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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앓는 60대, 50억원 땅 뺏기고 정신병원 간 사연

중앙일보 2017.06.05 10:07
조현병을 앓고 있는 피해 노인. [연합뉴스]

조현병을 앓고 있는 피해 노인.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빌딩 숲 한가운데서 주차장을 운영하던 노인이 있었다. 2014년까지의 일이다. 노인은 '건물을 지으라'는 주변인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땅을 놀리며 주차장으로만 이용했다. 노인은 컨테이너 한 대만 두고 그곳에서 살았다.
 
노인은 무역회사를 운영했는데, 1980년대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중소기업 줄도산 파도를 넘지 못하고, 1992년쯤 부도를 면치 못했다. 노인은 마지막 남은 돈으로 강동구 성내동에 70평, 양재동에 100평짜리 땅을 샀다. 노인이 양재동 땅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노인은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잡으러 올 것 같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이 노인에게 2014년쯤 박모(57)씨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박씨는 노인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부동산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지인 정모(45)씨 등 주변인들과 계획을 세웠다. 박씨가 빌라를 한 채 사주겠다는 제안을 해 지인 김모(61)씨도 가담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피해 노인. [연합뉴스]

조현병을 앓고 있는 피해 노인. [연합뉴스]

계획은 이렇게 진행됐다. 김씨는 노인과 결혼한 것처럼 허위로 신고했고, 박씨 일당은 노인의 조현병을 이용해 안기부에서 나왔다며 전기충격기 등을 들고 접근해 폭행했다. 노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 등 필요한 서류를 떼라는 지시도 그대로 따랐다.
 
박씨 일당이 노인으로부터 서류를 받은 후에는 노인을 충북 청주 등 지방 이곳저곳의 모텔을 돌아다니며 감금했다. 무려 7개월 동안 감금과 감시가 이어졌다.
 
이들은 그동안 노인의 땅을 팔아치웠다. 2015년 2월에는 양재동 땅을 팔고 4월에는 성내동 땅을 팔아 30여억원을 챙겼다.
 
땅을 판 뒤에는 노인을 전북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정신병원 입원에는 결혼을 신고한 김씨가 역할을 했다. 법적 보호자로 돼 있어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50억원대 자산을 갖고 있던 노인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개월 동안 추적한 끝에 일당을 모두 검거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특수강도 및 특수감금 등 혐의로 주범인 정씨와 박씨, 김씨, 임씨를 구속했다. 폭행·감금 과정에 단순 가담한 공범 4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 후 일당은 범행으로 벌어들인 30억원을 일부 다른 부동산에 투자했으나 실패하고, 나머지 돈은 강원랜드에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인은 아직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재산이던 토지가 모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은 노인의 보호의무자를 법행 가담자 김씨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전환했다. 치료비와 생계비부터 막막한 노인을 도울 방법을 찾는 중이다. 노인이 빼앗긴 두 땅에는 모두 고층 다세대 빌라가 들어섰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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