상태였다가 153일만에 풀려났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난 3일 새벽 정유라씨가 서울중앙지검에서 귀가하고 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난 3일 새벽 정유라씨가 서울중앙지검에서 귀가하고 있다.

 
①효과 본 ‘자기 비하 전략’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정씨 발언을 잘 보면 단순히 ‘나는 몰랐다. 엄마가 다 했다’ 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바보요’ 로 보일 정도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종의 '자기 비하 전략'을 쓰고 있다. 검찰 조사나 구속영장심사 단계에서도 이런 전략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씨는 “알지 못하는 일이 많다. 억울하다기보다는 ‘왜 몰랐을까’하는 그런 부분이 있다”(6월3일 새벽 구속영장 기각 후), “난 한 번도 대학, 학교에 가고 싶어 한 적이 없다”(5월31일 인천공항 귀국 직후) 등 다소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를 낮추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정씨는 자신이 입학한 학과(이화여대 체육과학부)도 몰랐고, 심지어 개명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는 해명도 했다.
 
②한달 앞당겨 '급습 귀국'
 
검찰도 난감해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수사팀 관계자는 “우리는 6월 말쯤 정유라가 귀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빨리 들어와 문제가 꼬여버렸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를 촉발한 입시ㆍ학사비리 의혹 당사자인 정씨는 지난해 9월 덴마크로 도피했다가 올 1월 불법체류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갑자기 송환 불복 소송 중 항소를 철회하고, 지난달 31일 입국했다.
정유라씨가 지난 달 3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유라씨가 지난 달 3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정씨의 귀국 시점부터 검찰이 허를 찔렸다고 보기도 한다. 정씨가 덴마크에서 송환 불복 소송을 갑자기 스스로 포기해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 등을 꼼꼼히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정씨를 체포했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전에 주어진 48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정씨에 대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뇌물죄 등을 구속영장에 함께 기재하려면 덴마크의 추가 동의가 필요했다”며 “검찰이 결국 시간에 쫓겨 형량이 가벼운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앞으로 검찰은 정씨를 상대로 외국환거래법 위반, 국내외 재산 은닉 의혹 등도 조사해야 한다. 지금까지 조사해 왔던 이화여대 부정입학ㆍ학점 특혜 의혹에 비해 상대적으로 법리가 복잡한 사안들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앞으로 검찰이 정씨를 상대로 미분, 적분에 대해 논해야 하는데 지금 그보다 훨씬 간단한 공식(사실관계)도 ‘난 몰라요’라고 답하는 형국이다. 검찰로선 답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변호사 접견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유라씨.

지난 3일 변호사 접견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유라씨.

 
③"아들 생각에…" 눈물 호소도 한 몫
 
정씨의 ‘눈물 호소’ 역시 구속영장 기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자기 일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상처와 허탈감을 준 것을 반성한다”는 취지로 울면서 직접 말했다. 비공개 영장실질심사에서 있었던 일은 정씨의 변호인은 언론에 공개했다. 변호인은 정씨가 “다니지도 않을 학교에 입학하게 돼 정말 죄송하다”“지금 아들이 멀리 있다” 등을 언급하며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 전담 판사는 ‘정씨를 구속수사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히며 그를 석방했다. 최진녕 전 대한변협 변호사는 “판사도 사람이다. 20대 초반의 여성이 어린 아들 등을 언급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면 흔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정씨의 방어 논리를 뒤집기 위한 카드 마련을 고심 중이다. 구속 여부를 놓고 벌인 첫 공방에선 검찰이 밀린 셈이어서 영장 재청구 및 그 2라운드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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